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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룡부장 Mar 05. 2021

그녀를 제발 내버려 두세요!

군형법의'군인등강제추행'이야기

   202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여성 군인은 총 1만 명을 넘어섰다. 비율로 따졌을 때는 여전히 10%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계속해서 증가 추세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과거 TV 예능 프로그램인 '진짜 사나이'에 등장한 적도 있는 여군 특수부대인 수도방위사령부의 '독거미 부대' 같은 예를 생각해보면 여군의 비율 증가는 더욱 고무적이다.


   계급이 존재하며 상명하복의 지휘 체계를 갖추고 있는 군 조직 특성상, 여군의 생활환경이나 처우에 대한 사회적 우려는 매우 크다. 성범죄를 비롯한 각종 범죄에 노출될 위험성이 매우 높다는 이유 때문이다. 실제로 군에서 계급을 이용한 성범죄가 벌어졌다는 뉴스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몇 년 전에는 수도권 모 사단의 사단장이 여군 하사를 성추행하여 군사경찰에 긴급체포된 후, 몇 년에 걸친 법정 공방 끝에 실형을 선고받은 일도 있었다. 국군 창설 이후 장군이 성범죄로 인하여 긴급체포된 것은 최초였다. 또한 그 사건의 피해자인 여성 군인은 이전에도 다른 군인으로부터 성범죄를 당한 적이 있으며, 그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사단장으로부터 다시금 성범죄를 당하게 된 것이라는 사실까지 알려졌기에, 사람들의 충격은 더욱 컸다.


내가 아는 가장 멋진 여군에 관한 영화 '지.아이.제인(1997)'


   일련의 대형 성범죄 사건 이후 군은 여군들에 대한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각종 제도를 도입해오고 있다. 그중에는 매우 급진적인 것들 역시 포함되어 있다. 가령 군인사법 제10조는 성폭력범죄로 1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자는 군인으로서 결격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현역 군인이 성폭력범죄로 벌금 100만 원이 넘는 형을 선고받는 경우, 판결 확정 즉시 군복을 벗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조문이 얼마나 강한 규정인지는 같은 조문의 다른 죄들과 비교했을 때 더욱 명확한데, 일례로 군인이 직무 중 횡령이나 배임을 저지르더라도 3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는 경우에만 결격사유에 해당한다. 성범죄자는 군인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의사를 천명한 것이나 다름없다.


   군형법은 그런 의사를 더욱 명확하게 나타내고 있다. 가령 일반 형법의 강간죄는 3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범죄이지만, 군형법의 군인등강간죄는 5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범죄이다. 강제추행의 경우는 더하다. 일반 형법의 강제추행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규정하고 있지만, 군형법의 군인등강제추행은 무려 벌금형 없이 '1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중범죄이다. 실제로 성범죄에 관한 군형법 조문들은 군사법원에서 매우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기도 하다.




   내가 변호사 일을 하기 전, 군검사로 재직 중일 때 수사했던 어느 간부 A의 경우가 성범죄에 관한 군형법이 적용된 대표적 사례였다. A는 근무 경력이 꽤 길었으며 주변의 평가도 좋고, 아내와 자신의 딸아이에게도 매우 헌신적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A의 부대에 어느 여자 하사가 전입을 오게 되며, A의 태도는 돌변하였다. 새로 전입 온 하사가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외모라는 이유였다. A는 그 하사에게 사적인 연락 등을 하며 자신의 흑심을 표현하였다. 하사는 그런 A의 행동이 부담스럽고 싫었지만,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탓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만 할 뿐이었다. 그러던 와중 A는 자신의 집으로 그 하사를 비롯한 몇 명의 동료들을 초대했다. 하사는 불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자신만 회식에 빠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선배의 초대를 쉽게 거절하기 어려웠으며 A의 집에는 A의 부인과 아이, 다른 동료들까지 함께 있을 테니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집에서 다 함께 술을 마시던 중 A는 은밀히 테이블 밑에 손을 넣어 옆자리에 앉아있던 하사의 허벅지 등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하사는 돌발적인 행동에 너무나도 깜짝 놀랐으나 몸이 얼어붙어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하였고, 그러는 동안 A의 뻔뻔한 추행도 계속되었다.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술자리는 끝이 났다. 그러자 A는 기고만장해져, 이후에도 몇 번이나 하사와 동료들을 자신의 집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집에서 술자리가 있을 때마다 피해자에게 강제추행을 시도했다. 총 네 번의 술자리가 있었고, 하사는 네 번의 강제추행을 그저 견디기만 했다. 그러다 결국 이러한 피해 사실을 군 수사기관에 제보하였고, A의 만행은 모두 밝혀지게 되었다.


