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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룡부장 Dec 20. 2020

회사에 지각한 당신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합니다

군형법의 '무단이탈죄' 이야기

   어린 시절, 자동차극장에서 어머니와 함께 당시 희대의 인기를 누렸던 영화 '엽기적인 그녀'를 봤던 기억이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당시 중학교 1학년에 불과했던 나로선 영화 초반 나이트클럽 '삐끼'가 남주인공에게 주었던 물건의 정체(그것이 콘돔이라는 사실이나 콘돔이 무엇인지 같은 것을 알게 된 것은 몇 년이나 지난 후의 일이었다)와 같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꽤 많았었다. 


   어린 시절의 나로서 이해가 되지 않았던 내용은 성적인 의미를 내포한 것뿐만이 아니었다. 극 중 주인공 견우와 '그녀'가 한밤중 단둘이서 놀이공원에 가는 장면이 있었다. 둘은 그곳에서 '탈영병'을 만나게 되었는데, 탈영병이 대체 무엇인지 어린 시절의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영화의 개봉으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육군 군사법원 국선변호인으로서 군 내에서 수도 없이 많은 탈영병을 만나게 되었다.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군형법에 '탈영죄'라는 죄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무단이탈죄', '군무이탈죄'라는 두 가지의 죄명을 두고 있다. 먼저 무단이탈죄의 경우 군형법 제79조에서 규정하고 있는데, 허가 없이 근무장소 또는 지정장소를 일시적으로 이탈하거나 지정한 시간까지 지정한 장소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을 처벌하기 위한 죄이다. '일시적 이탈'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어, 일시적으로 탈영을 한 사람을 처벌하는 규정이라고 이해하면 편하다. 군무이탈죄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유형의 탈영죄의 모습과 같다. 군무를 기피할 목적으로 부대를 이탈한 사람을 처벌하는 규정이다. 오늘은 이 중 사람들에게 조금 더 낯설게 느껴질 무단이탈죄에 대해서 먼저 얘기해보고자 한다.


   무단이탈죄의 실제 적용례는 병영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출퇴근을 하는 병사인 '상근예비역'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상근예비역이라는 복무 형태는 사실 사람들에게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상근예비역은 간부가 아닌 병사의 신분이지만 각자 자신의 집에서 부대로 출퇴근을 하고, 비록 출퇴근을 하지만 신분이 군인이기 때문에 군복을 입고, 현역 병사와 똑같이 계급을 달고 생활하는 굉장히 특수한 인원들이다. 나이가 좀 있는 사람이라면 1994년까지 존재했던 제도인 '방위병'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실제로 방위병 제도가 1994년 폐지되면서, 그 자리를 1995년에 시행된 상근예비역 제도가 대체했다.


방위병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린 영화 '마지막 방위(1997)'


   어쨌든 이러한 상근예비역의 경우 문자 그대로 상근(常勤), 즉 상시 근무하는 형태로 병역을 이행한다. 따라서 비록 집에서 출퇴근한다고 하지만, 그 출근 시간을 성실히 지키지 못하고 부대에 지각하게 된다면 앞서 무단이탈죄에서 말했던 '지정한 시간까지 지정한 장소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요건을 충족하게 된다. 군형법 제79조의 적용을 받아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3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될 수 있는 것이다. 단순히 회사에 지각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복무를 이탈했다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물론 군대도 사람이 사는 곳이기에 실제 부대의 현황을 보면 단 1회의 지각만으로 군사경찰에 입건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지각으로 인하여 경고를 하고, 그래도 그것이 고쳐지지 않으면 징계를 하고, 징계의 수위를 조금씩 올려가며 몇 번의 징계 절차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여러 차례 지각을 반복하고 그 지각의 정도도 5분, 10분이 아니라 몇 시간씩인 경우가 된다면 그때쯤 각 부대의 지휘관들은 최종적인 수단으로 군사경찰을 통한 형사 입건 절차를 진행하곤 한다.


   일반적으로 상근예비역의 무단이탈, 즉 반복된 지각에 대해서 군검사들은 구약식 처분을 하곤 한다. 구약식 처분은 정식 재판 절차에 의하지 않는 '약식명령을 청구'하는 처분인데, 무단이탈과 같은 사례에서는 부대의 출퇴근 기록 같은 자료들이 매우 잘 정리되어 있기에 군검사의 청구 내용처럼 벌금형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물론 당연히 예외도 존재한다. 내가 만났던 상근예비역 A의 경우가 그랬다.




   무단이탈의 최대 법정형은 앞서 본 것처럼 징역 1년이다. 그러나 단 1회의 지각만으로도 1개의 무단이탈죄가 성립할 수 있음을 고려했을 때, 실제로 형사 절차로 입건된 피고인들은 보통 수십 번이 넘는 지각을 범한 상황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결국 각 무단이탈죄가 경합하여 가중 처벌을 받게 될 상황에 직면하는 것이다. A 역시 이미 약 30회가 넘는 지각을 한 상태였고, 심지어는 당시 지각으로 인해 두 번이나 징계를 받아 영창에 다녀온 전력까지 있었다. 그럼에도 불성실한 태도는 고쳐지지 않았고, 결국 군검사의 조사를 받게 된 것이다.


   A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군에 입대했다. A는 10대 시절 폭행, 상해, 사기 등 이미 수많은 전과를 만들었으며, 당연하게도 학교생활 역시 성실하게 하지 않았다. 학교에 지각이나 결석을 수도 없이 반복했지만 고교 생활 중에는 그로 인하여 단순히 선생님에게 질타나 체벌을 받았을 뿐, 지각이라는 행동이 법적인 문제로 이어진 적은 없었다. 학창 시절 중 아르바이트를 통해 사회생활을 일부 경험하기도 했으나, 아르바이트생 신분이라도 지각이나 무단결근이 큰 문제로 이어지는 일 역시 없었다. 


   그런 생각을 고치지 못한 채 군에 입대한 것이 문제였다. A는 군인이 되어서도 그 심적 태도가 여전히 10대 청소년에 머물렀고, 결국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에 대해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내 앞에서도 '지각 몇 번 했다고 징역을 가는 건 좀 아니지 않냐'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땐, 정말 어떤 말을 해주어야 A가 자신의 상황에 대해 정확히 인지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했었다.


   A를 조사한 군검사는 법원에 약식명령이 아닌 정식 재판을 청구했고, 징역 1년을 구형했다. A에게 전과가 다수 있다는 점, 무단이탈 역시 다수였다는 점, 수사 중 사설토토 행위까지 밝혀진 점 등이 두루 고려되었을 것이다. A가 군사법원의 재판 절차를 통해 '사회의 쓴맛'을 보고 자신의 태도가 잘못됐음을 깨닫고 이를 모두 고쳤을지 나로선 알 수 없다. 다만 나이를 먹고 신분이 달라짐에 따라 생각과 행동 역시 달라져야만 한다는 정도는 분명히 깨달았을 것이라 믿는다. 아니 제발 그랬기를 믿고 싶다.



군인이라는 신분의 책임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오늘 역시 군사법원의 평범한 오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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