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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룡부장 Dec 16. 2020

'문콕'이 불러온 간부숙소 대참사

군형법의 '폭행죄 특례 조항' 이야기

   우리나라에서 '폭행'만큼 빈번하게 발생하는 범죄가 또 있을까. 검찰통계시스템에 기재된 '범죄 유형별 형사사건 처리현황(폭력사범)'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폭행, 상해 등과 같은 범죄로 검찰에 접수된 이른바 폭행사범의 숫자는 무려 378,282명에 달한다. 


   군대는 사회의 작은(그러나 조금은 특수한) 축소판이라고 많이들 말한다. 군대 역시 다를 것이 없다. 군 내에서도 폭행죄는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범죄에 해당하며, 폭행으로 인하여 군사법원의 문을 두드리게 되는 사람들 역시 굉장히 많다.


   다시 민간 폭력사범의 얘기로 돌아가 보자. 2019년 한 해 동안 검찰에 입건되었던 378,282명은 지금 모두 전과자가 되어버렸을까? 당연하게도 그렇지 않다. 폭력사범으로 입건되었던 사람들이 검사로부터 받은 처분은 아래의 표 속 내용과 같다. 


출처 : 대검찰청(검찰통계시스템)


   2019년을 기준으로 378,282명이나 되는 폭력사범이 검찰에 입건되었으나, 그중 무려 199,876명에 달하는 사람은 검사의 '불기소'의 처분을 받게 되었다. 절반을 훨씬 넘는 비율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정답은 폭행죄에 관한 형법 조문 속에 있다.


[ 형법 제260조 (폭행, 존속폭행) ]
① 사람의 신체에 대하여 폭행을 가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50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
③ 제1항 및 제2항의 죄는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우리 형법 제260조 제3항은 폭행죄에 있어서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힌 경우, 검사가 그 사건의 피의자를 기소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조금 더 쉽게 얘기하자면 폭행 사건의 경우 피해자와 합의만 이루어진다면 형사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폭행죄의 경우 일단 행위를 저지르더라도 전과자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길이 넓게 인정되기 때문일까, 우리 대법원은 폭행 자체의 성립 여부와 관련해서는 굉장히 폭넓은 인정의 태도를 보인다. 타인에게 수차례 주먹질을 하거나 발차기를 해야만 폭행이 인정될 것 같은 일반적인 인식과 다르게, '사람에 대한 일체의 유형력 행사'만 있다면 폭행이 성립될 수 있다. 가령 어깨를 1회 밀친 행위, 얼굴에 침을 뱉는 행위 등과 같이 물리적인 강도가 비교적 가벼운 행동이라도 폭행에 해당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이처럼 폭행죄가 성립될 수 있는 범위가 매우 넓다 하여도, 그러한 사실이 크게 문제 되지는 않았다. 앞서 본 것과 같이 형법 제260조 제3항을 통해서 전과자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길 역시 폭넓게 열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군인의 경우에는 조금 다른 상황들이 벌어지곤 한다.


   군인이 타인을 폭행한다면 형법상 폭행죄가 성립하고,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특별히 다른 범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물론 피해자가 경계근무 중이라면 초병폭행과 같은 특수한 군형법상 범죄가 성립하겠지만, 이에 대해서는 후에 별도로 다루겠다). 또한 군사법원 역시 대법원과 동일한 법리로 재판을 하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일체의 유형력 행사'만 있으면 폭행이 성립되는 것도 동일하다. 그런데 문제는 군형법에서는 폭행이 이루어진 '장소'에 따른 특칙을 두고 있다는 점에 있다. 


[ 군형법 제60조의 6 (군인 등에 대한 폭행죄, 협박죄의 특례) ]
군인 등이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장소에서 군인 등을 폭행 또는 협박한 경우에는 형법 제260조 제3항 및 제283조 제3항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1.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 제2조 제1호의 군사기지 
2.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 제2조 제2호의 군사시설


   이러한 군형법 제60조의 6 규정에 근거할 경우, 군부대 울타리 안쪽이라는 조건만 충족된다면, 병사들이 사용하는 생활관, 독신 간부 숙소, 충성마트(PX), 영내 교회의 예배당 등 모든 곳에서 벌어진 폭행 사건에 대해 형법 제260조 제3항의 특례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입법 취지는 분명하다. 영내 폭행은 군 질서에 대한 문란을 가져올 수 있기에 관용을 베풂이 없이 엄하게 벌하겠다는 의도이다. 또한 영내에서 폭행을 저지른 자들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처벌할 수 있어야만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의도 역시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본 것처럼 우리나라는 현재 폭행의 성립 자체를 굉장히 쉽게 인정하고 있기에 비극은 시작된다. 예전에 보았던 어느 두 간부 간의 쌍방 폭행 사건이 그러했다. 




