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형법의 '가혹행위' 이야기
군사경찰, 군검찰, 군사법원을 비롯한 많은 구성원이 꾸준히 노력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군대 내 악습, 가혹행위는 분명히 남아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특히 군사법원에서는 병사가 다른 병사에게, 간부가 병사에게, 간부가 다른 간부에게 부조리한 행동을 한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가혹행위의 형태는 다양하다. 폭행과 같은 고전적인 수법 외에도, 정신적으로 피해자를 피폐하게 만드는 수법이나 교육과 훈육을 가장한 수법 등 악랄한 가해자들은 지금도 여전히 군 어딘가에 마치 악성 종양처럼 남아 피해자와 군 조직을 괴롭힌다.
군 내 유명 가혹행위 중에는 그 악명이 사회까지 널리 퍼진 것들도 많다. 빵빠레, 원산폭격, 식고문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유명 아이스크림의 이름과 같은 '빵빠레'는 매우 전통적인 가혹행위이다. 피해자의 옷을 모두 벗기거나 속옷만 입힌 채로 얼차려를 시켜 온몸에 땀을 흘리게 만든 후, 연병장에 장시간 서 있게 하여 수많은 모기에게 피를 빨리도록 만드는 가혹행위이다. 각 부대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고 하나, 기본적인 빵빠레의 모습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부드럽고 달콤한 동명의 아이스크림과 달리 매우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행동이다. '원산폭격'은 아마도 가장 유명한 군의 가혹행위일 것이다. 머리를 바닥에 박은 채로 엎드려뻗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 역시 부대마다 조금씩 다른 형태들이 존재한다. 잔인하게도, 치약 뚜껑, 관물대 등 사물에 머리를 박고 있는 형태의 원산폭격이 자행된 경우도 많았다. '식고문'의 경우에는 앞의 두 가혹행위보다는 비교적 최근에 생긴 것으로, 문자 그대로 음식을 수단으로 하여 피해자를 고통받게 하는 형태이다. 피해자에게 음식을 계속해서 먹인다. 토할 때까지 계속해서, 끝없이 음식을 먹이는 것이다. 음식뿐만이 아니다. 살아있는 벌레를 먹으라고 강요한 악마 같은 가해자도 있었으며, 심지어는 인분을 먹인 사건도 존재한다. 이러한 가혹행위들은 현재에 이르러서는 거의 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군 어딘가에서는 종종 적발되는 아주 파렴치하며 비인간적이고 상식을 벗어난 행동들이다.
가혹행위와 관련하여 육군의, 아니 군 전체의 가장 부끄러운 사건 중 하나는 논산 육군훈련소의 '인분 사건'을 들 수 있다. 2005년, 육군훈련소에서 중대장으로 복무 중이던 모 대위는 훈련병들에게 화장실 청소를 지시하였다. 그런데 이후 화장실 청소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것을 보고 격분하여 훈련병들을 모두 모아놓고 변기에 묻어있던 인분을 훈련병들에게 손가락으로 찍어서 먹으라고 강요했던 사건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2000년대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다니,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이다. 당시 훈련병 중에는 중대장의 강요에 반항하지 못하여 실제로 그 인분을 먹었던 사람도 있다고 한다. 군대라는 집단에 처음 속하자마자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겪게 된 피해자들의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정말로 다행히 훈련병 중 용기를 내어 이런 사건을 사회에 제보한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 덕분에 '인분 사건'은 온 국민에게 알려질 수 있었다. 언론은 연일 군의 가혹행위에 대해 보도하였다. 군 내부에서도 자정작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진지하게, 그리고 어느 때보다 강하게 터져 나왔고 결국 그 사건 이후 군은 제도적으로 많은 보완을 거치며 가혹행위 근절을 위해 지금껏 노력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인분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은 군사법원에서 강한 처벌을 받게 되었으며, 훈련소의 낡은 시설 또한 대대적으로 개선되었다. 어느 한 훈련병의 용기가 많은 것을 변화시킨 것이다.
우리 군형법은 제62조에 '가혹행위'라는 범죄를 규정하고 있다. 직권을 남용하거나 위력을 행사하여 학대나 가혹행위를 한 사람을 벌하는 범죄이다. 중대장이라는 직책을 이용하여 훈련병들에게 인분을 먹으라고 강요한 위의 사건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직권남용 가혹행위의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을 법정형으로 두고 있으며, 위력행사 가혹행위의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규정하고 있다. 직권남용 가혹행위의 형량이 더 높은 것은, 계급제가 운용되고 있는 군대 내에서 상급자라면 자신의 계급에 따른 책임을 더욱 무겁게 인식하고 그에 걸맞게 행동하라는 입법자의 의사가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군형법이 이처럼 엄격한 법규를 마련하고, 군 내 제도가 아무리 개선되어도 부조리는 어딘가에서 또다시 나타나곤 한다. 내가 만났던 피고인 A는 그런 부조리한 행동을 부활시켰던 육군 병사였다. A는 병장으로 부대 내에서 무서운 선임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A의 부조리는 어느 평범한 날의 식사시간에 이루어졌다. 제육볶음이 반찬으로 나왔던 그 날, 조리를 많이 했기 때문인지, 식사 인원 모두가 반찬을 받았음에도 상당량의 제육볶음이 반찬통에 남게 되었다. A는 반찬이 많이 남은 것을 보고 몹시 짜증이 났다고 한다. 내 상식으로는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랬다고 한다. 짜증이 난 A는 마른 체형이었던 피해자에게 식판을 들고 오라고 한 후에 식판 가득 제육볶음을 담아주었다. 반찬을 담는 공간이 넘치자 밥을 담는 공간에, 밥을 담는 공간이 넘치자 국을 담는 공간에까지 그렇게 끝없이 피해자의 식판에 제육볶음을 쑤셔 넣었다. 그리고는 웃으면서 피해자에게 말했다. "너는 말랐으니까 고기를 먹고 살이 좀 쪄야 해. 네가 이거 다 먹을 때까지 아무도 못 나간다." 선임이 무서웠던 피해자는 알겠다고, 심지어는 감사하다고 대답해야 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먹을 수 있는 양을 한참, 아주 한참 초과한 음식을 입에다 꾸역꾸역 처절하게 욱여넣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식고문이었다. 고통스러워하는 피해자의 모습을 보면서 A는 미소를 지었다. 그런 비상식적인 가혹행위에 대해 정말 다행히도 다른 병사가 군 수사기관에 제보를 해주었고, 결국 피고인 A는 나를, 그리고 군사법원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재판은 간단했고, A는 군사법원으로부터 위력행사 가혹행위죄로 유죄 판결을 받게 되었다. A에 대한 유죄 판결만으로 피해자의 고통이나 트라우마가 모두 사라지진 않았을 수도 있으나, 적어도 A가 전과자가 되는 것을 목격한 다른 사람들은 A와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군 내의 모든 부조리를 없애는 것은 분명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부조리를 발견할 때마다 엄격하게 가해자를 처벌한다면, 그 시간을 분명히 단축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 믿음이 있기에 오늘도 군사법원의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자신의 일을 다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것은 비극적인 일이다. 적어도 군에서는 그런 비극적인 일들이 사라지기를 바라며 모두가 한마음으로 노력 중인, 그런 군사법원의 평범한 오후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