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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법은 조변 Jan 17. 2024

브런치에 "퇴사" 글이 많은 이유

3번 퇴사하고 3번 이직한 변호사의 짧은 생각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침대에 누워서 브런치 최신글을 읽어보고 있었습니다.

그중 한 글이 '절박한 퇴사'의 글이었습니다. 마치 제가 겪은 일처럼 고통과 고뇌가 함께 느껴졌습니다.


브런치에 "퇴사" 글이 참 많구나...

그리고 "퇴사" 글이 참 많이 읽히는구나...


자려고 누웠다가 급하게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


"브런치에는 왜 이렇게 퇴사에 관한 글이 많은 것인가?" 

이 물음에 3번 퇴사하고 3번 이직한 제가 간단히 답을 생각해 봤습니다.





1. 회사에는 나쁘고 고약한 구조(시스템)가 그렇지 않은 척하고 있습니다.


회사에 완벽하게 나쁜 사람이 가끔은 있지만, 나쁘고 고약한 구조(또는 시스템)가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나쁘고 고약한 구조는 그렇지 않은 척하면서 있습니다.


퇴사율이 높은 직원은 대부분 연차가 낮은 직원들입니다. 신입이거나 입사한 지 2~3년이 넘지 않은 직원이 많습니다. 나쁘고 고약한 구조는 연차가 낮은 직원들의 희생을 강요하거나 당연하게 여깁니다.


시간이 무한정으로 투입되는 자료 검색, 실적이 결코 좋을 수 없는 패전저리 프로젝트 등을 그들에게 맡깁니다. 연차가 낮으니 당연히 너네들이 하는 것이라고 세뇌시키면서 그렇게 합니다. 그 "너네"들은 저녁에도 주말에도 일단 시간을 무한정 투입을 합니다. 그렇지만 성과가 좋을 리 없습니다. 패전처리용으로 "너네"들을 썼기 때문입니다.


회사에서 만나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친절하고 나이스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욕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왜 나만 맨날 늦게까지 일하고, 쉽게 끝나지 않은 일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선배들과 높은 분들은 정시 퇴근을 하는데 왜 나만 저녁에도 일하고, 주말에도 업무 고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구조(시스템)"에 있기 때문입니다. 구조적으로 당연하게 힘들고 어렵고 티가 안 나는 일을 연차가 낮은 사람에게 몰아두고, 당연히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분위기를 만들어 버리는 것이죠.


"우리 선배들이 좀 치사하고 싸가지없어도 너가 어쩔건대?"


과장님, 팀장님, 실장님, 국장님, 이사님, 대표님께 적절한 타이밍에 보고하는 것도 실무자 몫, 열심히 퀄리티를 내는 것도 실무자 몫, 중간보고 과정에서 수정 보완하는 것도 실무자 몫인 게 일반적입니다.


위에 계시는 분들은 보고라도 좀 편하게 받아주지 않습니다. 꼭 필요한 타이밍에는 자리에 안 계십니다.


연차 낮은 실무자도 같은 사람입니다. 사람 귀한 줄 알아야 하는데, 그걸 모른 척하는 구조(시스템)가 어디든 너무 공고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이를 유식한 말로 "착취구조"라고 합니다.





2. 그러다가 순도 100% 돌아이 상급자를 만나는 순간 '퇴사'를 떠올리게 됩니다.


연차 낮아 죽어라 일만 하는 것도 서럽고 힘든데, 회사에 조금 적응했다고 '폭탄처리용'으로 인사발령을 냅니다. 그동안 성실성과 충성심을 인정받은 결과는 순도 100% 돌아이 상급자를 상대하는 인사발령으로 귀결됩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어쩔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인사팀에서는 너 정도의 인격이 훌륭한 사람이라야 100% 돌아이와 공존할 수 있다는 이상한 말을 합니다. 조금만 버티면 바꿔준다고도 합니다. 유명한 돌아이 상급자이지만, 혹시 나랑은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이상한 상상을 해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상상은 현실이 되지 않습니다. 업무도 식사도 휴식도 저녁도 주말도 모조리 뒤엉켜버립니다. 회사의 노예가 되는 것도 서러운데 한 사람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 같아 더 서러워집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내가 생각한 삶은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합니다.


나름 열심히 일을 해서 회사로부터 인정을 받는다 싶었는데, 돌아오는 대우는 '폭탄처리용' 인사발령입니다.

착하고 순하고 성실하고 협조적이면, 이와 정반대의 인물과 함께 일하게 된다는 것을 그때는 모릅니다.

회사에서는 까칠하고 싸가지 없고 할 말은 다하면서, 일만 깔끔하게 잘하는 놈이 가장 편하게 삽니다.




3. 몸이 아프기 시작하고 마음도 아프기 시작합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고약한 회사와 돌아이 상급자 덕분에 실무자의 삶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일과 잠이 섞이고, 주중과 주말이 섞이며, 죄송합니다와 감사합니다가 섞입니다. 그렇게 몇 주, 몇 달을 지내면, 내 몸에서 가장 약한 부분부터 고장기 시작합니다.


눈이 안 보이기 시작하거나, 이가 아프기 시작하거나, 잠을 못 자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감정 조절이 어려워지기 시작합니다. 삶의 의미를 잃어가기 시작합니다. 출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습니다.  


