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부모님과 식사를 하면서 미래 세대에 대하여 간단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50년 대에 태어나신 어무이, 아부지는 80년대에 태어난 저와 제 동생, 그리고 2020년 전후에 태어난 제 아들과 제 조카들의 세대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사실, 한 세대가 다른 세대를 100% 이해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세대를 이해하고 공감할 필요는 있겠지요. 그런 차원에서 가볍게 나눈 이야기이니, 너무 심각하고 진지하게 보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 1950년대에 태어나신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의 키워드는 "결핍과 인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감히 추측할 수 없는, 상상할 수 없는 빈곤과 궁핍을 겪은 세대라 생각합니다. 점차 나아지기는 했겠지만, 태어날 당시에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어느 정도의 절대적인 빈곤 상황을 경험하신 것으로 추측합니다. "보릿고개"라는 말을 직접 경험하신 세대일 것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에서는 어느 특정 사항에서의 '결핍'은 일반적이었을 것 같습니다. 모든 측면에서 풍족했던 가정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결핍은 경제적인 것일 수도 있고, 가정의 행복일 수도 있고, 형제간의 우애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조금씩은 무엇인가 모자란 부분이 있지만, 그 모자란 부분도 삶의 일부인 것을 받아들이고, 그 '결핍'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하여 더 노력한 세대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 결핍에 대처하기 위하여 그리고 그 결핍을 극복하기 위하여 "인내"라는 키워드도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와 함께 하였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나는 부족한 상황에서도 참고 견디면서 노력하여 끝내 성공을 이루어냈다."라는 말은 거짓말이 아닐 것입니다. 인내하면서 결핍을 극복한 세대이기 때문에 "나 때는 말이야", "나는 더 힘들었어"라는 말을 하실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1950년대에 태어난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는 대한민국의 성장과 함께 살아온 세대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인내하고 노력한 기간에 국가도 그와 비슷하게 성장하였습니다. 힘든 상황을 참으면서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경험적 믿음이 형성될 수 있었던 세대였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 애들이 제대로 노력도 하지 않고 포기부터 하는 모습"을 맨 정신으로 지켜볼 수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 1980년대에 태어난 저와 제 동생 세대의 키워드는 "경쟁과 자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국민학교를 다닐 때 오전반과 오후반을 경험했습니다. 어디를 가도 나와 같은 어린이들이 많았습니다. 5학년 때 다른 국민학교로 전학을 가서 부여받은 번호가 57번이기도 했습니다. 집 밖으로 나가면 항상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친구집이 마치 내 집인 것처럼 많이도 들락날락했습니다.
친구가 많았고 그래서 경쟁도 심했지만, 그 상황 자체가 암울하지는 않았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공부가 아니라도 무엇 하나를 열심히 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절대적 빈곤 상태에서 거의 벗어나는 시점에 저의 세대가 태어난 것 같습니다. 밥을 먹을 수 있지만, 라면이 먹고 싶어서 라면을 먹는 세대이기도 했습니다. 아파트에 살면서 "내방"을 가지게 된 세대이기도 합니다.
문화적으로도 자유롭고 풍요로운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조용필, 김수희, 노사연, 이무송으로부터 시작하여 서태지, HOT, SES, 핑클, god, 신화 등 아이돌 1세대의 전성기를 누리며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2002년 월드컵을 직접 겪었던 세대이기도 했습니다. 어느 정도 경제적인 안정기에서 인생을 시작하여 함께 즐길 거리가 많았던 시대를 살았습니다.
한편, 1997년 IMF 국제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개인의 노력과 국가의 성장은 정비례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목격한 세대이기도 합니다. 국가는 항상 성장하지 않을 수 있고, 때로는 엄청난 위기에 처할 수 있으며, 그러한 위기 상황에서는 개인의 삶도 황폐해질 수 있다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세대입니다.
요약하면 '잔소리'를 싫어하고, 남의 기대보다 자신의 삶이 더 중요한 세대인 것입니다. 경쟁에 익숙하지만 그만큼 경쟁을 싫어하고 피하고 싶은 세대이기도 합니다.
● 2020년 전후에 태어난 제 아들과 그 친구들의 키워드는 "불안과 불신"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초등학교 1학년인 제 아들은 아직 미래에 대하여 불안해하지는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앞으로 자신 앞에 펼쳐질 냉혹한 미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커서 청소년이 되고, 성인이 되면 제 아들과 그 친구들의 키워드가 "불안과 부정"이 될까 적지 않게 우려가 됩니다.
제 아들과 그 친구들이 부양해야 하는 노인 세대가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그 노인들의 기대 수명도 100세에 가까울 것입니다. 경제 활동을 하는 인구는 매일 줄어들고, 보건복지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인구는 매일 늘어납니다. 뉴스에서는 매일 "어느 지역의 공동화"를 다루고, 국가의 경제 상황은 전년 대비 마이너스 성장이 일상화될 것입니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없고, 기대하지도 않는 세대가 될 것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희망"의 사전적 의미가 '앞으로 잘될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합니다. 제 아들과 그 친구들이 성인이 되고 난 후, 그들에게 희망이 있을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경제활동의 주체가 매일 감소하는 상황에서는 기존에 정립되었던 사회학적, 경제학적 이론이 대부분 부정될 것입니다. 이전 세대가 하는 말과 경험이 대부분 부정될 것입니다. 생물학적으로 삶이 이어지기는 할 것이지만, 사회적으로 그들의 삶이 나아질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에게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더 나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다."고 격려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이미 당연하게 가지고 있는 것들을 우리의 자녀 세대는 가지지 못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녀 세대가 살아갈 사회에서 그들이 신뢰할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이 될지 매우 궁금합니다. 미리 알 수만 있다면, 그 가치를 어떻게든 미리 확보해 두고 싶습니다.
독자님과 작가님들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 추측과 생각에 동의하시는 지점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을 지점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개개인의 경험은 자신에게는 절대적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상대적이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문제는 마지막에 언급한 미래에 관한 것입니다. 분명히 비관적일 텐데, 어느 정도 비관적인지, 얼마만큼 세상이 나빠질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예측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물론 제가 능력이 부족하여 접근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정말로 그렇다면 제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빅데이터와 AI를 통하여 우리 자녀 세대의 미래를 보다 정확하게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이 매우 필요할 것 같은데, 이에 대한 대책이 충분하지에 대해서는 부모 세대로서 확신이 없습니다. 어떤 준비가 실질적인 대비가 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