대물적 행정처분의 승계, 사례별 분석
의료법은 위반행위의 종류에 따라 의료인 개인의 면허자격 정지(대인적 제재)와 의료기관 운영정지(대물적 제재)를 구별하여 규정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불법 의료광고와 같은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의료인의 자격정지가 아닌 해당 의료기관의 업무정지 처분(예: 1개월 업무정지)이 부과됩니다. 이러한 업무정지 처분은 특정 의료기관의 업무 운영을 일정 기간 정지시키는 것으로, 처분의 직접 대상은 의료기관 자체(개설된 병원 또는 의원의 업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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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법은 속임수나 거짓으로 진료비를 청구하는 등의 위법이 있는 경우 “요양기관에 대하여” 1년의 범위에서 업무정지를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국민건강보험법상의 업무정지처분은 해당 요양기관의 보험 의료행위 업무를 정지시키는 제재로서, 처분의 대상은 요양기관으로서의 영업에 한정됩니다. 요양기관 업무정지 기간 동안 그 기관은 건강보험 요양급여 제공이 중단되며, 보험 처방전 발행 등도 할 수 없게 됩니다. 단, 비급여진료는 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의료법상 업무정지 처분과 구분됩니다.
대물적 행정처분이란 행정처분의 효과가 특정인에게 일신전속되지 않고 영업이나 물적 시설 등에 귀속되는 처분을 말합니다. 즉, 처분의 상대적 대상이 사람(영업자 개인)이라기보다 영업 자체나 허가와 같은 “물적 요소”에 대한 것이어서, 영업이 양도되거나 승계되는 경우 그 처분의 효력이 새로운 영업자에게도 미치는 성질을 띱니다. 의료법상 의료기관 업무정지 처분과 국민건강보험법상 요양기관 업무정지 처분이 이에 해당한다고 해석됩니다. (과거 보건복지부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나, 현재의 판례와 다수설은 대물적 행정처분으로 보고 있습니다).
대물적 행정처분의 대표적 특징은 처분 효과의 이전 가능성입니다. 영업 자체에 대한 허가나 인·허가의 경우 영업자가 변경되어도 허가의 효력이 이전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종전 영업자의 위반행위를 이유로 새로운 영업자에게 제재처분을 할 수 있는지가 문제됩니다. 판례와 다수설은 허가의 대물성을 근거로, 영업승계 시 종전 영업자의 위법행위로 인한 제재사유도 승계된다는 입장을 취해왔습니다.
즉, 원장 A(양도인)가 운영하던 의료기간이 업무정지 처분을 받는다면, 영업양수도를 거처 원장이 B(양수인)로 변경되더라도 업무정지 처분의 효력은 계속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단, 선의의 양수인은 행정청의 처분이나 제도를 신뢰하고 영업을 인수했을 터인데, 나중에 숨겨진 제재효과가 이전되어 불이익을 받는다면 신뢰보호 및 법적 안정성에 반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판례는 이와 관련하여 양수인의 선의 여부를 중요한 고려 요소로 삼고 있습니다. 법령에 선의의 양수인에 대한 보호규정이 있을 경우 이를 충실히 따르고, 설령 명문 규정이 없더라도 개별 사안에서 양수인이 처분 사실을 몰랐고 행정청도 사전에 고지하지 않은 경우에는 신뢰보호 원칙을 들어 승계를 부정하거나 완화하는 결정이 내려지기도 합니다.
(1) 의료법 : 의료법은 업무정지 처분의 승계에 관한 명확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앞서 검토한 대물적 행정처분의 일반론에 따라, 의료기관에 대한 업무정지, 개설허가 취소 또는 의료기관 폐쇄 처분의 효과는 해당 처분이 확정된 의료기관을 양수한 자에게 승계될 것입니다. 다만, 양수인이 처분 또는 위반사실을 알지 못했음을 증명하면 처분 효과는 승계되지 않습니다.