"괜찮아요?", "힘들지만 조금만 버텨요.", "얼굴이 반쪽이네, 힘내요"

나를 걱정해 주는 말도 참 형식적입니다. 나도 압니다. 내가 정상이 아닌 것을 나도 압니다. 하지만 병원을 갈 시간이 없습니다. 보고서를 수십 번 고치고, 피피티를 수백 번 고치고, 메일을 수천번 보내야 합니다.


일할 시간도 모자라고, 보고할 시간도 없는데, 어떻게 병원을 간단 말입니까.

급한 일 끝나면 휴가가라고 합니다. 근데 그 급한 일이 몇 달째 끝나지 않습니다.

치료받을 시간은커녕, 맘 편히 쉴 시간도 없습니다. 어디 하소연할 여유도 없습니다.     


막차 타고 집에 가는 길에 우울증 자가진단 테스트 항목을 체크해 봅니다. 만점이 나옵니다.

당장 정신보건센터나 정신건강의학과에 내원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 흐릅니다.

열심히 일한 결과가 망가진 몸과 마음이라는 현실에 슬픔이 가시질 않습니다.




4. 생각만 했던 '퇴사'를 실행하기 시작하지만, 온갖 방해공작이 또 괴롭힙니다.  


"의지가 왜 이리 약해!!"

"책임감이 그렇게 없는 사람이었어?"

"너만 생각하지 말고 회사도 생각해야지."

"급한 일 끝나면 시원하게 휴가 보내준다고 했는데, 그것도 못 참냐"


하루 휴가 내고 병원 좀 가겠다는 짧은 보고에 엄청난 말씀이 되돌아옵니다.

내가 죄인인 것 같으면서도, 왜 내가 죄인인지 잘 모르겠기도 합니다.


일하는 척하면서, 곰곰이 생각을 해봅니다.

"나의 건강까지 버려가면서,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라는 생각이 커집니다.

"더 이상은 이렇게 다닐 이유도 없고, 다닐 필요도 없다."라는 생각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퇴사를 결심하고, 상급자에게 통보합니다. 그런데 퇴사가 반려됩니다.

그는 내가 퇴사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하던 일을 다하고 나가야지 지금 나가는 것은 안된다고 합니다.

그것은 상도의가 아니고, 매너가 아니라고 합니다. 상도의가 없고 매너가 없는 것은 당신일 텐데...


나의 퇴사 결심을 인지한 주요 관리자들이 나를 회유하기 시작합니다.

"한두 달만 더 버티면 다른 팀으로 옮겨줄게.", "연말 표창과 포상 휴가를 줄 테니 좀만 버텨줘." 등등의

현실성이 전혀 없는 뻥카를 저에게 계속 제시합니다. 그만큼 제가 엄청난 중책을 맡고 있었나 봅니다.


"이렇게 그만두면, 업계에 소문도 안 좋게 나는데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느냐?"라고 최후통첩을 날립니다.

이미 회사에 마음이 떠난 실무자는 개의치 않습니다. 잡으려면 진작에 잘해주고 잡았어야 했습니다.


사직원을 총무과에 제출합니다. 총무과는 그 사직원을 접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퇴사를 위한 또 다른 "전쟁"을 치르고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을 집으로 데리고 옵니다.

그렇게 퇴사도 내맘대로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5. 위 1~4단계의 과정을 거치면서, 글을 써서라도 나를 치유하고 싶고 기록을 남기고 싶 됩니다.


건강을 잃고 우울증을 갖게 된 피해자는 나인데, 아무도 나에게 사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퇴사를 하면 월급이 끊기는 것은 나인데, 회사에 손해가 막심하다고 나를 가해자 취급을 합니다.

그래서 퇴사라도 하겠다는데, 퇴사를 하는 과정 또한 전혀 순탄치 않습니다. 엄청난 고난을 겪어야 합니다.


그렇게 어렵게 퇴사를 하고 나면, 스스로 그 지난했던 과정과 지금의 현실을 제대로 평가하고 싶게 됩니다.

구조적인 잘못도 회사에 있고, 인사발령을 그따위로 낸 것도 회사이며, 나를 괴롭혔던 사람도 회사사람임을 활자로 남겨야만 합니다. 내가 잘못한 것보다 회사가 잘못한 것이 훨씬 더 많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퇴사의 이유와 원인을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객관화 과정일 수도 있고, 정당화 과정일 수도 있고, 합리화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방향이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체성을 회복하고 건강을 회복하며 삶을 회복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① 퇴사를 하게 된 원인, ② 퇴사를 결심하게 된 계기, ③ 퇴사를 하는 과정에서 퇴사자는 철저하게 약자로서 외면받는 상황이 꽤나 일반적입니다. 브런치에서 읽은 글 그리고 앞으로도 읽게 될 많은 "퇴사 글" 중 일부는 위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작성되는 것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MZ세대들 덕분에(?) 회사가 많이 바뀌었고 또 바뀌고 있다고 합니다만, 이렇게 "퇴사" 글이 많은 것만 보더라도 아직도 여전히 더 많이 바뀌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법적으로 퇴사의 책임소재를 따지는 글이 아닙니다. 퇴사상황맥락에 관한 글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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