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형법의 '추행죄' 이야기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중 하나인 '테베'에는 구성원 전원이 남성 동성애자 커플로 이루어진 '신성대'라는 특수부대가 존재했다고 전해진다. 연인의 앞에서는 언제나 멋진 모습을 보이고 싶은 본능 때문일까, 혹은 자신의 연인을 보호하고자 하는 열망 때문이었을까, 신성대는 전투에서 언제나 좋은 결과를 얻어냈고 그 결과 현재까지도 그 위용이 전해지고 있다. 그 유명한 스파르타의 패권을 무너뜨리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하니, 그 전투력이 얼마나 높았을지 어느 정도 짐작이 된다.
비단 고대 그리스뿐만이 아니다. 비록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신라의 화랑에도 동성애가 있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처럼 전투 집단과 동성애는 의외로 가까운 구석이 있어왔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어떨까. 우리나라에서는 군형법을 통해 군인의 동성애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군형법상 '추행죄'의 존재가 이를 말해준다.
강요, 강도, 강간 등과 같이 '강(强)'으로 죄명이 시작되는 범죄들은 대개 그 성립에 '폭행 또는 협박'과 같이 강제성 있는 행위를 요구한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가령 폭행 또는 협박이 없이 타인과 합의하여 이루어진 성관계는 당연히 범죄가 아니며, 타인에게 특정한 일을 하도록 단순히 부탁하는 것 역시 당연히 범죄에 해당하지 않을 것이다. '강제추행' 역시 마찬가지다.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추행한 자를 처벌한다. 당연하게도 내가 사랑하는 연인의 동의하에 연인의 손을 잡거나 입을 맞추는 것은 범죄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곳도 존재한다. 군대와 앞서 말한 '추행죄'에 관한 이야기다.
군형법 제92조의 6은 군인 등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폭행, 협박, 위계, 위력 등 어떠한 강제수단에 관하여도 규정하고 있지 않은 채 단순히 군인이 군인과 항문성교나 추행을 한 경우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규정의 취지는 너무나도 명확하다. 동성애자인 군인을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동성 군인 간 합의 하에 서로 스킨십을 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스킨십 자체만으로도 추행행위가 성립될 수 있어, 군형법의 규율을 받게 될 수 있다.
입법 목적은 명확하다. 동성애는 군의 기강을 저해할 수 있기에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헌법재판소 역시 이러한 목소리를 들어주어, 해당 죄에 대해 합헌이라고 판시하기도 하였다. 대법원도 마찬가지다. 대법원은 「개인의 성적 자유를 주된 보호법익으로 하는 강제추행죄와 달리 … 추행죄는 항문성교나 그에 이르지 않은 동성애 성행위 등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 관념에 반하는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침해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판시(대법원 2008.5.29. 선고 2008도2222 판결)한 바 있다. 요즘 사회의 동향과는 다소 배치되는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 군에서 추행죄로 처벌을 받는 경우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육군 기준으로 2020년에는 단 한 명도 추행죄로 인해 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다. 군 수사기관 내부에서도 추행죄의 위헌적 소지에 대해 많은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군에서 꽤 많은 사건을 다루며 다수의 동성애자를 만났지만, 그들은 모두 다른 범죄 조사 중 동성애자임이 드러난 것이고, 추행죄로 입건된 사람들은 아니었다. 이처럼 어쩌면 추행죄는 이미 사실상 사문화된 범죄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상 사문화된 것과, 실제로 폐지가 된 것은 당연하게도 너무나 다르다.
내가 만났던 A는 정확하게는 동성애자가 아닌 양성애자였다. 꽤 좋은 대학교에 다니다가 휴학한 후 20대 초반 군에 입대하였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는 그런 병사였다. A는 지방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다가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하며 자취를 시작했고, 처음 시작하는 자취생활에 끝없는 자유를 누렸다. 매일 술을 마시고 클럽에 가서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그렇게 수많은 여자를 만나던 A는 점점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되었고, 결국 남자와 관계를 맺어볼 것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이후 A는 남자와 관계에서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큰 흥분을 느끼게 되었고, 이후 자신과 관계를 맺을 남자를 계속해서 찾기 위해 자신의 항문과 나체를 찍은 사진, 영상 등을 인터넷 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비극은 그렇게 시작됐다. 음란물을 유포했다는 혐의로 경찰의 조사가 시작되었고, A의 신분이 군인임이 확인되어 사건은 군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군 내에서 일련의 조사를 받게 되자, A는 국선변호인인 내게 부탁했다. 잘못된 행동에 따른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히 수긍하고 반성하고 있지만, 조사 절차에 따라 자신의 성적 취향 같은 것이 부대의 지휘관을 비롯한 간부와 병사들에게 알려지는 것만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군 조직의 특성상 일반적으로 소속대의 병사가 범죄를 저질러 형사 절차가 진행될 때 기본적인 정보들은 지휘관 역시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부대의 지휘관은 피의자인 소속대 병사를 군사경찰 및 군검사에게 데려다주는 역할이나 병사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지휘관 의견서'를 작성해주는 등의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자, 다행히도 충분히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었다. 군사법원의 국선변호인은 변호사이기 이전에 군 장교이며, 군 조직 특성상 순환 보직을 하기에, 각 부대의 군검사들과도 대체로 친밀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A의 사건을 수사하는 군검사에게 이러한 사정을 얘기했다. 사실상 국선변호인으로서라기보다는 내가 겸직하고 있는 또 다른 업무 중 하나인 '인권담당 군법무관'의 지위에 가까웠다. 군검사와 검찰수사관 역시 A가 걱정하고 있던 문제에 대해 이미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기에 이야기는 잘 흘러갔으며, 결국 A에 대해 공소가 제기되었을 때, 그 죄명과 공소장 모두 A의 동성애적 성향이 최대한 드러나지 않도록 기재되었다. 별도로 A에게는 혹시나 누군가 이 사건에 관하여 물어본다면, '민간인 시절 웹하드를 통해서 야동을 유포했던 행위가 적발됐다'라고 둘러대라 일러주었다. 이후 내게 추가적인 연락이 없던 것을 보면 아마 그러한 조치들을 유효했고, A의 성적 취향은 여전히 내밀한 영역으로 남아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다행인 일이다.
A의 사례는 비록 추행죄와 직접 연관이 있는 사건은 아니었으나,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성 소수자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드러내기 쉽지 않음을 잘 느낄 수 있는 사례였다. 하물며 군대에서는 그러한 정체성의 발현이 범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은 모두가 고민해볼 필요가 있는 문제이다. 2000년대 헌법재판소에서는 추행죄의 존재에 대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결하였다. 과거 간통죄가 그랬던 것처럼, 또한 과거 혼인빙자간음죄가 그랬던 것처럼, 추행죄 역시 머지않은 미래에 시대의 흐름에 따른 새로운 판결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된다. 군형법은 군인들이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회에서 바꾸어야 하는 '법률'이다. 군대를 두고 시대에 뒤쳐진다거나, 구시대적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곤 한다. 그러나 법률이 바뀌기 전에는 군이 내부에서 아무리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더라도 한계가 존재한다. 헌법재판소와 국회부터 군에 대한 시선을 바꿔주어야 한다.
성에 관한 것은 언제나 화두이다. 대립되는 의견 역시 언제나 첨예하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 역시 모두 평범한 군인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일 것이다.
평범한 군인에 대해 생각한, 그런 군사법원의 평범한 오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