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법은 조변 Oct 13. 2024

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녀를 짝사랑한다.

Every parent has a crush on their child.

안녕하세요.

'나만 몰랐던 민법', '박사는 내 운명', '조변명곡', '조변살림&조변육아'를 쓰고 있는 조변입니다.


https://brunch.co.kr/@lawschool/118


예전에 제가 위와 같이 "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식을 짝사랑한다."는 글을 썼습니다.

요즈음 AI 번역이 꽤 잘 된다는 얘기를 듣고, Deep L이라는 AI 번역툴로 번역을 해봤습니다.

전반적으로 다듬어주기는 해야 하지만, 그래도 저의 영작 실력보다는 훨씬 훌륭한 것 같습니다.


The author reflects on their experience as a parent and the concept of unrequited love for their child. They realize that loving their child and wanting them to be happy should be enough, even if their love is not reciprocated. The author appreciates the simple gestures and moments they share with their child, such as having a meal together or feeding them. They also discuss overcoming their fear of driving in order to be able to travel and spend time with their child. For their 10th anniversary, the author and their spouse decide to go to Legoland because it is their child's favorite place, prioritizing their child's happiness. The author contemplates the passage of time and expresses a desire to stay young while watching their child grow up.




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녀를 짝사랑한다.

Every parent has a crush on their child.



원래부터 당연히 '짝사랑'이었다고 하니, 마음 한 구석의 '억울함'이 사라졌다.    


왜 주고받는 것이라 생각했을까. 나는 나의 아들을 짝사랑하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왜 힘들다 생각했을까.

'짝사랑'이란 그저 내가 사랑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 그저 그 사람이 행복하길 바라는 것, 나에게 사랑이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은 것인데, 나는 미처 그 당연한 사실을 몰랐던 것일까.


나에게 한 번 웃어주기만 해도, 나의 말을 들어주기만 해도,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기만 해도 좋은 것이었다.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짝사랑'하는 이의 기본 태도가 아닌 것인데, 왜 나는 항상 그 이상을 바랐던 것일까. 원래부터 당연히 '짝사랑'이었다고 하니, 마음 한 구석의 '억울함'이 사라지고 '편안함'으로 채워졌다.


When I realized that it was always 'unrequited love', the 'bitterness' in my heart disappeared.    


I was just crushing on my son, so why did I think it was hard?

Why hadn't I realized that 'unrequited love' means that it's enough to love someone, to want them to be happy, and to be okay if they don't love me back?


It was enough to smile at me once, to listen to me, to spend time with me, and that was enough. To want more than that is not the good attitude of a 'crush', so why did I always want more than that? When I realized that it was a natural 'crush' from the beginning, the 'bitterness' in my heart disappeared and was replaced by 'comfort'.


매번 지겹도록 돈가스를 먹는 데이트도 '짝사랑'하는 사람에는 불만이 될 수 없다.


'아... 언제쯤 외식할 때 돈가스를 먹지 않을 수 있을까. 얼큰한 해장국에 소주 한 잔 할 수 있을까...'

참 용감한 푸념을 했었다. 매운 것을 전혀 먹지 못하는 아들과 외식을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다니...

언제까지 나랑 같이 밥을 먹어줄지 모르는 사람과 밥을 함께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것을...


짝사랑하는 사람의 돈가스는 손수 잘라주고 먹여주는 것은 영광이다. 나와 함께 밥을 먹고, 밥을 먹으며 얘기하며, 그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주는 사람이 고마운 것이다. "짝사랑"하는 그가 매운 것을 먹을 수 있게 되면 더 이상 나랑 외식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매일 밥을 같이 먹어주는 날이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는 실감해야 할까 봐 덜컥 겁이 난다.


Even a dinner with a boring pork cutlet every time can't be a complaint for someone you're in love with.


'Ah... I wonder when we can go out to eat and not eat pork cutlet, and have a glass of soju with a bowl of haejangguk...'

That was a very brave complaint. I was eating out with my son, who can't eat spicy food at all, and I was thinking...

I should be grateful to be able to share a meal with someone who doesn't know how long they'll eat with me...


It's an honor to cut and feed your crush's pork cutlet by hand. I am grateful for the person who eats with me, talks to me while eating, and spends time with me like that. I realize now that once my “crush” can eat spicy food, he won't eat out with me anymore.


I'm dreading the realization that there aren't that many days left when we can eat together every day, and I'm afraid I'm going to have to face that.


'짝사랑'하는 그를 위하여 운전대를 다시 잡았다.


