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형법의 '군무이탈죄' 이야기
울타리를 넘어 한참을 뛰었습니다. 평소 지나다니며 가장 낮은 울타리를 점찍어놨기에 어렵지 않았습니다. 철조망이 무서웠지만,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에 문제 되지 않았습니다. 주변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냥 하염없이 뛰었습니다. 부대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더 멀어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계속 달리다 보니 도로에 도착했고, 저는 바로 지나가던 택시를 잡았습니다.
피고인 A에게 대체 어떻게 부대에서 탈영하였고, 부대와 거리가 약 50km가 넘는 다른 도시로 이동할 수 있었는지 묻자 대답해준 내용이다. A는 탈영병이었다. 그것도 가장 드물게 발생한다는 '현지이탈', 즉 부대 내에서 밖으로 탈영한 군인이었다. A는 모두가 잠든 시간, 몰래 생활관 밖으로 나갔고 평소 봐 두었던 낮은 담벼락을 향해 아주 조용히 이동했다. 그리고 울타리를 뛰어넘어 일반 도로까지 달려가 택시를 잡은 것이다. 곧이어 탈영사건이 발생한 사실에 온 부대에 난리가 났다. 경계를 대체 어떻게 선 것이냐며 지휘관은 분노했다. 갑자기 생활관에서 사라져 온데간데없는 A 때문에 지휘관뿐만 아니라 당직 간부나 생활관 병사들 모두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나 그 대범한 탈영으로부터 불과 두 시간 만에 A는 체포되고 말았다. 그것도 부대에서 50km나 떨어진 다른 도시에서 군사경찰도 아닌 민간 경찰에게 말이다. 사연은 이랬다. A는 택시를 타자마자 택시기사에게 전화기를 빌려달라고 말을 했고,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저 지금 탈영했어요. 바로 집으로 갈 테니까 옷 좀 준비해주세요!"라고 당당하게 얘기했다. 이런 대화 내용을 들은 택시기사는 A가 내리자마자 경찰에 탈영병을 신고했고, A는 바로 체포되어 그렇게 두 시간 만에 대담했던 탈영의 종지부를 찍게 된 것이다.
전형적인 탈영, 즉 '군무이탈죄' 사건이었다. 군무이탈은 다양한 동기로 발생한다. 군 내 수직적인 조직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여서, 선임들의 폭행 등 가혹행위에 고통을 받다 참지 못해서 등 징병제 국가라는 현실 때문인 경우가 가장 다수이다. 제도적인 문제 외에 개인적인 사유들로 인한 군무이탈 역시 꽤 다수 존재한다. 여자 친구와 연락이 되지 않아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나 집안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울타리를 넘는 경우 등이다. A의 경우는 후자에 가까웠다. 경제적 문제 때문에 탈영을 결심한 것이다. 다만 A는 집안의 경제적 문제가 아닌 자신의 경제적 문제 때문에 울타리를 넘었다.
A는 사실 군생활에 매우 잘 적응했던 병사였다. 간부들, 선임들과 좋은 사이를 유지했으며, 평소 운동을 좋아했던 성격 덕분에 사람들과도 잘 융화되었다. 그러나 그런 A에게 큰 고민이 있었으니 바로 '도박 중독'이었다. A는 입대 전 학창 시절부터 불법 사설 토토 때문에 이미 수천만 원을 탕진하고 많은 빚을 진 상태였다. 그러나 수천만 원의 금전적 손해나 고리의 사채를 끌어 쓴 처참한 상태에도 불구하고 A는 도박을 끊지 못한 채, 군 내에서도 계속해서 불법 사설 토토 행위를 이어갔다. A는 자신이 비록 사채를 끌어다 썼고, 빚도 많은 상태이지만 '대박'을 몇 번만 터트리면 이를 모두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안타깝게도 말이다.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병사 월급은 상상 이상으로 적다. 그런 적은 월급을 모으는 것만으로 A는 사회에서 대출한 고리의 사채를 당연히 갚을 수 없었으며, 한탕을 노리려는 생각에 그 적은 월급마저 모두 도박에 투자하여 날려버리고 말았다. 매달 쌓여가는 이자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던 A는 결국 주변의 다른 병사들에게 돈을 빌리기 시작했다. '암에 걸린 어머니의 수술비가 없다'는 천인공노할 거짓말을 통해서 말이다.
