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진짜 도둑 아니에요. 계산하고 가져갔다고요."
변호인에게 눈물을 글썽이며 호소하는 피고인(형사재판을 받는 사람)은 구제의류매장 직원이다.
피고인의 혐의는, 혼자 매장에 근무하며 매장 옷을 마음대로 가져갔다는 것이다.
피고인은 경찰에게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재판에 넘겨졌다.
피고인 말처럼 계산하고 가져갔다면 CCTV에 분명 그 장면이 있을 터.
매장 CCTV 캡쳐사진을 살펴보았다.
피고인은 출근할 때 자기 옷을 입고 왔고, 퇴근할 때는 매장 옷을 입고 퇴근한다.
다음 사진에는 피고인이 계산하는 장면이... 있을 리 없다. 그랬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지.
"죄송한데... 사진만 보면 그냥 매장 옷 가져가신 것 밖에 안나오는데 정말 계산하셨어요?"
"했어요. 분명히 했어요. 진짜 안 훔쳤어요. 저 그런 사람 진짜 아니에요."
"알겠어요. 저는 피고인 믿어요. 그래서 도와드리려고 하는 거고요. 그러면 피고인이 계산했다는 증거는 뭐 없을까요? 카드결제내역 같은 거요.”
없을 것 같지만, 그러니까 재판까지 왔겠지만 그래도 물어본다.
당연히 없겠지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웃픈 일이지만, 경찰이 안물어봐서, 중요한 자료인 줄 몰라서 등등의 이유로 증거가 방치된 채 널브러져 있는 경우도 가끔 있다.
“없어요.. 구제의류매장이라 현금결제가 대부분이에요. 제가 고소당한 건 현금으로 결제했거나 손님이 대신 결제해 준 옷들이에요.”
“그럼 판매장부는 없을까요?”
“일일매출표 있어요. 그런데 어떤 옷 결제했는지나 누가 결제했는지는 안나오고 판매한 금액만 나와요.”
“음... 그럼 누가 어떤 옷 결제했는지는 결국 CCTV를 봐야만 알 수 있는 건가요?”
“그렇....죠. 그럼 이제 어떡하죠?”
“증거기록에는 CCTV가 없던데 수사기관에서 보관하고 있을테니 그걸 한 번 살펴보죠.”
"재판장님, 피고인의 범행을 입증하기 위한 주요 증거로 CCTV 캡쳐사진이 제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피고인은 절대 물건을 훔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그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CCTV영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으니, 범죄사실을 입증할 책임이 있는 검사님께 CCTV영상 제출을 명하여 주십시오."
정중하고 합리적인 요청에 재판장도 호응한다.
"검사님, CCTV영상을 확인할 필요가 있어보이니 바로 제출해주시지요."
검사도 흔쾌히 응한다.
"예 확인해보고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CCTV 확보는 순조로워 보인다.
며칠 뒤, 검사실에서 전화가 왔다. CCTV 복사일정을 조율하려나 보다.
"죄송한데, 저희가 CCTV영상파일 가지고 있는 것은 없고, 경찰에도 확인해보니 가지고 있는 것이 없다고 하네요."
"....."
말문이 막혔다.
일반적으로 매장에 설치한 CCTV는 보관기간이 1개월 정도인데, 사건이 발생한지는 이미 8개월도 더 지났다.
영상이 남아있을 리 없다.
수사기관이 당연히 보관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또 보관하고 있어야 하는 CCTV영상인데, 보관하고 있지 않다니..
수사기관을 압수수색해서 살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답답하지만 도리가 없다.
그렇게 유일한 증거가 허무하게 사라졌다.
피고인과 변호인은 모두 절망했다.
하지만 포기하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한다.
((2) 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