20대 군복무 시절, 다른 사람의 실수로 대형차 접촉사고가 났었다. 많이 다치진 않았지만, 그때 사고 이후로 운전대를 다시는 잡지 않았다. 운전하는 것이 겁나기도 했고, 교통사고를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30대 중반이 돼서 운전대를 울면서 다시 잡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주차장에서 도로로 올라갔다. 수많은 경적소리를 들으며, 앞만 보고 직진했다. '짝사랑'하는 그 사람이 태어나기 전에 다시 운전을 할 수 있어야 했다.


나의 어릴 적을 떠올렸다. 아버지와 프라이드를 함께 타고, 국도를 여행했던 그 행복한 추억을 떠올렸다. 차 에어컨을 1단으로 했다가, 4단으로 했다가 깔깔 거리며 아버지와 프라이드를 탔던 그때를 생각했다. 나도 그런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주말이면, 어디든 함께 차를 타고 놀러 갔다 오는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그 덕분에 다시 운전을 할 수 있다. 주말에 아들과 여행도 갈 수 있다. '짝사랑'하는 그와 데이트를 할 수 있다.


I get back behind the wheel for my 'crush'.


When I was in the military in my 20s, I was involved in an accident with a large vehicle caused by someone else's mistake. I wasn't seriously injured, but I never got back behind the wheel after that accident. I was afraid to drive, and I didn't want to be in a car accident again.


In my mid-30s, I got back behind the wheel crying.

Sweating profusely, I pulled out of the parking lot and onto the road. I drove straight ahead, listening to the many honking horns. I had to be able to drive again before my “crush” was born.


I thought back to my childhood. I remembered those happy memories of traveling the country roads with my dad in the Prius. I remembered how he would turn the car's air conditioner to first gear, then to fourth, and giggle as he and I rode along. I wanted to be that kind of dad, the kind of dad who would drive us everywhere on the weekends.


Thanks to him, I can drive again. I can travel with my son on the weekends. I can go on dates with my 'crush'.


결혼 10주년 기념 여행은 레고랜드만 한 곳이 없다.


나도 짝사랑하지만, 나의 아내도 짝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아내와 결혼 10주년 기념 여행은 그 짝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레고랜드로 다녀왔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짝사랑'하는 그가 즐겁고 행복해야, 나도 나의 아내도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 신혼여행을 갔던 몰디브로 다시 갔다면, 그가 그렇게 즐겁고 행복했을 리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레고랜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네가 좋으면, 나도 좋아"라는 말을 참 자주 했다. 나도 많이 했고, 나의 아내도 많이 했다. 짝사랑하는 사람의 단골멘트 아니겠는가. 무엇이 되든 그가 좋으면 나도 좋은 것이다.


There's no place like Legoland for a 10th anniversary trip.


I have a crush, but my wife also has a crush. So for our 10th anniversary, we went to Legoland, her favorite place.


It was a no-brainer: if my 'crush' is having fun and is happy, then my wife and I can have fun and be happy. If we went back to the Maldives, where we honeymooned, I don't think he would have been as happy. That's why LEGOLAND was an obvious choice.


“If you like it, I like it.”,  I said it a lot, and my wife said it a lot. It's the mantra of unrequited love: whatever he likes, I like.


짝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감동의 순간은 있다.


"네가 25살이 되면, 아빠는 60살이 된단다."

"그러면 내가 60살이 되면 아빠는 몇 살이야?"

"아빠는 95살쯤 되겠네. 100살이면 죽는데 죽기 직전이겠다(장난이지롱)."


아들은 갑자기 심각해진다. 아빠가 노인이 되는 것도 100살이 되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아빠는 지금 모습 그대로 있으면서, 아들만 훌쩍 클 줄 알았을 것이다.  


아빠는 할아버지가 되지 마란다. 계속 40살로 있어라고 한다.

할아버지가 되면 같이 축구를 못하니 안 된단다.

100살 되면 죽으니 절대 안 된단다. 오래오래 같이 살아야 하니 그러면 안 된단다.


정말로 그러고 싶다.

진심으로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지금 모습 그대로 남고 '짝사랑'하는 아들만 커가면 좋겠다.  


Even unrequited love has its moments.


“When you turn 25, I'll be 60.”

“So when I turn 60, how old will you be?”

I'll be about 95. When I am 100, I'll be dead, and I am about to die (jokingly).”


My son is suddenly serious. He doesn't realize that his dad is going to be an old man or a 100-year-old.

He thought he'd stay the same, and his son would grow up.  


My son says, “Don't be a grandpa. I hope you to stay 40."

I can't be a grandpa because then we can't play soccer together.

I can't be 100 because then I'll die. I can't be a grandpa because then I'll be dead.


I really want to.

If I could, I would stay the way I am now and let my 'unrequited' son grow up.   




제가 쓴 매거진과 브런치북을 소개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변리뷰] 오냐오냐 키우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