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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룡부장 Jan 01. 2021

대통령을 욕하면 교도소에 가는 사람들

군형법의 '상관'과 대통령

   군인을 포함한 공무원은 모두 정치적 중립의무를 다해야만 한다. 군대의 경우 그 조직이 매우 거대하며 상명하복의 지휘체계를 가지고 있기에 이러한 의무가 지켜질 필요성이 더욱 크다. 우리나라의 현대사와 군대의 발자취가 이를 증명한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이 있다. 군은 큰 힘을 가지고 있기에, 그만큼의 의무 역시 요구되는 것이다.


   우리 군형법은 제94조에 '정치 관여'라는 죄를 두고 있다. 군인이 정당이나 정치단체에 가입하거나, 특정 정당 혹은 특정 정치인에 대하여 지지 또는 반대 의견을 유포하거나, 특정 정치인에 대해 찬양 혹은 비방하는 내용의 의견 또는 사실을 유포하는 등 행위를 저질렀을 때 처벌하는 죄이다. 다른 군형법의 범죄들과 마찬가지로 형량이 상당하다. 벌금 없이, 5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해지는 무시무시한 범죄이다. 심지어 본 죄의 경우, 매우 특이하게도 같은 조문 제2항을 통하여 군사법원법(민간의 형사소송법)의 원칙과 무관하게, 그 공소시효 기간을 10년으로 연장하여 특정하고 있다. 정권의 변동에 부합하지 말고 정치적 중립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라는 뜻이리라 생각된다.


   군형법의 정치관여죄가 사회에 잘 알려졌던 시기는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 때이다. 당시 매우 화려한 커리어와 청렴하고도 대쪽 같은 이미지로 상승가도에 있던 이회창 후보는 두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이 터지며 그 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회창 후보가 병역 비리 문제로 홍역을 치르던 때, 육군의 어느 중령이 대중 앞에 나섰다. 그 중령은 여의도 소재 호텔에 방송국과 신문사의 기자들을 대대적으로 모은 후 자신의 전투복을 입은 채로 '자식을 군에 보내지 않은 후보는 국군통수권자가 될 수 없으며, 대통령이 되었을 경우 그런 대통령에게는 받들어 총을 할 수 없다'는 등의 내용을 담아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 의견의 정당 여부는 별론으로 하고, 그는 군인 신분임에도 특정 정치인의 낙선을 위한 행위에 나아간 것이다. 당연하게도 군 수사기관에서 나서게 되었다. 그는 구속되었으며, 수사를 거친 후 군사법원에 정치관여죄 등으로 기소되었다. 군인의 정치적 중립의무에 대해 사회적으로 큰 관심이 쏠렸던 사건이다.


1997 대선에 관한 사건을 다룬 영화 '공작(2018)'


   이처럼 군 조직은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다하고 있으며, 군인 개개인 역시 정치적 중립의무를 다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정치관여죄'는 2000년대 이후 군사법원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된 범죄이기도 하다. 그러나 군형법의 '정치관여죄'는 아니지만, 정치적인 이슈 때문에 군사법원의 부름을 받는 군인은 요즘도 다수 존재한다. '상관모욕죄'의 적용 범위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고 행정부의 수반이자 국군통수권자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군형법상 상관모욕죄와 관련 있는 것은 이중 '국군통수권자'의 지위이다. 물론 대통령은 엄밀히 말하면 공무원에 해당하기에 '정치인'이 아니라고 볼 여지도 있으나, 치정 업무의 총책임자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모든 군인에게 대통령은 정치를 하는 인물이자 그에 앞서 군의 통수권자로서 '상관'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 재임 시절, 대통령이 군인들의 상관에 해당하는가에 대해 사회적으로 큰 논의가 있었다. 어느 육군 대위가 대통령에 대해 자신의 트위터로 '쥐XX', '가카 이새X' 등의 내용을 작성했다는 이유로 군사법원에 기소되었기 때문이다. 여론은 또다시 반으로 갈라졌다. 군인 신분의 특수성과 군형법의 엄격 적용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표현의 자유 및 군형법의 불합리함을 주장하는 사람들로 나누어져 여론은 크게 요동쳤다. 결론적으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모두 대통령이 모든 군인의 상관에 해당하며, 상관모욕죄는 합헌이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게 되었고, 그 대위는 처벌을 받게 되었다. 각종 단체와 언론들이 이에 대해 불합리하다는 논평을 내놓았지만,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군인의 정치적 중립의무에 대해 사법부가 얼마나 엄격하게 판단하는지 다시 한번 상기할 수 있는 계기였다.


   시간이 흘러 두 번이나 정권이 바뀌었다. 나는 그즈음에 피고인 A를 만나게 되었다. 피고인 A는 육군 장교로서 평소 북한에 대해 매우 적대적인 군인이었다. 사실 군인에게는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 군인 가장 경계해야 할 적이 북한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런 A는 정권이 바뀐 후 대통령이 북한에 온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에 대해 큰 불만을 품게 되었다. A는 자신의 블로그에 전체 공개로 '문재인 시XXX', '문재X' 등의 욕설을 담은 글을 게시하기 시작했다. 공공연하게 상관인 대통령을 모욕한 것이다. 이러한 게시글을 본 누군가가 A를 상관모욕으로 신고하였다. A가 군인임을 알고 있던 지인이었을 것이다. 신고 내용에 따른 수사 끝에 A는 군사법원에 기소되어 나와 만나게 되었다.


   A는 내게 억울함을 토로했다. 아무리 군인이지만, 대한민국 국민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못 하냐는 얘기였다. 자신이 군인이 아니라 민간인이었다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을 것인데, 군인 신분이라는 이유만으로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은 너무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그 외에도 자신이 처벌받는 것이 부당한 이유에 대해 나름대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이미 2012년 상관모욕죄가 한창 이슈였던 때 군사법원과 대법원에서 기각된 내용이었다. 결국, A와 나는 군사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불나방과 같은 주장을 하는 수밖에 없었으며, 당연하게도 이후 A는 유죄의 결론을 피할 수 없었다. 비록 처벌이 중하지는 않았으나, 적어도 이를 통해 A는 군인의 정치적 중립 의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A가 블로그에 단순히 정책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만을 기재하고, 모욕적인 언사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A는 자신의 주장을 합리적으로 펼치는 대신 욕설을 사용하였기에 문제였으며, 그 욕설의 피해자가 자신의 상관이고, 심지어는 그 상관과 합의조차 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었기에 문제였다. 군인이라는 신분과 지휘체계에 대해 깊은 고찰을 할 수 있게끔 만들어준 사건이었다. 



아직 마주친 적은 없지만, 자명하게도 대통령을 상관으로 모시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재판을 하는

군사법원의 어느 오후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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