암에 걸린 어머니의 수술비라니, 군대에서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던 다른 병사들의 가슴을 울리기 충분한 거짓말이었다. 병사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A에게 건네주었다. 생각보다 큰 액수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중 한 병사는 A의 이야기를 공론화시켜서 큰 도움을 주고 싶다 생각하여 간부들에게도 그러한 사정을 전달했다. 간부들 역시 A의 이야기를 듣고 대대적인 모금을 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큰 액수가 모이기 시작했고, 나아가 그중 한 간부는 상급 부대에 이야기를 전달하여 더 큰 모금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의견을 내기도 했다. A의 거짓말로 시작된 일이 도저히 걷잡을 수 없이 큰 사건이 되어버린 것이다. 꼬리가 길면 당연히 밟히게 되어있다. A의 안타까운 사정을 들은 지휘관은 A의 청원휴가 및 안부의 연락을 위해 A의 어머니에게 전화하였고, 통화를 통해 A가 했던 모든 말이 거짓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부대는 한바탕 크게 뒤집혔다. 지휘관과 간부들은 A를 크게 질책했으며, 생활관을 같이 사용하던 병사들은 A에게 화를 내며 자신의 돈을 갚으라고 아우성쳤다. 병사들이 지금껏 모아준 돈을 어디다 썼냐고 물었을 때 A는 사설 토토에 모두 사용했다는 고백을 했고, 분위기는 급속하게 싸늘해졌다. 어머니를 팔아서 도박자금을 마련한 A에 대해 누구 하나 동정의 눈길을 보내지 않았다. 결국 A는 자신의 모든 행동이 발각되고 불과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밤, 부대의 울타리를 넘게 되었고 그렇게 군무이탈죄로 기소되어 나를 만나게 되었다.
군무이탈죄는 군형법 제30조에서 규정하고 있는데, 전시에는 5년 이상의 징역, 평시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 등으로 그 범한 시기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매우 중하게 처벌되는 범죄이다. 역시나 벌금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군무이탈죄를 군에서 얼마나 중한 범죄로 생각하고 있는지는 단순히 중한 형량 외에도 공소시효와 관련된 부분을 보면 명확하다. 군무이탈죄 역시 군사법원법(민간의 형사소송법과 거의 같다)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공소시효가 규정되어 있는 범죄이고, 그 공소시효는 10년에 해당한다. 그러나 탈영병이 10년 동안 잘 숨어 다니며 잡히지 않는다고 하여도 처벌을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군에서는 주기적으로 각 군 참모총장 명의의 '복귀 명령'이란 것을 내리는데, 해당 명령은 '군무이탈자 자진 복귀'를 지시하는 것이다. 참모총장은 탈영한 자의 상관에 해당하기 때문에, 해당 복귀 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비록 탈영으로부터 10년이 도과되어 군무이탈죄의 공소시효가 만료되었을지라도 '명령위반죄(군형법 제47조)'로 처벌할 수 있는 효과가 발생한다. 신출귀몰하게 10년 동안 군사경찰의 눈을(특히나 D.P라고 부르는 군탈체포조의 눈을!) 피해 다닌다고 하여도, 그 불법의 짐을 내려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군무이탈의 공소시효를 사실상 사문화시키는 '복귀 명령'이 적법한지는 차치하고서라도, 군에서 군무이탈에 대해 얼마나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A는 군사법원의 재판을 거쳐 징역형의 집행유예 판결을 선고받았다. 두 시간의 일탈은 그렇게 큰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A는 재판 내내 모든 것을 시인하며 아무것도 다투지 않았으며, 자신의 판결 결과가 벌금이 아니라는 사실에 오히려 더 만족했다. 또한 일련의 재판 및 징계 절차로 인하여 자신이 부대 전출 조치를 당한다는 점에 굉장히 안도감을 표현했다. 나로선 이해하기 어렵지만, A는 주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이 전과자가 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것 같다.
나는 아직 만난 적이 없지만, A와는 다르게 분명히 군 내 부조리 등으로 인하여 군무이탈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병사들이 여전히 어딘가에는 존재하리라 생각한다. 군무이탈은 앞서 본 것처럼 군에서 굉장히 중하게 처벌하고 있는 범죄이다. 만약 부조리를 겪었다면 당연하게도 '피해자'인 것인데,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중한 처벌을 받게 되는 일은 제발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소망한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에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처벌받을 수 있도록 용기 내어 군 수사기관에 제보해주기를 진심으로, 정말 진심으로 소망한다.
오늘은 이렇게 작은 소망과 함께 마무리하는, 군사법원의 평범한 오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