   수도권에 위치한 모 연대 내에는 꽤 큰 규모의 독신자 간부 숙소가 있는데, 그 규모가 크기 때문에 해당 연대 소속 간부들 뿐만 아니라 인근에 위치한 군단, 사단 등 다양한 부대의 간부들도 그 연대 내 간부 숙소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그 간부 숙소에 살고 있던 간부 A는 출근을 하기 위해 차를 타려고 했는데, 자기 차의 문 쪽에 이른바 '문콕', 즉 흠집이 발생한 것을 보게 되었다. 평소 자기 차를 애지중지하던 A는 화가 나서 범인으로 추정되는 바로 옆의 차를 보며 씩씩거리고 있었는데, 때마침 옆에 있던 차의 주인인 B 간부도 출근을 위해 주차장 쪽으로 나오게 되었다. A는 B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B는 깜짝 놀라 자신은 조수석 문을 연 적이 없기 때문에, A의 차 흠집은 다른 사람 탓일 것이라 반박했다. 그렇게 둘은 아침부터 실랑이를 벌이기 시작했고, 결국 언성이 점점 높아지다가 이윽고 A와 B는 서로의 멱살을 잡고 흔들게 되었다. 출근 시간에 간부 숙소 앞 주차장에서 간부 둘이 서로의 멱살을 잡고 있는 것을 목격한 누군가가 이러한 상황을 군사경찰에 신고하게 되었고, 결국 A와 B는 쌍방 폭행으로 입건되었다.


폭행 이야기를 하면 언제나 떠오르는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타인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 행위는 '사람에 대한 일체의 유형력 행사'에 포함될 수 있기에 A와 B 모두 당연하게도 서로에 대한 폭행죄가 성립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A와 B는 조사 중 알고 보니 서로 고향이 같은 데다가 나이도 한 살밖에 차이 나지 않고, 계급마저 같은 대위였다. 거기다 둘은 모두 장기 복무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폭행죄로 처벌을 받거나 징계를 받게 된다면 장기 복무 자원에 선발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기에 정말로 난처한 상황이 되었다.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된 둘은 의기투합했고, 함께 내게 상담을 요청했다. 이미 호형호제를 하며 절친과 같은 사이가 된 둘은 내게 이미 서로에 대한 합의를 마쳤으니 별일 없이 사건을 무마시킬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둘의 행동은 이미 주차장 내 CCTV에 명확하게 녹화된 상태였으며, 멱살을 잡은 모습을 목격하고 신고했던 간부의 진술 역시 이미 수사기관에 확보가 된 상태였다. 이미 합의가 마쳐졌고, 둘 모두 전과가 없는 만큼 어떻게든 군검사의 '기소유예' 처분을 받아 일단 형사 처벌을 면하고, 징계 절차에서는 여러 사정 등을 잘 소명해서 경고장 수여 정도로 그칠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말 외에는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B는 눈물을 흘렸다. 결혼을 했고, 아이도 있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징계를 받게 된다면 자신은 군에 더 이상 남아있을 수 없게 될 것이 분명하다는 이유였다. A 역시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오해 때문에 A와 B 둘 모두의 군 생활이 무너질 위기라는 것이 너무 슬프다는 이유였다. 나 역시도 너무나 착잡한 마음이었다. 군형법이 폭행죄에 대해 반의사불벌 적용을 배제하는 특례를 둔 이유가 이러한 사건 때문임은 분명 아니었을 텐데, 군인 신분이기에 감내해야 할 부담이 너무나도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 A와 B 모두 군검사로부터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러나 이후 둘에 대한 징계가 각 어느 정도의 수위로 이루어졌는지, 결국 A와 B는 진급을 하여 정년을 연장할 수 있었을지에 관하여는 들은 바가 없다. 여전히 폭행죄의 성립에 관하여는 매우 폭넓게 인정하면서도 그 빠져나갈 퇴로를 차단하고 있는 현실 역시 변함없다.


   국회에서 군형법에 폭행죄의 특례 조항을 둔 이유는 군 내에서 벌어지는 가혹행위를 엄단하여 척결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조금 더 효율적인 방법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지금도 군 어딘가에는 선임 병사의 혹은 간부의 폭력과 가혹행위가 무서워서 잠들지 못하는 병사가 있을 것이다. 그러한 병사의 두려움을 진실하게 해결해주기 위해서는 한정된 군 수사 인력을 보다 적절한 상황에 투입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여전히 모두 해결되지 않은 군 내 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해서, 나아가 사소한 다툼만으로 전과자가 되는 군인이 나타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무언가 더 효율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적어도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손해를 보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평범한 오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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