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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룡부장 Dec 18. 2020

'전역'이 모든 것을 끝내주지는 않습니다

군형법의 '초병폭행죄'와 군사법원의 관할 이야기

   육군 군사법원 소속의 국선변호사라고 나를 소개하면 사람들은 보통 몇 가지 질문을 하곤 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그럼 민간인 변호는 안 하시나요?"라는 질문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경우에 따라' 하는 때도 있다. 물론 흔하지는 않다. 기본적으로 나는 변호사이기 이전에 육군 장교, 즉 군인이기에 사적으로 민간 변호 사건을 수임할 수 없다. 그러나 가끔가다 군사법원에서 민간인이 재판을 받게 되었을 때, 그 민간인이 사선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는 경우에는 내가 그 민간인의 국선변호인으로 선정된다. 죄명이나 특정 상황과 무관하게 군사법원에서는 모든 사건의 피고인에게 반드시 변호인이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민간법원에서 형사재판을 할 때에는, 형사소송법 제33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국선변호인이 당연히 선정되지는 않는다. 특별한 경우라 하면 피고인이 구속된 때, 미성년자인 때, 70세 이상일 때 등 매우 예외적인 때를 의미한다. 반면 군사법원은 군사법원법 제62조에서 '피고인에게 변호인이 없을 때에는 군사법원은 직권으로 변호인을 선정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에, 모든 사건의 피고인에게 변호인을 선정해주고 있다. 기본적으로 군사법원은 군단급 규모의 부대부터 설치되어 있기에(군단 규모의 사단이라는 예외도 존재한다), 육군의 경우 각 군단마다 해당 군단의 사건 및 그 군단 예하 부대 소속 피고인의 국선변호를 전담하는, 변호사 자격을 가지고 있는 국선변호장교가 한 명씩 존재한다고 보면 이해하기가 쉽다.


   그렇다면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는 경우가 대체 어떤 경우인가가 문제인데,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경우가 존재할 수 있으나 가장 대표적인 것은 군형법 제1조 제4항에 규정된 범죄를 저지른 민간인의 예이다. 해당 조문이 규정하고 있는 범죄들은 비록 전시가 아닌 평시라도 국가적으로 매우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범죄들로, 단순히 우리나라의 민간인에 대해서만 적용이 되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인 민간인에 대해서도 우리 군형법을 적용할 수 있도록 규정을 두고 있다. 가령 포로에 관한 죄, 군용시설에 관한 죄, 군용물에 관한 죄, 초소에 관한 죄 등이 그러하다.


'경계근무'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2000)'


   포로나 간첩에 관한 죄를 저지른 사람은 지금껏 본 적이 없으며, 아마 내가 나갈 때까지도 볼 수 없을, 아니 볼 수 없어야만 할 것이다. 실제 군사법원에서 종종 보이는 민간인들은 포로나 간첩과 같이 멀게만 느껴지는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 대부분 '초병에 대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다. 가끔 뉴스를 보면 술에 취한 민간인이 군부대 입구에서 초병들에게 난동을 부렸다는 내용의 기사를 접하곤 한다. 그런 경우가 바로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되는 초병에 대한 범죄의 전형적인 예이다. 그런데 사실 그와 같은 사건 역시 극히 드물다. 실제로 빈번하게 벌어지는 사건들의 구체적 면면을 살펴보면,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는 민간인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아래에서 소개하는 사례와 같이 이미 '전역한 병사'의 경우이다.




   부대 내 최고참 병사인 병장 A는 전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막내 이병 B와 함께 우연히 탄약고 경계근무를 서게 되었다. 경계근무 도중 심심함을 느낀 A는, 잔뜩 긴장하고 있던 B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야 너 누나 있냐? 나 이제 전역하는데 소개해 줄 여자 없냐?"

그런데 B가 A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A는 갑자기 흥분하여

"씨X 군생활 편하냐? 빠져가지고 씨X새X!"

등의 욕설을 하며 B의 가슴과 어깨 부분을 주먹으로 2회 가격하였다.


   이후 B는 마음의 편지를 통해 지휘관에게 이러한 사실을 신고하였고, A에 대해서는 대대적인 조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 결과 A가 평소에 저질렀던 다른 범죄 행위들까지 모두 식별되어, A는 초병폭행을 비롯한 다양한 죄명으로 군사경찰에 입건되었다.


   입건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A는 전역하였다. 신분이 민간인으로 변했기에 이후 민간 경찰과 민간 검사의 추가적인 수사가 이루어졌고, 결국 A는 민간법원에 기소되었으며 이때 기소된 죄명 중 하나가 바로 B에 대한 '초병폭행'이었다. 초병폭행의 경우 앞서 본 것처럼 민간법원이 아닌 군사법원에서 관할하는 범죄에 해당한다. 결국 민간법원에선 다양한 죄 중 초병폭행만을 따로 분리하여 군사법원으로 이송하였고, 결국 나는 이미 전역한 예비역 병장 민간인 A의 국선변호인으로 선정되었다.


   재판 자체는 매우 간단했다. A는 누가 봐도 잘못을 저지른 '나쁜 놈'이었으며, 혐의 사실은 각 증거들에 의해 명백하게 입증되고 있었고, A 역시 민간법원과 군사법원 두 곳에서 연달아 받게 된 재판 때문에 이미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 혐의를 다투고자 하는 의지조차 없었다. 초병에 대한 폭행은 벌금형 없이 5년 이하의 징역이 규정되어 있는 매우 중한 범죄이다. 결국 A는 이미 전역한 민간인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된 끝에 징역형의 집행유예 판결을 선고받게 되었다. 피해자와 합의가 마쳐진 점이 유리하게 고려되었을 것이다.


   판결 선고가 끝나던 날 A는 지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이제 다시 부대로 안 와도 되는 거 맞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A에게 이제 다시는 법원과 엮이는 일 없이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A 역시 그랬으면 좋겠다고 대답하며 쓸쓸하게, 그리고 황급히 법정을 벗어났다. 아마 차를 타고 다섯 시간 가까이 걸리는 자신의 집으로 한 시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A는 과연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했을까. A로부터 폭행을 당한 피해자는 그 트라우마를 잘 극복하고 무사히 군 복무를 하고 있을까. 혹시나 그 부대의 악습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지는 않을까. 많은 것이 궁금하지만 국선변호사 신분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아 너무나도 아쉽고 또 씁쓸한 감정들이 나를 휘감았다.


피고인의 전역에도 불구하고 군 내에서 행한 잘못에 대해 군 내에서 마무리 지을 수 있었던 A의 사건,

내겐 조금 특이한 경험이었지만, 언제나처럼 평범한 군사법원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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