   자신의 아내, 그리고 후배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성범죄를 저지른 A의 만행은 죄질이 매우 좋지 않았다. 이때 내가 적용하여 군사법원에 기소했던 죄명이 바로 '군인등강제추행'이었다. A는 군사재판을 통해 매우 무거운 형을 선고받게 되었으며, 당연하게도 군복을 벗게 되었다. 소문에 의하면 아내에게도 이혼을 당했다고 한다. 사필귀정이었다. 그러나 A에 대한 형벌로 피해 하사의 마음까지 모두 회복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평생을 국가에 헌신하고자 마음먹고 입대했던 하사는 복무를 시작하자마자 성범죄의 피해자가 되었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다. 역시 성범죄에 대해서는 후속 조치도 중요하지만, 애초에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런 의미에서 군형법이 성범죄의 형량을 매우 강하게 규정하고 있는 것은 일응 이해할 만하다. 군 내 성범죄의 형량이 높아질수록 군인들이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조심할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된 결과인 것이다.


   A와 같은 사례를 보면 분노에 차게 되어 매우 강한 군형법의 필요성이 당연히 인정되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국선변호인으로 일을 하다 보면 과연 무조건적으로 법정형을 무겁게만 규정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의문이 생길 때가 종종 있다. 얼마 전 내가 담당했던 사건의 상병 B의 사례가 대표적이었다.


   상병 B는 평소 장난기가 많은 군인이었다. 가끔은 장난이 지나칠 때도 있었으나, 그래도 언제나 유쾌하고 활발한 B는 군 생활에 잘 적응하였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원만했다. B는 평소 인터넷 개인 방송을 즐겨보았는데, 요즘 개인 방송에서 자주 쓰이는 유행어 중에는 '앙 기모찌'라는 표현이 있다고 한다. 일본어의 '기분이 좋다'라는 표현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하는데, 문제는 B가 그 표현에 완전히 꽂혀버린 것이었다. B는 언젠가부터 동기 중 한 명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찰싹 때리며 '앙~ 기모찌~'라고 소리를 지르는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동기는 이를 단순한 장난으로 생각하고 웃으며 넘겼으나, 어느 날 옷을 갈아입느라 속옷만 입고 있었을 때 B가 다가와 엉덩이를 때리며 다시 '앙 기모찌'를 외쳤을 때에는 무척이나 화가 나버렸다고 한다. 동기는 B의 장난이 선을 넘은 행동이라 생각했고, 결국 B를 군사경찰에 신고하기에 이르렀다.


   수사 끝에 B에게 군검사가 적용한 죄명은 '군인등강제추행'이었다. 앞서 후배 여군의 허벅지를 쓰다듬었던 A에게 적용되었던 바로 그 범죄이다. 물론 B의 행동이 선을 넘은 행동이자, 피해자의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잘못된 행동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나 역시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러나 B의 행동이 징역 1년 이상을 선고받아야 하는 행위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입법자들이 군형법의 성범죄 형량을 높게 규정한 것이 B와 같은 사람에 대한 처벌까지 최소 징역 1년을 선고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내 생각만으로 법의 적용을 피할 순 없었다. B는 초범이라는 점, 피해자와 합의한 점 등이 고려되었지만 결국 징역형의 집행유예 판결을 받게 되었다. 비록 실형은 피할 수 있었으나, 20대 초반 청년은 그렇게 중한 성범죄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군인등강제추행죄는 이처럼 적용될 수 있는 행위가 매우 다양함에도, 그 법정형이 매우 높은 범죄이다. 군인등강제추행의 형량 하한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에 대해서는 나와 뜻을 같이하는 변호사들이 적지 않다. 예전부터 많은 변호사가 헌법재판소에 군인등강제추행죄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도 하였으나, 헌법재판소는 군의 특수성 등을 고려하여 모두 합헌 결정을 내렸다. 아쉬움이 남는 일이다. 형의 상한은 계속해서 높게 규정하되, 그 하한만을 낮춘다면 A와 같은 군인에 대한 엄벌도, B와 같은 군인에 대한 가벼운 형벌도 모두 가능할 수 있을 텐데, 여전히 군형법 개정은 요원하게만 느껴진다


   몇 년 전, 국군 정보사령부 소속 군인들이 탈북 여성에게 접근해, 불안한 마음 상태를 이용하여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기사가 보도되어 사회가 떠들썩했었다. 소수자의 인권은 이처럼 언제나 위태롭다. 부끄러운 현실이다. 군대 내 여성 역시 여전히 소수자이다. 그들 중 누군가의 인권은 현재도 위태롭다. 실질적인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군형법의 기계적인 법정형 상향만이 그 실질적 보호 장치는 아니리라 생각한다.


   다음 주 월요일인 3월 8일은 '여성의 날'이다. 군대 내 여성에 대한 성범죄가, 나아가 모든 사람에 대한 성범죄가 근절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그 방법 역시 지금보다 다각화되기를 바라는, 그런 군사법원의 평범한 오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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