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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룡부장 Dec 14. 2020

발 없는 말이 천리를 넘어 군사법원까지 간다

군형법의 '상관모욕죄'에 관한 이야기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의 사례들로 인하여 '모욕죄'는 이제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매우 널리 알려져 있는 범죄가 되었다. '공연히 사람을 모욕'하는 경우 모욕죄가 성립하며, 모욕죄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형법 제311조에서 규정하고 있다.


   군형법에도 비슷한 조항이 존재한다. 다만 군형법에 규정된 모욕죄는 객체가 단순히 타인이 아닌 '상관'에 해당하는 경우를 규율하는 '상관모욕죄'이다. 흔히들 상관모욕죄라는 죄명을 듣고 떠올리는 모습은 하급자가 상급자의 면전에서 명령에 불복하며 핏대를 세우고 대드는 모습일 것이다.


실미도(2003)를 본 사람이라면 떠오르는 장면이다.  총구를 들이대며, "비겁한 변명입니다!"


   이처럼 상관의 앞에서 상관을 모욕하는 경우는 '상관면전모욕'이라고 하여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고 군형법 제64조 제1항이 규정하고 있다. 입법 취지는 잘 와 닿는다. 지휘에 따른 상명하복이 매우 중요시되는 군 조직의 특성상 면전모욕과 같은 행위는 대표적인 하극상이며 군 기강의 저해를 초래하기에 엄벌에 처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였을 것이다. 물론 해당 행위가 평시에 벌어진 경우에도 벌금형을 선고할 수 없도록 형의 하한이 매우 높게 설정되어 있다는 점은 아쉽지만, 그래도 군 조직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충분히 납득 가능한 정도이다.


   그러나 실제로 군사법원에서 만나게 된 대부분의 상관모욕 사례는 이와 조금 달랐다. 면전모욕이 아니라 군형법 제64조 제2항에 규정된 '공연한 방법으로 상관을 모욕한 사람'들이 절대다수였으며, 그중 대부분이 나이 어린 병사들이었다. 갓 스물이 넘은 어린 병사들은 대체 어떤 연유로 군사법원에 방문하여 국선변호인을 만나게 되었을까. 간단히 말하면 '뒷담화', 즉 뒷말 때문이었다. 오늘 소개할 사례 역시 나이 어린 병사의 안타까웠던 상관모욕 사례이다.






   A는 상병이었으며 당시 생활관 내에서 목소리가 큰 일명 '실세'였다. 어느 주말, A는 생활관 내에서 여느 때처럼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행보관의 지시가 내려왔다. 생활관 내에서 쓰이지 않고 있던 관물대 하나를 창고 쪽으로 옮겨놓으라는 것이었다. 사실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으며,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간단한 작업이었다. 그러나 주말에도 일을 시킨다는 데에 화가 난 A는 관물대를 옮기며 생활관 내에서 다른 후임 병사들이 듣고 있는 가운데 이렇게 얘기했다.


"행보관 저 빡대가리 새X. 주말에도 일을 시키네. 병XXX!"


   같이 있던 병사들은 A의 말을 듣고 별다른 대답 없이 웃으며 넘겼다. 주말에 일을 시키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모두가 같은 마음을 갖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한 것은 그로부터 약 4개월이나 지난 후의 일이었다.


   A와 생활관 내에서 사소한 다툼을 벌이게 된 후임 B 병사가 A를 군사경찰대에 신고하게 된 것이다. 신고 내용은 4개월 전의 '상관모욕'이었다. A는 상관인 행보관에 대해 욕설을 하였고, B를 비롯한 생활관 내 여러 동기가 그 발언을 분명하게 들었다는 내용이었다.


   군사경찰과 군검찰의 조사 끝에 결국 A상병은 상관모욕으로 군사법원에 기소되었다. A는 자신이 상관에 대해 험담을 한 것은 분명히 잘못한 행동이란 점은 인정하고 있었지만, 생활관 내에서 병사들끼리 했던 얘기만으로 자신이 군사법원에서 재판까지 받게 된다는 사실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하였다.


   '상관공연모욕'의 경우 군형법상 법정형이 무려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로 규정되어 있다. 상관모욕에 관하여는 일반 형법상 모욕죄와 달리 벌금형조차 규정되어 있지 않으며, 나아가 형법상 모욕죄는 '친고죄'에 해당하기에 피해자와 합의만 있다면 처벌을 피할 수 있으나, 군형법상 상관모욕의 경우 합의 여부와 무관하게 처벌을 받을 수도 있기에 당사자가 느끼는 두 죄의 무게감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실제로 A 상병이 상관모욕을 범했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기 시작했을 때, 피해자인 행보관은 군사경찰에서 껄껄 웃으며, 병사들끼리 생활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않겠느냐 말하며 바로 A에 대한 처벌불원서를 작성해주었다. 따라서 군검사의 기소유예 처분이 나올 가능성도 높았으나, A는 어린 나이에 전과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두려웠기에 자신의 혐의에 대해 거짓말을 하며 부인하였고, 결국 군사재판까지 이르게 된 비극이 벌어진 것이다.


   재판은 매우 간단하게 진행되었다. 수사기관은 유죄를 향한 증거들을 차곡차곡 모았으며, A가 빠져나갈 방법은 없었다. 나는 A에게 자백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 선처를 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권유했고, A 역시 이에 동의하였다. 결국 A는 법정에서 자신의 행동을 모두 자백하였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는 태도를 적극적으로 어필하여 결과적으로는 징역형의 집행유예 판결을 선고받게 되었다. 생활관에서 병사들끼리 있다는 동질감에 나누었던 '험담'의 대가 치고는 너무나도 가혹했다. A에게서 군인이라는 신분을 떼고 나면 남는 것은 실무자들끼리 모여서 부장이나 과장에 대한 험담을 했다는 정도에 불과할 텐데, 군인이라는 신분은 그렇게 쉽게 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에 가혹했다.


군인이기에 말 한마디의 무게가 너무나도 무거움을 느낀,

군사법원의 '평범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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