(2) 국민건강보험법 : 보건복지부장관은 요양기관이 부정한 방법으로 보험자에게 비용을 부담시킨 경우 1년 범위 내에서 업무정지를 명할 수 있는데(국민건강보험법 제98조 제1항), 동 조 제3항에서 "업무정지처분의 효과는 그 처분이 확정된 요양기관을 양수한 자 또는 합병 후 존속하거나 신설된 법인에 승계되고, 처분 절차가 진행 중이면 양수인 또는 신설 법인 등에 그 절차를 계속 진행할 수 있다. 다만, 양수인 등이 처분 또는 위반사실을 알지 못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즉, 앞서 검토한 대물적 행정처분의 승계 이론을 충실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국민건강보험법 제98조 제4항에 따르면, 업무정지 처분을 받았거나 업무정지 처분의 절차가 진행 중인 자는 행정처분을 받은 사실 또는 행정처분절차가 진행 중인 사실을 양수인에게 지체 없이 알려야 합니다. 건강보험심평원이 실무적으로 양수인에게 이 사실을 확인하고 있기 때문에, "처분 사실을 몰랐다"는 변명을 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1) 의료기관을 양수도한 경우:
의료기관이 처분 대상이 되는 위반행위를 저지른 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한 경우, 행정처분의 효과가 양수인에게 승계됩니다. 예컨대 의료기관 A가 의료법 위반으로 업무정지 3개월 처분을 받을 상황에서 B에게 그 병원을 양도한 경우, 처분이 확정되면 그 업무정지 기간은 B에게 승계됩니다. 다만 앞서 언급한 법리에 따라 B가 처분 사실을 사전에 몰랐음을 입증하면 처분을 면할 수 있습니다. 실제 판례도 "특정 요양기관에 대한 업무정지처분은 그 요양기관을 양수한 자나 합병 후 존속법인에 대해서도 효력이 미친다"고 판단하여, 양수인이 있을 경우 영업정지 처분을 그대로 이어서 집행할 수 있다고 설시하고 있습니다.
(1-1) 합병의 경우:
양수인에게 승계하는 규정은 합병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의료기관을 합병으로 인수하는 때에도 이전 병원이 받은 처분효과가 이어집니다. 단, 의료법인을 포함하여 의료기관간 합병이라는 현상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2) 폐업 후 동일 장소에서 제3자가 의료기관을 개설한 경우:
먼저 제재를 받은 원장이 의료기관을 폐업하였고, 다른 의료인 C가 동일한 장소에서 새로운 의료기관을 개설한 경우를 봅니다. 이때 승계 여부는 해당 개설이 이전 기관의 실질적 양수인지 여부에 따라 달라집니다. 만약 C가 이전 기관의 시설, 장비, 이름 등을 그대로 인수하여 사실상 영업을 승계한 정황이 있다면, 행정청은 C를 양수인으로 간주하여 처분을 승계시킬 수 있습니다.
실제 사례에서, 한 의원이 현지조사를 앞두고 폐업한 뒤 그 의원에서 일하던 봉직의(근무 의사)가 다음날 같은 자리, 같은 상호로 의원을 개설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봉직의는 이전 의원의 전화번호·의료기기·진료기록부 등을 그대로 사용하고, 의료기기를 무상으로 넘겨받는 등 사실상 기존 의원을 인계받은 상태였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이를 "폐업한 의원을 양수하여 개설한 경우"로 보아, 새로 연 의원에 대해 이전에 진행 중이던 의료급여기관 업무정지 처분 절차를 그대로 승계시켰습니다. 신규 개설한 의사는 자신은 위반행위와 무관하다고 행정소송을 제기하였으나, 법원은 해당 의원이 이전 의원과 실질적으로 동일한 요양기관이므로 새 의사를 양수인으로 인정한다며 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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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단순히 우연히 같은 장소를 임차하여 새로운 의료인이 개설한 경우처럼 이전 기관과 인적·물적 연속성이 없는 경우에는 처분 승계의 법적 근거가 없습니다. 새로운 개설자가 이전 위반행위와 무관하다면 그에게 제재를 미치는 것은 연좌제 금지 및 신뢰보호 원칙에 반할 소지가 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실질적 승계관계가 입증되지 않는 한, 별개의 의료인에 의한 신규 개설 의료기관은 이전 처분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3) 원장이 자체 폐업 후 다른 장소에 의료기관을 재개설한 경우:
