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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법은 조변 Nov 06. 2023

나만 몰랐던 민법의 "맛": 4가지 요리

한정식 코스 → 크림파스타와 피자 → 탕수육과 짜장면 → 소고기뭇국과 밥


민법은 '백화점 전문식당가'의 느낌이 난다.


최근 백화점에 있는 '전문식당가'를 가본 적이 언제입니까? 백화점 전문식당가는 대부분 최상층에 있습니다. 맛있는 요리와 멋진 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매번 갈 때마다 오늘은 어디서 뭘 먹을지 고민이 됩니다. 정갈한 한식은 물론이고, 중식도 있고, 이태리 음식도 있습니다.


민법도 '백화점 전문식당가' 같은 느낌입니다. 믿기십니까? 민법 생각만 해도 잘 먹었던 음식도 소화가 안될 지경인데, 민법이 '백화점 식당가' 같다고 하니... "드디어 조변도 조회 수 올려보려고 그냥 막던지는 구나"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민법을 150회 이상 강의를 해 본 경험에 비추어 보면, 민법은 4가지 명품 요리를 차례로 맛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오늘은 '나만 몰랐던 민법의 맛'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민법총칙은 무슨 맛인지, 물권법과 채권법은 어떤 맛인지, 가족법은 또 무슨 맛인지 살펴보면서, 큰 시야에서 민법의 견적을 잡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표를 보시죠.

   


민법은 법 체계상 5개의 "편"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민법총칙(제1편), 물권(제2편), 채권(제3편), 친족(제4편), 상속(제5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실무적으로는 민법총칙, 물권법, 채권법, 가족법(친촉+상속)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민법을 배울 때에도 위와 같이 4개로 구분하여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의 결론은 이 4개의 각 부분들이 참 많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민법총칙은 한정식 같은 느낌, 물권법은 이태리 요리 같은 느낌, 채권법은 중국 요리 같은 느낌, 가족법은 어머니께서 손수 끓여주신 국밥 같은 느낌입니다. 민법이라는 하나의 제목 아래에 각기 다른 법리가 같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습니다. '한 지붕 네 가족'과 같은 느낌입니다.



민법총칙은 '고급 한정식 코스 요리'다.


오랜만에 친구가 밥 한 끼 하자고 합니다. '간단히' 삼겹살에 소주나 할까 싶은데, 친구는 기왓장이 보이는 낯선 식당으로 들어가자고 합니다. 친구는 바로 1인당 10만 원짜리 '고급 한정식 코스 요리'를 주문합니다. 이 사람이 왜 이러나 싶다가도, 일단 맛있게 먹어보기로 합니다.


일단 따뜻한 죽이 나옵니다. 샐러드가 나오고, 정갈한 나물 반찬이 나옵니다. 회와 육회가 나옵니다. 불고기와 수육이 나옵니다. 잡채가 나옵니다. 해물찜이 나옵니다. 배가 불러오지만, 계속 나옵니다. 전골이 나옵니다. 찌개가 또 나옵니다. 돌솥밥과 국이 나옵니다. 후식도 3가지 종류가 차례로 나옵니다.


나는 중간부터 이미 배가 꽉 찼는데, 나오는 음식이 모두 하나하나가 맛있어 안 먹을 수도 없습니다. 배가 부르지만, 멈출 수 없습니다. 꾸준히 계속 쉴 새 없이 나옵니다. 물리적으로는 그만 먹을 수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그만 먹을 수 없습니다.


'민법총칙'은 딱 그런 느낌입니다. 민법 공부를 시작한 사람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메뉴 구성입니다. 저 또한 로스쿨에서 민법총칙을 배울 때, 이런 느낌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나를 이해하고 나면, 또 다른 법리가 다가옵니다. 그 법리를 이해하고 나면 또 다른 법리가 다가옵니다. 계속, 계속, 계속 다가옵니다.


민법총칙은 원래 그런 구성입니다. 그러니 당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원래 그렇게 무지막지한 메뉴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권리', '사람', '법인', '물건', '법률행위', '의사표시', '대리', '무효', '취소', '조건', '기한', '기간', '소멸시효' 순으로 그것들은 우리를 감동(?)시킬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민법총칙을 나중에 배울 수도 없습니다. 민법은 법률의 '인트로'이고, 민법총칙은 민법의 '인트로'이기 때문입니다. 다소 힘들더라도 꾸역꾸역 소화를 시키다 보면, 언젠가는 끝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가 나빠서 민법총칙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고, 꾸역꾸역 소화를 시켜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물권법은 '크림파스타와 피자'를 '미지근한 맹물'과 먹는 느낌이다.


민법총칙은 자잘한 법리들 계속하여 소화하는 느낌이라면, 물권법은 반대입니다. "물권법정주의"와 "소유권"이라는 막대한 두 개의 법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꿀' 없는 고르곤졸라피자, '탄산음료' 없는 크림파스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로지 미지근한 맹물 한 잔과 그들을 함께 해야 합니다. 


물권법은 매우 묵직하지만 깔끔하기도 합니다. 물권법정주의를 이해하고, 소유권만 이해하면 끝입니다. 크림파스타 한 그릇을 비우고, 고르곤졸라 피자 한 판만 비우면 끝나는 것과 같습니다. 지난번 글에서 우리 민법은 프랑스민법과 독일민법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했는데, 물권법은 특히 더 그렇습니다. 그래서 물권법의 법리는 낯설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의 '상식'과 다르게 알아야 하는 지점도 있습니다.


