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나만 몰랐던 민법: 민법총칙 "권리 쿠폰" 응용형
물권은 점유권과 본권으로 나뉘고, 본권은 소유권과 제한물권으로 나뉩니다. 또, 제한물권은 용익물권과 담보물권으로 나뉩니다. 용익물권은 지상권, 지역권, 전세권으로, 담보물권은 유치권, 질권, 저당권으로 나뉩니다. 아주 복잡합니다.
민법이 설계한 가장 큰 물권, 가장 완벽한 물권은 소유권입니다. 다른 물권은 소유권을 능가할 수 없습니다(★). 다른 물권은 6개의 조각피자와 피클과 같은 지위에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장(제3장 물권법)에서 배웁니다. 지금 이 순간! 이해할 것은 "소유권은 가장 완벽한! 물권입니다." 이 한마디입니다.
지금 단계에서 '물권'이라는 용어가 어렵다면, '물권'을 '소유권'으로 바꿔 읽으셔도 크게 틀리지는 않습니다.
한편, 물권은 메뉴판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메뉴판에 있는 물권 쿠폰만 유효합니다(어려운 말로 "물권법정주의"). 고객 맞춤형 물권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느낌만 정리하시고, 자세한 것은 나중에 배웁니다.
물권과 달리, 채권은 사람이 쿠폰 발생 행위(법률행위, 주로 "계약")를 하여서 자유롭게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물권은 메뉴판에 있는 것만 활용할 수 있지만, 채권은 그렇지 않습니다. 메뉴판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예시에 불과합니다.
'물권'은 기성품이고, 이미 존재하는 물건에 이름표를 바꿔다는 것이 핵심이라면, '채권'은 계약 등을 통하여 '맞춤형 쿠폰'과 같이 자유롭게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이런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이 됩니다.
실무적으로 채권 쿠폰의 "액션"이 자주 문제가 됩니다. 액션을 100% 했느냐, 100%가 아니냐로 옥신각신합니다. 어려운 말로 채무이행(=액션 100%), 채무불이행(=액션 100% 아님)이라고 하는데, 자세한 내용은 다다음 장(제4장 채권법)에서 배웁니다.
"액션 쿠폰(=채권)"도 물건처럼 사고팔 수 있습니다. 그것을 어려운 말로 "채권양도"라고 합니다(채권양도 정도는 들어본 분도 계실 겁니다). 이것도 '제4장 채권법'에서 배울 예정입니다. 느낌만 잘 정리해 두세요.
저는 업무상 메일을 보낼 때에는 반드시 5분 또는 10분 예약 발송 기능을 사용합니다. 메일을 보내기 전에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던 오타들이 메일 발송 버튼을 클릭한 후에는 샤라락 눈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오타로는 메일 제목으로 "법제처 로스쿨 실무수습 일정 공유"로 보내야 하는데, "법제처 로스쿨 실수수습 일정 공유"로 보냈던 사례입니다. 딱 한 글자 오타인데, 느낌이 많이 다릅니다. 그 이후로 예약 발송 기능을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쿠폰을 사용할 때에도, 쿠폰을 넘겨줄 때에도 예약 기능을 옵션으로 쓸 수 있습니다. 예컨대, '내가 쿠폰을 쓰긴 쓸 건대, 대한민국이 월드컵 우승하고 나면 그때 쓰는 것으로 하겠다'는 일방적 통보(의사표시), '내 제네시스 G80 자동차를 당신이 60세가 될 때 주겠다.'는 일방적 통보(의사표시)도 가능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는 나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되, 나중에 그 의지의 결과가 발생하도록 예약 기능을 걸어둘 수가 있는 것이죠. 문제는 가능성 또는 확률입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이 월드컵 우승할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보십니까? 그리고 나이가 60세가 되는 것은 건강을 유지한다면 그 확률은 100%가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민법에서 발생확률이 N%인 옵션을 "조건"이라 부르고, 발생확률이 100%인 옵션을 "기한"이라 부릅니다. N% 확률 옵션이 실제로 발생하는 것을 "조건 성취"라고 합니다. 그리고 조건은 성취 시점 전후로 효과를 두 가지로 줄 수 있습니다.
조건 성취 전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가 성취 후에 어떤 효과가 나타나게 하는 옵션을 "정지조건(X→O)"이라 하고, 반대로 조건 성취 전에 어떤 효과가 지속하다가 성취 후에 그 효과를 없애는 옵션을 "해제조건(O→X)"이라고 합니다.
