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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평화

by 이보

전쟁보다 더러운 평화가 낫다는 워딩의 근거가 뭘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 말의 어원은 고대 로마의 정치가인 키케로가 남긴 격언에서 유래한 듯하다. 키케로는 "가장 불공정한 평화라도 가장 정의로운 전쟁보다 낫다(I prefer the most unfair peace to the most righteous war)”라고 했다. 이 말은 평화를 지향하는 인류의 보편 된 이상을 강조한 것으로 보이지만, 역사 속에서 이 말은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정치적 해석을 낳았다.


‘그 평화가 과연 누구에게, 얼마나 오래 평화를 보장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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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경우 분단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안보'를 정치적 정체성 싸움의 척도로 삼아왔다. 1990년대 이후 민주화가 진행되면서도 '햇볕'과 '강경'의 구도는 진영 구분의 핵심 레퍼토리로 여전히 남아있다. 작금의 '전쟁보다는 더러운 평화가 낫다'는 표현은 북한과의 무력충돌을 막기 위한 현실주의적 절충으로 소개되곤 하지만, 보수 진영은 이를 '굴종적 평화'로 비판하고 있다. 나는 이런 보수의 견해를 지지한다. 내가 왜 보수의 견해를 지지하는가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진영논리를 벗어던지고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더러운 평화가 낫다는 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틀리다고 말하기 위해서 합리적인 정당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 정당성을 역사 속의 교훈을 되새기는 것으로 갈음코저 한다.



결국 핵심 질문은 두 가지다. 첫째 불평등하거나 굴종적 성격을 띤 평화가 국민의 안전과 주권을 장기적으로 훼손하지 않는가. 둘째, 전쟁이라는 극단적 수단을 감수하고서라도 지켜야 할 '정의의 조건'이 충족되었는가. 키케로의 격언은 후자의 조건이 충족되지 못할 때 평화를 택하라고 충고하면서도, 동시에 '불의한 평화'가 무기한 지속될 경우 더 큰 전쟁을 부를 수도 있다는 함의를 담고 있다.


그리고 역사가 남긴 사례들은 이 함의를 반복해서 증명한다.


(1) 기원전 421년 니키아스 평화 (아테네, 스파르타 휴전)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지친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일단 싸움을 멈추자' 며 니키아스 평화를 체결했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불신이 그대로 남아 있어 작은 충돌은 끊이지 않았고, 8년 만에 전면전이 재개되었다. 결국 아테네는 패망하고 그리스 전체가 쇠퇴의 길을 걸었다.


(2) 1차 세계대전 뒤 독일에 강요된 베르사유 조약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평화가 찾아온 게 아니었다. 승전국들은 독일에게 막대한 배상금, 영토할양, 군축을 강요했고, 독일 경제는 곧바로 무너지고 말았다. 하이퍼인플레이션과 대공황까지 겹치자 시민들의 분노는 극단주의 세력을 키웠고, 결국 히틀러가 집권해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것으로 이어졌다. 즉, '가혹한 평화'가 훨씬 더 큰 전쟁의 불씨가 된 것이다.



(3) 1938년 뮌헨 협정 (체코를 내주고 평화를 얻자는 영국과 프랑스의 양보)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을 피하고자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데텐 지역을 히틀러에게 내주었다. 하지만 히틀러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6개월 만에 체코를 정복했고, 이듬해 폴란드까지 침공하면서 결국 2차 대전이 시작되었다. '전쟁을 막으려던 평화 협정이 오히려 전쟁을 앞당겼다는 대표적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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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993년 탕구 휴전 (중국이 만주를 일본에 사실상 내준 협정) 만주사변 디 중국은 일본과 '탕구휴전'을 맺었고 만주국을 인정하면서 북중국 일부를 비무장지대로 일본에 내주었다. 하지만 일본군은 그 틈을 발판 삼아 세력을 확장했고, 결국 1937년 전면적인 중일 전쟁이 터졌다. 이는 불평등한 휴전이 장기적인 평화를 보장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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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네 가지의 역사적 사례는 모두 눌린 불만이 남아 있었고, 평화를 지킬 현실적 장치가 마련되지 못했으며, 상대를 제어할 힘이 부족할 때 ‘더러운 평화’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결국 힘의 균형과 감시·억제 메커니즘이 갖춰지지 않은 평화는 이름뿐인 휴전일뿐이다. 도리어 잠시 억눌러 둔 갈등이 더욱 파괴적으로 되돌아올 위험을 품는다.


키케로의 경구를 오늘에 적용해 본다면, “평화를 원한다면 그 평화를 지킬 힘부터 갖추라”는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힘없는 평화는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쟁을 정당화할 명분이 아니라, 정의로운 평화를 뒷받침할 실질적 억제력과 감시 체계다.


이제 우리는 냉정하게 '더러운 평화'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학급 내 일진들에게 맞지 않는 방법은 끊임없이 일진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다. 그 요구를 들어줄 때에는 매를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요구를 들어주는 한계에 도달했을 때,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일진들에게 맞지 않는 방법이 란 건 그 일진보다 더 큰 힘을 키우거나, 그 일진보다 더 센 친구를 사귀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 일진들을 법에 따라 단호하게 처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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