가장 쟁점이 된 상황은 위반행위를 한 동일한 개설자 A가 해당 의료기관을 폐업하고 장소를 옮겨 새로운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경우입니다. 과거에는 이러한 경우 행정처분 승계 여부가 명확하지 않아 다툼이 있었고, 최근 대법원 판례가 이를 명확히 하였습니다. 예컨대 의사 A가 서울에서 의원을 운영하며 요양급여비용을 거짓 청구한 후 의원을 폐업하고, 얼마 뒤 다른 지역에 새로운 의원을 연 사건이 있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이전 의원의 부당청구 행위를 이유로 A가 새로 개설한 의원에 10일 업무정지처분을 내렸고, A는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심과 2심 법원은 모두 A의 손을 들어주었고, 최종적으로 2022년 대법원에서도 A의 승소 판결이 확정되었습니다. 대법원은 "요양기관 업무정지처분은 의료인 개인 자격에 대한 제재가 아니라 요양기관 업무 자체에 대한 대물적 처분"이라고 전제하면서, "부당청구를 한 요양기관이 폐업한 때에는 업무를 할 수 없는 상태일 뿐 아니라 처분대상 자체가 없어졌으므로, 그 요양기관 및 폐업 후 개설자가 새로 개설한 요양기관에 업무정지처분을 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요약하면, 같은 의사가 새로 연 의료기관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별개의 신규 요양기관인 이상, 구법 해석상 이전 요양기관의 위반행위를 이유로 제재를 이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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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언급한 2022년 대법원 판결(대법원 2022.1.27. 선고 2020두39365 판결 등)은 의료기관 행정처분 승계 문제에 큰 영향을 미친 유명한 판례입니다. 해당 판결 이후, 보건당국은 제재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법령 정비에 착수하였습니다.
대법원 판결 당시, 법에 양수인에 대한 승계조항(제98조 제3항)은 있었지만 A 사례와 같이 양수도 없이 폐업 후 신규 개설한 경우를 직접 규율하지 못하는 한계가 드러났습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업무정지처분에 갈음하는 과징금 제도를 적극 활용하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하였습니다. 2022년 당시 개정안에서는 "현지조사 대상 선정 후 행정처분 확정 이전에 폐업한 요양기관에도 과징금 부과처분을 할 수 있도록 범위를 확대"하였고, 실제로 고시 개정을 통해 과징금 부과 기준의 표현을 "행정처분 절차 진행 중"에서 "행정처분 확정 전"으로 변경하였습니다.
이후 서울고등법원은 2024년 판결에서 "업무정지처분이 제재수단으로 실효성이 없는 경우 과징금 처분으로 대체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하며, 행정처분을 앞두고 폐업한 의사 A에게 부과된 과징금이 정당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http://www.newsmp.com/news/articleView.html?idxno=243261
의료법 및 국민건강보험법상의 업무정지처분은 법리적으로 “대물적 행정처분”에 해당합니다. 두 법령 모두 처분 대상과 효과를 의료기관(요양기관)의 업무정지에 국한하고 있으며, 대법원 또한 이를 의료인 개인의 자격 제재가 아닌 영업제재로 해석하였습니다. 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업무정지처분은 해당 의료기관이라는 “물적” 단위에 붙는 처분으로, 의료기관이 폐업하거나 양도되는 등 동일성이 상실될 경우 처분의 효력도 원칙적으로 소멸합니다.
나아가 의료법에는 면허자격정지라는 별도의 대인적 제재수단이 마련되어 있어, 업무정지처분 자체를 넘어서 개설자 개인에 대한 책임을 묻는 수단이 존재합니다. 법체계는 업무정지처분으로 영업에 대한 책임을, 자격정지로 개인에 대한 책임을 각각 분리하여 부과하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대물적 행정처분 일반론에 부합하며, 법원도 그 원칙을 존중하여 업무정지처분의 범위를 제한적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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