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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법은 조변 Jan 01. 2024

안도감: 7세 아들의 10일 방학이 끝나가는 저녁에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함께 지내시는 초중고생 부모님들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제 아들은 유치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12월 22일 금요일까지 다니고 23일부터 1월 1일 오늘까지 10일간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겨울 방학을 보내고 이제 내일 8세의 마인드로 다시 유치원으로 등원합니다. 하루 종일 열정적으로 놀다가 조금 일찍 잠든 아들을 옆에 두고 안도감을 느끼며 짧은 글을 씁니다.


지난 여름방학을 홀로 제아들과 함께 보낸 아내에게 진심으로 고맙고 미안합니다.


지난 7월 말에는 제가 회사 일이 너무 바빠서 제 아내가 1주일 통으로 연가를 내고 아들의 여름방학을 함께 보냈습니다. 롯데월드도 가고 키자니아를 가면서 바쁘게 보냈고, 또한 저는 저 나름대로 일하면서 바쁘고 가족과 함께 휴가를 가지 못했다는 실망감으로 툴툴 거리기도 했습니다.  


이번 겨울방학 10일을 함께 보내면서, 제가 큰 잘못을 했었구나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에너지와 호기심이 넘치는 7세 아들을 혼자서 밥 먹이고, 여행 다니고, 씻기고, 입혔던 아내에게 제대로 미안하다, 고맙다 한 마디를 못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이번 10일간의 아들 겨울방학은 엄마, 아빠, 아들 셋이서 보냈음에도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괴롭고 힘들었다는 말이 아니라, 즐겁고 행복하고 재미있고 다이내믹했지만, 체력적으로 쉽지 않을 때가 있었고, 또 매 순간을 아들과 더 가열차게 보내고자 하얗게 불태웠던 10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부모가 함께 보내는 것도 쉽지 않은데, 아내 혼자서 아들과 여름방학을 보냈다니, 참 고맙고 미안합니다.


밥 때는 왜 이리 빨리 찾아오는지... 살림을 할 여유는 왜 이리 도통 생기지 않는지...


저는 육아휴직 중입니다. 그래서 아들이 유치원에 등원하고 나면, 비어 있는 시간에 장도 보고, 식기세척기와 세탁기, 건조기를 차례로 돌립니다. 재활용품 분리수거와 집청소도 자주 하려고 합니다. 아들이 집에 없을 때 주로 하던 것들이, 아들과 10일을 온전히 함께 지내니 살림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시점이 옵니다.


살림도 살림이지만, 아침 먹고 치우고 돌아서면 점심때가 옵니다. 점심 먹고 또 돌아서면 저녁때가 또 옵니다. 식사는 식사대로 준비를 하고, 살림은 살림대로 방치되어 있습니다. 아내는 아들과 놀이하고, 숙제하고, 공부하느라 체력과 멘탈을 소진하고 있습니다. 겨울방학이 10일보다 더 길었으면 버티기 쉽지 않았겠다 싶습니다.


조변떡국


연말연시이고, 휴일도 많아 쉬는 음식점도 많습니다. 그리고 매 끼니를 외식과 배달로 준비할 수도 없습니다. 냉장고에 있는 채소와 냉동실에 있는 고기로 식사를 준비해야만 합니다. 뻔한 맛이라 맛이 없겠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어줬으면 하는 욕심도 가지게 됩니다.


30일 저녁식사에는 밥과 고기와 쌈을 준비해서, 게임을 했습니다. 가위, 바위, 보를 해서 1등과 2등이 3명이 먹을 앞접시에 밥과 고기와 반찬을 배분해 주는 게임을 했습니다. 3등은 주어진 대로 무조건 먹어야 합니다. 대성공이었습니다. 어지간히 밥맛이 없었겠지만, 게임을 하면서 또 한 끼를 든든하게 먹였습니다. 뿌듯했습니다.


아들의 방학숙제는 엄마, 아빠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입니다. 결코 대충 할 수 없습니다.


아들의 유치원에서는 겨울방학 동안 있었던 일을 사진에 담에 포스터를 만들어 제출하도록 방학숙제를 주었습니다. 지난 여름방학숙제는 아내가 전담하였고, 우수상을 탔습니다. 이제는 저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저는 포스터를 어떻게 꾸밀지 혼자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중요한 매 순간마다 사진을 찍습니다. 인스타그램을 하는 것도 아닌데, 1:1 정사각형 비율로 사진을 찍습니다. 그 사진을 그냥 쓸 수 없습니다. 망고보드에 접속하여 각 사진의 제목과 프레임 역할을 하게 되는 130 X 170  사이즈 이미지로 디자인합니다. 파워포인트에 붙여 넣어 각 사진과 그룹핑을 하여 고화질로 저장합니다.


회사 근처 인쇄소에서 장당 500원의 거금을 지출하면서 올컬러 인쇄를 합니다. 그렇게 9개의 고퀄리티 사진 이미지가 출력되었고, 아들이 가위질을 합니다. 하드보드지에 진지하게 배치를 합니다. 시간순도 아니고 이벤트순도 아닙니다. 아무튼 배치가 완료되었습니다. 남은 한 부분에는 아들이 손수 쓴 글을 오려서 붙입니다.


그렇게 방학숙제가 완성되었습니다. 아빠의 기획력과 아들의 실무작업으로 완성하였습니다. 아들도 만족합니다. 지난 여름방학숙제로 이미 수상을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상을 받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상을 받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계획대로 멋진 방학숙제가 완성되었고,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초중고생을 두신 학부모님들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제 아들도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을 합니다. 지난 겨울방학에 예비소집일이 있어서 학교에도 다 같이 다녀왔습니다. 그렇게 저도 학부모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아직 여전히 부족한 것 같습니다. 10일간의 짧은 겨울방학고 쉽지 않았는데, 한 달이 넘어가는 긴 시간을 함께 보내시는 초중고생 자녀를 두신 학부모님은 정말로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그분들의 멘탈과 인내심, 평정심을 특히 존경합니다.


저도 더 노력하고 수련하여 올 여름방학을 더 즐겁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작가님, 독자님께서도 2024년 갑진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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