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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 Architect Oct 12. 2021

사랑이란?

월정리에서




지난 10월 초, 제주도를 다녀왔다. 영화 같은 시간들이었다. 일주일이 훌쩍 지났는데 아직도 잔상이 남아 있다. 물리적으로 다친 발이 지금 내 눈에 보이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진한 추억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광란의 밤(?), 마지막으로 부상당한 발로 점철된 영화같은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1. 진한 추억



아재 A, 아재 B 와 제주도에 다녀왔다. 이 정도 나이먹고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갈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놀라웠다. 사실 아재 A와 B는 올해 나의 소개로 처음 만난 사이였다. 그런데 소개시켜준 첫날부터 그렇게 죽이 잘 맞더니 어느 순간 우리 셋은 여행계획을 같이 짜고 있었다. 그리고 10월 2일, 각자 비행기를 타고 제주공항에서 만났다.



숙소, 렌트카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계획이 없는 여행이었다. 하얀 도화지 위에 여행을 그리기 시작했다. 설렌 마음으로 빨간 지프(Jeep)를 인수했다. 협재 도착 후 멋진 숙소에 한 껏 흥이 올랐다. 협재 해변에서 15만원짜리 샴페인을 시켰다가 음식점의 보관 미숙으로 터져 불가피하게 환불을 했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역시 노을은 협재라며 되내였다. 저녁 예약을 한 곳이 없어서 음식점에 계속 퇴짜를 맞고 협재를 배회하다가 '홍대부부'라는 맛집에 가서 미친듯이 한라토닉을 집어 삼켰다. 참돔 사시미와 해물라면, 흑돼지 김치찜은 덤이었다. 갑자기 퓔(feel?) 받아서 근처에 아주 힙한 펍에 가서 최신 유행을 접하기도 했다. 다시 협재 해변으로 돌아와 아재 3명이서 벨런스 게임을 하고 우리끼리 미쳐서 놀았다. 숙소에 돌아와서 아재A는 나이를 못 이겨 잠에 들었고 아재 B와 새벽 3시에 나와서 별을 봤다. 둘다 이과 출신 너드(nerd)라 별자리를 너무 잘 안다는 흠이 있었다.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별을 세고 노래를 부르다 돌아 왔다.





2. 사랑에 관한 이야기



다음날, 아재 3명이서 운치 있게 해변가 스타벅스에 갔다. 느즈막하게 해장할 겸 칼국수 집을 갔다가 재료소진으로 눈물을 머금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기회가 되어 통구이조림 왕갈치를 아주 맛나게 먹었다. 제주시에서 바베큐 할 것을 사고, 와인도 사서 월정리로 향했다. 월정리는 힙한 협재와 사뭇 달랐다. 협재는 20대의 힙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지만 월정리는 딱 아재들에게 맞는 옷을 입은 듯한 포근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우드스탁'이라는 포근한 카페 2층에 앉아서 갑자기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다.





각자 사랑이 무엇인지 개똥철학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아재A와 나는 나름 경험이 많다(?)며 여러가지를 이야기하며 아재 B에게 가르침을 주기 시작했다. 결국 아재A와 나는 사랑의 정의에 합의했다. 사랑은 열정, 애정, 헌신 3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적어도 '한 사람을 사랑했네~'라고 말하려면 한 사람에게 그 세 가지 감정을 모두 겪어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3요소가 모두 유지되면 좋겠지만 열정과 헌신은 물과 기름 같아서 함께 존재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열정으로 시작된 사랑이 헌신으로 유지되고 있다면 '사랑'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부연설명을 하자면 열정은 처음에 느끼는 강렬한 설렘, 욕망을 말하고, 애정은 함께 시간을 보내고, 꿈을 꾸고, 미래를 그리는 것을 말한다. 헌신은 나의 이익을 희생하거나, 관계에 대해서 책임을 지거나, 관계를 보호하고 위기에도 굳건히 이겨내는 힘을 말한다. 우리는 사랑을 시작할 때 '헌신'을 예상하거나 그리지 않는다. 오로지 열정과 애정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어떤 관계든지 '열정'은 무조건 식게 된다. 하지만 열정으로 시작된 사랑이 애정을 머금은 채 헌신으로 전환될 때, 그 사랑은 완성이 된다.






3. 광란의 밤과 영화같은 시간



아재 3명이서 사랑에 관한 개똥 철학을 도출하고 들떠서 모엣샹동을 깠다. 해변을 보며 나름 준비한 샴페인 잔에 운치있게 와인을 들이켰다. 참으로 황홀한 순간이었다. 취한 밤으로 흘러들어갔다. 숙소에 와서 준비한 흑돼지를 구워먹고 생떼밀리옹 레드와인과 함께 곁들여 먹었다. 그 또한 황홀했다. 해변으로 나갔다. 버스킹을 하고 있었다. 공연이 막바지로 향하고 있었다. 마지막 곡은 엠시더맥스의 '입술의 말', 그냥 말이 필요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밤으로, 해변으로, 노래로 스며 들어갔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난 발을 다쳐 있었고, 응급실에 가서 찢어진 발을 치료했다. 영화를 만들어도 이렇게 만들 수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4. 에필로그



덕분에 지금까지도 발을 다쳐 요양 중이다. 발은 그래도 회복 단계에 접어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쓸 여유도 생겼다. 추억은 사라지지도 소진되지도 않지만 내 머리속에서 희미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렇게 글로써, 내 30대의 진한 추억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다. 정신 없는 여름 날을 보내고, 영화 같은 가을 제주를 보낸 기념으로 '사랑이란'이라는 윤상 노래를 들으며 글을 마친다.





"사랑이란"(윤상)



"오랫동안 꿈꿔운 사랑이 다를 수도 있겠지, 들어봐 나의 사랑은 함께 숨쉬는 자유, 애써 지켜야 하는 거라면, 그건 이미 사랑이 아니지"


https://youtu.be/JJLgg2sNq2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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