민법 제147조에서 "조건(N% 옵션)"에 대한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제1항은 정지조건에 관한 규정, 제2항은 해제조건에 관한 규정입니다. 민법 번역본을 찬찬히 읽어보시면 이해가 어렵지 않으실 겁니다.
자, 우리도 이제는 대법원 판례를 한 번 보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번역도 붙여놨습니다. 안심하세요. 대법원 2018다201702 판결의 요지에서 조건과 기한에 대한 설명이 나와있습니다.
결국, 조건은 미래의 "불확실한(= N%)" 사항의 달성 여부에 따르게 하는 권리 쿠폰 옵션이고, 향후 달성 시점을 분명하게 찍을 수 없더라도 어쨌든 반드시 달성되는 것이면 "확실한(=100%)" 것으로 보아 기한으로 처리하겠다는 것이 사법부의 판단이자 입장입니다.
근데 왜? 위와 같은 판결이 있었을까요? 불확실한 옵션이면 조건이고, 확실한 옵션이면 기한인데 그것을 무려 대법원에서 판단하다니... 실무적으로 보면, '계약서'나 '공문' 등에 적혀 있는 '옵션 문구'가 분명하지 않을 때가 더러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조건 같고, 달리 보면 기한 같기도 할 때가 있습니다.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래서 불분명한 옵션 문구가 '조건'인지, '기한'인지 뜻을 밝혀야 하는 것이 판사의 일이 된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계약서를 쓰거나 다른 쿠폰 발생 행위(=법률행위)를 하면서 옵션 문구를 붙일 때에는 반드시 변호사 등 법률전문가의 검토를 거칠 필요가 있습니다. 조건을 조건대로, 기한을 기한대로 말이죠.
100% 옵션인 기한에 관한 규정도 민법 제152조에 있습니다. '시기'란 starting point이고, '종기'란 ending point입니다. '도래'란 '그때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조건이나 기한 등의 옵션은 일방적 통보(=의사표시)에 붙이기도 하지만, 보더 더 정확하게 접근하면 계약 등의 쿠폰 발생 행위(=법률행위)에 붙이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실 큰 차이는 없습니다만, 쿠폰 옵션은 법률행위에 붙이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기간'은 시간의 흐름입니다. 1시간, 3일, 1주일, 3달, 1년, 30년 등 시간의 흐름을 판단하는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아래 기간 관련 규정부터 보시죠.
민법 제156조에 따라 N시간, N분, N초의 기간을 계산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시작점을 늦출 필요가 없습니다. "땅!" 하면 바로 그때부터 계산하면 됩니다.
좀 헷갈리는 규정은 민법 제157조입니다. 시작점을 보통 하루를 늦춥니다. 10일 후, 10개월 후, 10년 후를 계산할 때 보통 첫째 날은 빼고, 둘째 날이 1일이 됩니다. 그런데 첫째 날이 1일이 되는 예외적인 상황이 있습니다. 바로 0시 0분 0초 정각에 쿠폰을 쓰는 상황입니다. 이때는 첫째 날이 FULL로 24시간으로 계산할 수 있기 때문에 첫째 날이 1일이 됩니다(아래 그림 참고).
법적인 조치를 0시 0분 0초에 하는 경우에만 첫째 날이 1일이 됩니다. 법적인 조치를 0시 0분 0초를 지나서 하게 되면 그날은 뺍니다. 어려운 말로 "초일불산입(첫째 날은 계산에서 뺀다)"이라고 합니다. 위 그림에서도 오후 9시에 쿠폰을 쓴 경우에는 첫째 날이 3시간이기 때문에, 첫째 날은 0일이고, 둘째 날이 1일이 됩니다. 꽤 중요한 개념입니다.
돌발퀴즈! 썸 타고 있는 토끼 친구들이 "오늘부터 1일"을 하려면 언제 오렌지주스를 마셔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0시 0분 0초에 원샷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늦어 버리면, 오늘부터 0일, 내일부터 1일이 됩니다. 이해가 어렵지 않지요?
나머지 기간 계산 방법은 심화편(우리 모두의 민법)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글은 여기서 끝입니다. 앗싸!!
오늘 살펴본 "권리 쿠폰의 응용형"은 아래 그림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두 이미지를 좌우(↔)로 샤샤샥 하시면서 쉬운 말과 어려운 말을 잘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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