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형법의 '근무기피목적위계죄' 이야기
어린 시절 TV 속에서 보았던 '스티브 유', 유승준은 정말로 멋있는 남자 그 자체였다. 당시 유승준의 별명이 '아름다운 청년'이었던 것은 그의 위상이 어땠는지 알 수 있는 대표적 예시이다. 가위, 열정, 나나나 등 그가 부른 노래는 언제나 히트했으며, 그가 나왔던 예능 '동거동락' 역시 인기가 대단했다. 그뿐일까, 초등학생들 사이에선 그와 닮고 싶은 마음에 앞머리를 '젤'로 뻣뻣하게 세우고 앞머리 중 한 가닥만을 아래로 길게 늘어뜨리는 머리 스타일 역시 대유행했다. 바야흐로 유승준의 시대였다.
그랬던 그의 현재 모습은 한숨만 나온다. 인터넷 서핑 중 우연히 그의 사진이라도 보게 되면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이다. 비단 내 개인의 의견만은 아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에 입국조차 하기 힘든 인물이 되었다. 연례행사처럼 우리나라로 돌아오고 싶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지만 여론은 여전히 냉랭하다. 최근에는 '너네는 했던 모든 말을 지키고 사냐'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여, 여론을 더욱 냉각시켰다. 그의 복귀는 힘들 것만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예민하게 생각하는 문제 중 하나인 병역이행과 관련된 문제 탓이다.
연예인뿐만 아니라 일반인 중에서도 병역을 회피하기 위해 다양한 위법 행위를 저지르는 사람이 많다. 2007년, 괄약근에 힘을 주는 방법으로 순간적으로 혈압을 높여서 병역 면제 판정을 받았던 사람이 대거 적발되었던 것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입대 이전 단계에서 병역 면제를 위해 위법한 수단을 쓴 사람이라면 민간법원에서 병역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일단 입대한 군인이, '현역복무부적합' 대상으로 판정을 받아 군에서 나가기 위해 위법한 수단을 사용하다가 적발된 경우에는 그 신분이 군인이기에 군사법원에서 군형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
군형법은 제41조 제2항에 '근무기피목적위계'라는 죄를 두고 있다. 이름도 낯선 이 죄는 군인이 근무를 기피할 목적으로 질병을 가장하거나 거짓된 행위 등을 했을 때 처벌하기 위한 것으로, 벌금형 없이 1년 이하의 징역을 법정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행동이 대체 어떤 모습인지 적절한 예시를 고민하던 차에, 인터넷 유머사이트에서 우연히 '근무기피목적위계'의 대표적인 예시를 찾았기에 이를 소개한다.
원글 작성자의 수려한 필력과 더불어 연대장의 재치 있는 행동, 소재의 참신함에 한참을 미소 지었다. 글을 정말 재미있게 봤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봤지만, 원글 작성자가 쓴 내용과 같은 군사법원 판결문은 찾지 못했다. 아마도 재미를 위해 글에 과장을 조금 섞은 것 같다. 그러나 사실 여부를 떠나서 정말로 어딘가에서 발생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사례이며, '근무기피목적위계'에 대해 누구나 한 번에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만약 원글 속 종이를 찢던 그 병사가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면, 군 복무를 기피할 목적에서 모든 종이를 찢어버리고 싶은 정신병이 있는 것처럼 가장했다거나 같은 내용의 위계를 사용했다는 이유에서 근무기피목적위계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을 것이다.
위 인터넷 유머사이트 글만큼 극적이지는 않지만, 군사법원에서 만난 병사 A의 경우도 나름대로 인상 깊었던 근무기피목적위계 범행을 저질렀었다. 병사 A는 입대 전부터 깊은 사랑을 나누던 여자 친구가 있었다. 그러나 무엇도 막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A의 연애 전선 역시 입대 이후 휘청이기 시작했다. 강원도에서 복무하게 된 A와 서울에 거주 중인 여자 친구 간 물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하루에도 몇 시간씩 하던 통화도 거의 하지 못하게 되어 심리적 거리까지 벌어지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A는 고민했다. 몇 달에 한 번씩 받는 휴가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렇게 고민 끝에 A는 묘안을 생각해냈다. 직계가족의 부고 소식이 있으면 장례를 치르기 위해 휴가를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악용하기로 한 것이다.
