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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룡부장 Dec 11. 2020

군인도 때로는 실수할 수
있지 않을까요?

군형법의 '업무상 과실 군용물 손괴죄' 이야기

   일반 형법상 기본적으로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해당 행위를 고의적으로 범했다는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러나 비록 고의적으로 한 행동이 아닐지라도, 몇 가지의 범죄에 대해서는 과실로 결과 발생을 야기한 경우에도 처벌을 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두고 있는데 가령 과실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과실치사'나 과실로 사람을 다치게 한 '과실치상'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형법은 기본적으로 행위자에게 고의가 없다면 처벌할 필요가 없다는 사상을 기초로 하고 있다. 


   누군가가 실수로 타인의 물건을 망가뜨렸다고 가정해보자. 우리나라 형법은 '과실 재물손괴'에 대해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은 처벌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군인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군형법 제69조는 군용에 공하는 '물건'을 손괴한 경우에 대한 처벌 규정을 두고 있으며, 군형법 제73조는 과실이나 업무상 과실로 인하여 군용에 공하는 물건을 손괴한 경우를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종합해보면 군형법의 적용을 받는 군인은, 과실로 군용물을 손괴한 경우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는 의미이다. 특히 본 규정의 실제 적용례를 살펴보면, 군용물에 대한 접근 권한이 있는 경우는 대부분 '업무상 과실'이 인정될 것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그 형벌의 상한선이 무려 징역 7년인 '업무상 과실 군용물 손괴'라는 죄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 무게감이 상당하다. 형법에서는 볼 수 없는 군형법의 대표적인 특이 조항이다.


   우리 군형법은 각 죄들에 대한 처벌 상한선이 매우 높게 설정되어있다. 물론 전쟁 중이라면 그 비난가능성이나 처벌 필요성이 매우 높을 것이기에 이해할 수 있으나, 전시가 아닌 평시 중에도 단순히 신분이 군인이기에 군형법의 적용을 받게 되는 평범한 군인들에 대해서는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업무 중 실수로 군 내에서 사용되는 물건을 고장 냈다는 이유만으로 징역 7년을 선고받게 된다면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 군형법이 업무상 과실 군용물 손괴에 대한 처벌 규정을 두고 있는 것, 그리고 그 형의 상한을 매우 중하게 설정해놓은 것은 우리 군형법이 제정 당시 전쟁기, 특히 태평양전쟁 말기의 '구 일본육군형법'의 영향을 받았던 탓이 크다. 그러나 이런 태생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군형법에 관하여 현재까지도 그 처벌규정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앞서 본 군형법 제73조 제2항에 규정된 업무상 과실로 인한 군용물 손괴 처벌규정의 경우, 우리 군형법이 최초로 제정되었던 1962. 1. 20.부터 현행 군형법에 이르기까지 구성요건에 대해서는 아무런 변함이 없으며, 다만 1994. 1. 15. 군형법 제10차 개정 시에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벌금 규정을 추가한 것이 전부란 점을 볼 때 이러한 현실은 더욱 와닿는다.


   여전히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하다가 실수를 저지른 군인에게 부과될 책임은 너무나도 중하다.






   예전에 군사법원의 국선변호인으로서 맡았던 '업무상군용물손괴' 사건은 재판이 끝난 지 꽤 지난 지금까지도 가끔씩 떠오르는 안타까운 사건이다. 피고인인 A는 육군 모부대에서 대량 유류를 관리하는 관리자로 일하는 간부였다. 그런 A가 어느 날 민간 유조차로부터 부대 내 유류탱크에 유류를 전달받는 업무를 수행하던 중, 기존 유류탱크 내에 보관되어 있던 유류량에 대해 착오를 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결국 유류탱크에 너무 많은 양의 유류가 주입되게 되어 탱크의 용량을 초과하게 되었고, 초과된 기름은 바닥으로 떨어져 그 효용이 상실되어버리고 말았다. 이에 군검사는 A를 '업무상과실군용물손괴'로 기소하기에 이르렀다.


   A는 흔히 말하는 'A급' 간부였다. 수많은 표창을 받아왔으며, 언제나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타의 모범이 되는 간부였기에 진급 역시 목전에 둔 상태였다. 그러나 만약 A가 유죄판결을 받게 된다면, 형사처벌을 받는 외에도 군 내 징계를 받게 될 것이고 운이 없어 중징계가 의결될 경우에는, 현역복무부적합심의의 대상까지 오르게 될 수도 있기에 A는 정말로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보내게 되었다.


   상황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나 역시도 국선변호인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사소한 것, 가령 아직 탱크에 저장되지 못한 상태였던 기름을 군용물로 볼 수 있을지부터 시작하여, 공소장의 기재에 관한 절차적인 요소들까지 정말로 치열하게 다투며 공을 들이고 A와 수없이 많은 연락을 주고받으며 노력했다. 


   몇 달에 걸친 재판 끝에 결과적으로 A에게는 군사법원의 '선고유예' 판결이 선고되었다. 선고유예는 사람들에게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는 '집행유예'보다도 더 경한 판결이기에, 비록 무죄는 아니었지만 긴 시간 노력한 끝에 소정의 성과를 거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나 무죄가 아닌 다른 판결을 받게 된 A의 표정은 전혀 밝지 않았다. A의 어깨를 두드리며 힘을 내란 말을 하는 내 마음 역시 다시 무거워졌다. 


   너무나도 무거웠던 A의 표정, 그 속을 모두 들여다볼 수는 없었지만 아마 그 내심에는 업무 중 과실로 발생한 사고로 인하여 형사 처벌까지 받아야 하는 자신의, 그리고 군인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 역시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실수의 대가가 너무나도 무거운, 군사법원의 평범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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