물권법은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야 합니다. 맹물과 함께 하는 크림파스타와 피자를 급하게 먹으면 무조건 소화불량에 걸리듯이, 물권법도 그렇습니다. 민법총칙만큼 자잘한 법리가 많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이해를 하면서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물권법의 모든 법리가 첫인상은 익숙하지만, 그 속에 낯선 풍미가 숨어 있습니다. 급하게 외우기보다 천천히 음미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권법정주의'라는 크림파스타, '소유권'이라는 피자만 잘 소화시키면, 물권법을 정복(또는 극복)할 수 있습니다. 두 개의 큰 법리를 이해하면, 나머지 자잘한 법리는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채권법은 '탕수육과 자장면 세트 메뉴'를 '시원한 탄산음료'와 함께 먹는 느낌이다.


탕수육과 자장면이 낯선 분은 없을 것입니다. 채권법은 민법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합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공부하는데 부담이 적은 민법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탕수육 '한 접시'와 자장면 '한 그릇'을 남김없이 다 먹어야 합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시원한 탄산음료와 함께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채권'은 '쿠폰'같은 것입니다. '만리장성'에서 받은 쿠폰을 '자금성'에서 쓸 수 없듯이, 채권도 아무에게나 쓸 수 없습니다. 쿠폰을 쓸 수 있는 사람을 채권자, 쿠폰에 따라 뭔가를 해야 하는 사람을 채무자라고 합니다. 채권자는 채무자에게 쿠폰에 적혀있는 것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요기요'나 '배달의 민족'이 우리에게 익숙하듯이 채권법도 우리에게 제법 익숙합니다.


'채권'은 주로 그들끼리의 약속(계약)에 따라 생깁니다. 즉, 국가(정부)가 모든 쿠폰을 다 파악하고 관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쿠폰에 따른 여러 갈등과 분쟁이 발생합니다. 탕수육 쿠폰을 썼는데, 군만두가 오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콜라 쿠폰을 분명히 썼는데, 배달이 누락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채권법에는 쿠폰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를 대비한 규정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유식하게 '채무불이행'을 대비한 규정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주 사용하는 계약의 메뉴판도 따로 갖추고 있습니다('계약각론'이라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약속(계약)이 아니라 이벤트(사건, 사고)로 쿠폰이 발생하는 경우에 관한 규정도 두고 있습니다(대표적인 사례가 교통사고 과실비율 '몇 대 몇'이 됩니다).


채권법은 가장 많은 규정을 두고 있지만, 하나하나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탄산음료와 함께 하면 탕수육과 자장면을 다 먹을 수 있듯이, 우리의 상식에 따라서 법리를 이해해 가면 마지막 파트인 '불법행위'까지 도달할 수 있습니다. 양이 조금 많기는 하지만, 꾸준함으로 승부하면 못할 것도 없습니다.




가족법은 '어머니께서 손수 끓여주신 소고기뭇국'과 '갓 지은 쌀밥'을 먹는 느낌이다.


가족법은 꽤 감성적인 민법입니다. 그래서 공부하다 보면 어머니께서 끓여주신 국밥 같은 느낌이 납니다. 과거의 어느 순간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 누군가의 가족이고 친족입니다. 누군가는 혼인을 했고, 이혼을 한 사람도 있습니다. 입양을 한 가족도 있고, 파양을 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상속개시의 원인인 '사망'을 둘러싼 여러 법리도 있습니다. 상속의 순위, 상속인의 결격, 상속지분, 상속포기 등 가장 큰 슬픔이 시작되는 그 순간 우리는 이러한 법리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장례식장에서 "이런 말 해서 미안한데, 돌아가신 삼촌께서 생전에 빚은 다 갚으셨니?"라고 묻는 용자가 있다면, 그분은 분명 가족법을 공부한 사람일 것입니다(바른생활 공부는 못한 사람입니다).  

 

가족법의 공부량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4개의 파트 중에서 가장 적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고기뭇국과 쌀밥처럼 단출하지만, 그렇다고 대충 공부할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는 우리 각자가 현실에서 마주해야 할 법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머리로 이해하고 가슴으로 한 번 더 이해하는 민법이기도 합니다.


'한 명의 사람'에게는 언제나 의무과 권리가 매달려 있습니다 '그 사람'의 가족관계에 관한 변화가 생겼을 때, 그에게 매달려 있는 의무와 권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가족법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결혼을 했을 때, 이혼을 했을 때, 입양을 했을 때, 사망을 했을 때... 기쁘고 슬프고 아픈 일들이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을 때, 누군가는 가족법을 공부하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습니다. 가족법도 꼭 알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법제처에서 운영하는 찾기 쉬운 생활법령정보에 '결혼준비자', '신혼부부', '상속', '입양', '이혼', '양육비', '재혼', '유언' 등 '가정법률'에 관한 생활법령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민법 중 가족법 외에 다른 법률의 내용도 함께 담겨 있으니, 시간 나실 때 미리 챙겨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민법은 조금씩 다른 느낌의 4개 파트가 하나의 법률로 묶여 있습니다. 민법총칙은 잘 차려진 한정식 요리 같고, 물권법은 느끼하고 묵직한 이태리 요리 같으며, 채권법은 맛있고 양 많은 중국식 요리 같습니다. 가족법은 어머니의 손맛이 느껴지는 따뜻한 국밥 같습니다.


이렇게 민법의 서로 다른 느낌을 미리 알고 공부를 한다면 조금은 덜 당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요리'로 '견적'을 잡아드렸습니다. 민법의 느낌을 잘 정리해 두시기 바랍니다.


                  

근 발행한 브런치북을 소개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civil-law

https://brunch.co.kr/brunchbook/law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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