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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법은 조변 May 28. 2024

주부가 식은 밥, 오래된 반찬을 먹게 되는 진짜 이유

냉장고 사정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 없음을...


주부가 식은 밥, 오래된 반찬을 먹게 되는 진짜 이유


1. 냉장고에 밥과 반찬이 얼마나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왜 모르는 걸까요? 주부가 아닌 다른 가족들은 냉장고 안 어디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모릅니다. 주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어제 데쳐서 식혀놓은 브로콜리, 지난 주말에 해놓은 두부부침... 아주 잘 보이게 투명한 유리 밀폐용기에 담아서 잘 보이는 곳에 둡니다. 그렇지만 다른 가족들은 해 놓은 반찬의 존재를 알지 못합니다.


가끔 식사를 챙겨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를 대비해서 여러 반찬, 국과 밥을 냉장고 안에 잘 전시하고 또 문자(카톡)도 보내놓고 외출을 합니다. 밥이랑 국만 데워서 보이는 반찬을 꺼내 먹기만 해도 한 끼가 부실하지 않을 것이라고, 꼭 그렇게 챙겨 먹으라고 당부합니다. 그렇지만, 다른 가족들은 여전히 냉장고 안의 사정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시켜 먹습니다. 그들은 피자나 중국요리를 시켜 먹습니다. 다 먹고 깔끔하게 치우지 않기도 합니다.


외출에서 돌아온 주부는 일단 먹고 남긴 배달음식을 치우고 정리합니다. 그리고 잔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밥과 국과 반찬을 해놓고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데워먹지 않았습니다. 결국 가족들이 먹길 바랐던 밥과 국과 반찬은 다시 주부의 몫이 됩니다. 다른 가족들이 출근하고 등교를 한 사이에 주부는 지난번에 해놓았던 밥과 국과 반찬으로 식사를 합니다. 새로운 요리를 할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먹어 조져야 할 것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2. 저녁에, 주말에 '집밥' 요리할 계획이 틀어지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집밥"을 먹기 싫으면 미리 알려주면 좋겠습니다.

낚시 계획이 있으면 미리 알려주면 좋겠습니다.

외출 계획이 있으면 미리 알려주면 좋겠습니다.

왜 당일에 바로 직전에 알려주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말에 정신없이 장 보는 것이 싫어서, 여유롭게 제정신으로 장 보는 것이 좋아서 주부는 보통 주중 낮에 장을 봅니다. 장을 보면서 주중 저녁과 주말 식사 계획을 세웁니다. 오늘 저녁에는 고등어구이를 해주고, 내일 저녁에는 양념 목살을 구워주고, 이번 주말에는 소불고기를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 계획에 맞추어서 장을 봅니다. 생선은 가급적 빨리 먹고, 냉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조금 천천히 먹을 수 있습니다.


주중 저녁은 특히 바쁩니다. 퇴근 시간, 하교 시간에 맞추어서 식사를 준비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너무 빨리 준비를 하면 식어서 맛이 없고, 너무 늦게 준비를 하면 식사 전에 과자나 과일을 까먹고 계시기(!!!) 때문에 식사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서 마음이 바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바쁘게 식사를 준비합니다. 그래도 주중에는 밥을 차려주면 잘 먹어주는 편이어서 다행입니다.


문제는 주말입니다. "외식이나 할까?", "저 나가서 먹고 올게요", "밥 생각이 없어요" 이런 말은 생각만 하는 것입니다. 표현하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이롭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표현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식사 계획이 다 틀어집니다. 오늘까지만 있어야 할 생선과 고기와 채소가 며칠 더 냉장고에 있어야 하게 되었습니다. 상하지 않고 버텨주기를 바랍니다. 버릴 수는 없습니다. 요리를 해서 내가 먹도록 합니다.



3. 가끔 냉동실에서 선사시대 유물 같은 것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요즘 포장이사를 하면 하나도 버리지 않고 전부 다 옮겨줍니다. 냉장고 안에 있던 식재료도 그대로 다 옮겨줍니다. 그래서 냉동실에 있는 식재료 중에서 도대체 언제부터 있었던 것인지 그 기원을 알기 어려운 것들도 제법 있습니다. 이 집으로 이사 오기 전에 샀던 것 같은 냉동피자, 화석인지 고기인지 구분이 어려운 냉동 돼지고기, 내용물을 확인하기 두려운(?) 검은 봉지 물건 등이 냉동실 한 구석에서 숙성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런 것들은 눈 딱 감고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실행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 정도면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꽉 찹니다.

개봉합니다. 냄새를 맡습니다.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양념을 좀 해서 먹으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요리를 합니다. 신선하지는 않지만, 먹을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냥 먹기는 좀 그래서(?) 고추장과 참기름으로 비벼 먹습니다. 먹을만합니다. 그런데 맛이 있지는 않습니다.


버리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냉동식품이라고 해도 1년이 지나면 버리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런 상식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냉동실의 현실은 다릅니다. 지난 추석 먹다 남은 송편, 지난 설날 요리하다 남은 떡국떡, 지지난 겨울에 소분해서 얼려 놓은 미역국 등 하나하나 뜯어보면 상태가 나쁘지 않습니다. 떡은 떡처럼, 국은 국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버릴 수 없습니다.



4. 버리기 아깝지만 다른 사람 먹이기는 미안한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버리기 아깝지만 다른 사람 먹이기는 미안한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조금 오래된 식재료, 조금 오래된 밑반찬, 조금 오래된 식은 밥, 조금 오래된 냉동식품.

그것들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장을 보는 주부만이 그 사정을 알고 있습니다.


잘 알기 때문에 가장 오래된 것부터 먹습니다.

오늘 당장 먹어 없애야 하는 것이 눈에 보이기 때문에 새로운 음식을 해 먹을 수 없습니다.

다른 가족들에게 먹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습니다.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매일 경계선에 놓여 있는 것을 먹을 수밖에 없는 그런 사정이 있습니다.


대충 챙겨 먹고 싶어서 대충 챙겨 먹는 것은 아닙니다.

냉장고 속 사정을 잘 알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덧. 그래도 갓 지은 쌀밥, 따끈한 국, 정성 어린 반찬을 맛있게 함께 는 가족들이 있어 식사를 준비하는 보람과 행복이 있습니다. 



제가 쓴 매거진과 브런치북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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