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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법은 조변 Feb 04. 2024

가족이여! 그대들이여! 살림하는 내 마음을 아는가!

'주말'은 살림하는 사람에게는 '주중'과 같이 성실한 시간.

살림하는 사람에게는 '주말'이 '주중'과 같습니다.


'주중'도 어쩐지 그렇게 여유로운 것은 아니지만, '주말'은 조금 과장을 보태면 한 순간도 앉아 쉴 시간이 없습니다. 살림하는 사람이 주말을 보내는 마음에 대하여 글로 짧게 남겨봅니다.




■ 주말인데 간단하게 국수나 해 먹을까?


국수는 간단합니다. 먹을 때 간단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먹을 때만 간단합니다.

가족이여! 그대들이여! 국수는 이제 사 먹는 것으로 합시다.


멸치국물 내면서, 계란 고명 준비하면서, 호박, 당근, 양파 등을 볶아 내야 합니다.

국물이 식기 전에 소면도 늦지 않게 삶아 내어야 합니다.

혹시나 모자랄까 봐 넉넉히 삶아야 합니다. 다 먹고 남은 소면은 늘 나의 몫입니다.


집 근처에 국수를 파는 분식집이 꼭 있습니다.

그 분식집에서 국수를 사 먹기로 합시다.

먹기에는 간단하지만, 차리기는 꽤나 번거로운 것이 국수입니다.

쌓여있는 설거지 거리는 덤입니다.


 


■ 입맛도 없는데 치킨이나 피자나 대충 배달시켜 먹을까?


신선한 고기와 신선한 야채를 이미 장을 봤습니다.

가족이여! 그대들이여! 그 사실을 이미 수 없이 들었습니다.


냉장고에서는 일요일을 넘길 수 없는 신선한 고기와 신선한 야채가 있습니다.

소금구이로 할 것인지, 양념구이를 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는 중에......

그대들은 입맛이 없다는 핑계로 치킨을 말하고, 피자를 말합니다.


사실 저번에 시켜 먹고 남은 치킨도, 피자도 냉동실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대들은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 없이 열고 닫는 냉장고이지만, 그대들의 눈에는 안 보이는가 봅니다.

주말을 넘길 수 없는 고기와 채소가 그대들을 기리고 있는데, 그것이 보이지 않는 듯합니다.


쿠폰 얘기를 하지 말고, 쌈 거리나 씻고 다듬어 주면 좋겠습니다.

배달 얘기를 하지 말고, 잠깐이나마 산책이나 하고 오면 좋겠습니다.

"입맛이 있고! 없고!"는 집 밖에서나 하는 말입니다. 집 안에서는 그런 말하지 않기로 합니다.





■ 밥 먹고 배부른 것은 모두가 똑같습니다. 몸만 사라지지 않습니다.


식사 후 배부른 것은 상을 차린 사람이나 밥을 먹은 사람이나 똑같습니다. 무거워진 몸을 움직이기 쉽지 않습니다. 아무 말 없이 사라지고 나면 남은 그릇은, 남은 수저는 누구의 몫이라는 말입니까.


가족이여! 그대들이여! 제발 몸만 사라지지 않기로 합시다.

설거지를 도와주지 않겠더라도, 차려져 있는 상을 치우는 것은 같이 하기로 합시다.

각자 먹은 그릇과 수저는 싱크대에 옮겨놓도록 합시다.


그대로 두고 떠나가버리면, 남은 사람은 수없이 같은 행동을 반복해야 합니다.

그대들이 한두 번씩 정리하고 가면, 무거워진 몸으로 그나마 치우기가 낫습니다.


배부르면 좀 쉬다가 치우면 되지 않느냐는 말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입니다.

냄비에, 그릇에 말라가고 있는 음식의 흔적은 시간이 흐를수록 씻어내기 어렵습니다.

테이블에 말라붙은 음식의 흔적도 시간이 갈수록 닦아내기 어렵습니다.


배불러 무거워진 몸으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그대들도 알아야 합니다.




■ 세탁이 끝났다는 알림음은 누구에게나 들립니다. 못 들은 척하지 않습니다.  


돌아서면 밥 때고, 또 돌아서면 밥 때입니다. 사이에 겨우 세탁기를 돌렸습니다.

세탁이 끝났다는 알림음 소리는 꽤 멀리까지 들립니다.


가족이여! 그대들이여! 부디 세탁완료음을 듣고도 그냥 지나치지 마시오.

그 세탁기에는 그대들의 옷과 수건이 절반 이상 들어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식사 챙기고, 간식 챙기기도 바쁜 주말에 세탁완료음 정도는 그대들이 신경 써줄 수 있는 것 아니오.

세탁기에 있던 빨래를 건조기로 옮기는 단순한 일은 그대들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 아니오.


그러니 세탁이 끝난다는 알림음은 못 들은 척 그냥 지나치지 말아주시오. 

정말로 못 들었다면 건조기의 완료 알림음은 그냥 지나치지 마시오.

주말에는 살림하는 내 마음을 좀 알아주시오.



※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100% 허구의 상황을 상상하고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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