육군의 경우 지휘관에 따라 차등은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현역 병사에게 부모, 조부모의 사망 시 5일, 형제자매 사망 시 3일의 청원휴가를 내어준다. A는 이러한 제도를 악용하고자 마음먹은 것이다. 처음은 친할머니였다. 지휘관에게 친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거짓 보고를 하였고, 급히 집으로 휴가를 나가야 한다고 말하였다. 물론 육군 규정상 조부모의 사망에 대해 청원휴가를 받기 위해서는 증빙서류를 제출해야 하나, 당시 지휘관은 일단 상심이 클 A에게 휴가를 허가한 후, 증빙서류는 복귀 이후 정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거짓으로 할머니의 죽음을 보고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A는 며칠간 행복한 휴가를 보냈다. 여자 친구를 만나서 예전처럼 같이 영화도 보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며 데이트를 즐기고 부대에 복귀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A는 당연히 할머니의 사망에 관한 어떤 증빙서류도 제출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지휘관은 할머니의 사망으로 매우 우울해 보이는 A를 너무 닦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여, 심신의 안정을 찾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배려심이 깊은 장교였다. 문제는 그런 지휘관의 속도 모르고, A는 자신의 거짓말이 전혀 들통나지 않았다고 속단해버린 것이다. 기고만장해진 A는 애석하게도 불과 한 달만에 다시 한번 지휘관에게 찾아가 이번에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거짓말을 하였다. 지휘관은 몹시 수상한 마음이 들었으나, 진실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에 일단 A에게 휴가를 허가하였다. 그렇게 A가 거짓말을 통해 휴가를 나가 있던 도중, 지휘관은 관련 자료들을 수집하여 A가 휴가를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해왔던 것을 밝혀내게 되었고, 이러한 사실을 군사경찰에 신고하였다.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거짓말로 휴가를 얻어냈던 A는 수사 끝에 군사법원에 근무기피목적위계죄로 기소되었다. 조부모의 사망 핑계를 대는 등 죄질이 좋지 않았지만 초범이라는 점이 고려되어 군사재판 끝에 A는 징역형의 집행유예 판결을 선고받게 되었다. 20대 초반 불타는 사랑의 대가 치고는 너무 컸다.
A의 경우나, 종이를 찢던 어느 병사와 같이 다양한 사람들이 병역을 회피하려고 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또한 스티브 유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병역의무 이행에 대한 국민의 시선과 잣대는 매우 엄격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병역 환경에 대해서는 그만큼의 관심이 쏠리지는 않고 있어 보인다. 20대 초반 청년에게 2년에 가까운 시간을 국가를 위해 희생하라고 강요할 때에는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말하지만, 그들이 군 내에서 혹은 사회에서 받는 대우는 언제나 너무 차갑다. 군 내에는 여전히 각종 부조리가 남아 있으며, 병사에게 최저시급조차 보장해주지 않고 있기에 군대는 사람들에게 '가고 싶지 않은 곳'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사회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역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여 국가를 위해 긴 시간을 희생한 이들에 대해 그 어떠한 보상도 주지 않고 있기에 군대는 '가봤자 의미 없는 곳'이라는 인식마저 팽배해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사회적인 관심이 단순히 병역의무를 이행했는지 여부에서 나아가, 청년들의 군생활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에 관하여도 충분히 집중되기를 바란다. 군의 환경을 개선하는 것만이 병역 기피자를 줄이는 가장 빠르고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법정형의 상향이나 엄격한 처벌보다 군인들에 대한 '제대로 된 대우'가 선행되어야 함을 모두가 인지해야 할 시점이다.
앞으로는 제도 및 환경의 개선을 통해, 제2의 스티브 유가 나타나는 일이 없이, 모두가 '아름다운 청년'으로 남기를 바라는 그런 군사법원의 평범한 오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