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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보 Aug 06. 2022

두 자매의 고통, 그리고 희망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어느 한 대형은행의 채권 관련 업무를 의뢰받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당시는 지금처럼 채권추심 업이 성행하던 시기가 아닌지라, 채권회수 업무를 은행원이 직접 하였습니다.


그중 악성 연체자 중 비교적 어린 나이에 자매가 함께 카드빚을 연체하고 있었습니다.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긴 하나 나이에 비추어 볼 때 이례적인 일이기도 했지요.


두 자매를 상대로 지급명령을 신청했는데, 송달이 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송달했음에도 송달이 되지 않아 결국 본안의 소를 제기할 수밖에 없었지요.


지급명령이란, 변론을 거치지 않고 채권자의 청구에 대해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면 채무자에 대하여 일정한 급부를 명하는 재판을 말하는 것입니다 [민사소송법 462조], 그러나 지급명령을 신청할 수 있는 청구는 금전이나 금전을 대체할 수 있는 대체물 또는 유가증권에 한정됩니다. 채무자는 지급명령에 대한 이의신청을 할 수도 있고, 장차 소송절차 (본안의 소)로 이행되게 되면, 변론을 통해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채무자에게 송달되어야 지급명령은 확정됩니다.

결국 공시송달로 판결을 받아 냈습니다.




두 자매를 만나게 된 건 집행단계에서였습니다.


판결이 확정되면 집행문이란 것을 교부받을 수 있고, 비로소 채무자에 대한 재산에 압류 등 집행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한편 채무자는 채권자의 이러한 집행에 대하여 청구이의 등의 행사를 통해 방어할 수 있습니다.


좀 독할 수 있지만, 두 자매에 대하여 국내에 있는 모든 금융기관에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을 진행했습니다. 




계좌가 압류되자 두 자매 중 언니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당시 담당자가 저였으니, 저에게 연결이 되었습니다.


언니가 만나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사무실 주소와 연락처를 건네주었는데 그 언니란 분은 자신이 일하는 곳으로 방문할 수 없겠느냐고 부탁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채무자를 만나는 건 어렵다고 했고 채무와 관련된 것은 은행 담당자와 통화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으나, 계속 꼭 자신이 일하는 곳으로 와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은행 담당자와 상의 후 함께 언니가 일하고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언니는 자신은 낮에는 잠을 자야 하고 저녁에서야 일을 할 수 있으니, 업무를 시작하지 1시간 전쯤 와 주길 바랬습니다.


그렇습니다. 언니는 유흥업소에 근무하고 있었고, 이러한 경우 남자인 저로서는 매우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변에서 보면 안 되겠느냐 말에 무슨 이유인지 모르나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언니를 만나고 소개를 하던 중 동생도 왔습니다.


언니와 동생은 함께 업소를 다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언니는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 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들이 이곳에서 일하게 된 경위, 그리고 이렇게 일할 수밖에 없는 경위를 비교적 상세히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우리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감정이입에 대한 경계심이었기 때문에 자매의 이야기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해석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두 자매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살았던 의붓아버지가 있었고,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듯이 의붓아버지는 소위 말하는 동네 양아치 같은 자였습니다.


자매는 어린 시절부터 의붓아버지로 부터 받은 폭행, 폭언으로 인해 거의 완전히 자신의 의지를 의붓아버지에게 지배된 상태였고,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심각한 가스 라이팅으로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업소에 출근하게 된 것도 의붓아버지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자매들 카드를 소지하고 있는 사람도 의붓아버지였으며, 자매는 그동안 의붓아버지가 사용한 카드대금을 납부하여 왔고, 그러던 중 사채도 쓰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사채이자가 늘어나자, 결국 자매는 카드대금을 연체할 수밖에 없었고, 빚은 빚을 낳고 그렇게 이자는 이자대로 불어나, 더 이상 두 자매에게는 희망이 없이 자포자기하는 상태에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금융기관 채권관리 팀장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여러 가지 방안을 논의하였습니다.

결국 채무자는 의붓아버지로 판단했으나, 자매들에 대한 채무를 원칙적으로 없는 것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웠습니다.


자매들은 의붓아버지에게 구상금 청구를 통해, 카드빚을 어느 정도 탕감할 수 있었으나 무엇보다 의붓아버지에게는 그럴만한 능력이 없었습니다.


더욱 어려웠던 것은 자매들이 의붓아버지로부터 당해왔던 불법행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자매들이 의지를 가지고 의붓아버지를 상대로 법적 절차를 감행하였다면, 어쩌면 법원은 카드빚은 자매들의 채무가 아니라는 판단을 했었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강박에 의한 카드 발급과 카드 대여를 한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자매들에게는 그럴만한 용기가 없었습니다.


 


내려놓고, 지우고, 용기 내서 다시 시작하기

그래서 고민한 것이 개인파산제도를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필자 및 다른 전문가의 도움으로 두 자매는 결국 파산에 성공했습니다.


파산신청에 대한 채권자는 업소 관계자 등도 있었으며, 파산에 성공하기까지 그리고 두 자매가 의붓아버지로 부터 벗어나고, 업소를 박차고 나올 때까지는 정말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힘든 상황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두 자매는 끝까지 이겨냈고, 결국 파산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마지막으로 본 두 자매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만연한 평온한 모습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느 곳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 어느 사랑스러운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어 있을지도 모를 지금의 두 자매에게 언제나 평화와 행복이 가득 머물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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