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저는 잘못이 없습니다

by 안갑철 변호사

모든 선택에 대해서는 결과가 따르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일이 그렇게 돌아가질 않습니다.


때로는, 정말 너무나도 억울할 때가 있습니다. 상황이 잘못으로 둔갑하는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Episode – 강의 폐강


살면서, 가장 억울하다고 여겼던 일을 소개합니다.


① 1차 파동


제가 학교에서 박사과정으로 있을 때 지도교수님의 추천으로 ‘모의재판’이라는 과목을 강의한 적 있습니다. 강사료는 박봉이었지만, ‘재능 기부’라는 생각으로 임했고, 학생들도 나름 잘 따라왔던 것 같습니다.

해당 과목 3년 차 되던 해에, 새로 부임하신 교수님이 그 강의를 직접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직접 하겠다고 하시면서, 저 몰래 학교에 제가 사용한 강의안을 사용해도 되냐고 묻기도 했다고 합니다. 학교에서는, 제게 직접 문의하라고 했고, 저는 강의안을 제외한 모든 것들을 알려 드렸습니다.


대신, 학교는 제가 ‘형사변호사실무’라는 강의를 맡아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면서, 학교는 ‘형사변호사실무’라는 강의 시간에 ‘변호사시험 문제 풀이’를 요구했습니다.

그러한 요구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는데, 로스쿨 합격률이 제일 중요한 가치이다 보니, 저를 갈아 넣을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로서는 말이 안 되는 요구였습니다. 저는 ‘사법시험’을 합격했으므로, 사법시험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로스쿨 시대의 ‘변호사시험’은 잘 알지 못합니다. 물론, 제가 ‘준비’하면 더 잘할 것입니다.


저는 저만의 길을 걷기로 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실무’ 수업에 ‘시험 준비’를 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약 두 달의 시간을 할애하여 ‘자체 교재’를 만들었고, ‘친절하게도’ 행정실에 “강의안은 복사실에서 구매하면 된다.”라고 알려 줬습니다.


3월 1일이었습니다. 저희 법인 사무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변호사님, 오늘 강의하세요?”

“강의요? 오늘 3·1절이라, 강의 안 하는데요?”

“아니, 지금 뭐, 학생 대표라고 해서 회사에 연락이 왔는데, 난리가 났는데요? 교수님 안 오셨다고?”

“네? 이게 무슨?”

“그래서, 변호사님 개인 번호를 알려 달라는 겁니다.”

“네?”

“재발 방지를 막기 위해서, 변호사님 개인 번호를 알려 달라고 해서, 그건 개인정보 보호 때문에 안 된다고 제가 일러두기는 했습니다.”

“사무장님,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저는 분명히 강의한다고 말 한 사실이 없어요. 착오인 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확인해 보니, 그 행정실 직원은 “강의안은 복사실에서 구매하면 된다.”라는 말을 “안갑철 교수님 3·1절에 수업하신다. 강의안은 복사실에서 구매하라.”는 내용의 단체 문자를 발송한 것입니다. 당시 학교에서 3·1절에 강의하시는 교수님은 회신하여 달라는 메일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원래 3·1절은 쉬는 날이고, 강의할 사람만이 회신하는 내용이므로, 강의할 계획이 없는 저는 회신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큰 사고를 쳐놓고, 저한테 하는 말이 가관이었습니다. 그럴 거면, 왜 강의안을 미리 구입하라고 했냐며 제게 따지고(뭐라구?) 다른 교수님들은 강의 안 한다고도 메일 보내셨는제 저는 왜 안 보냈냐고 타박하고(아니, 강의할 사람만 회신 달라며), 이제 3년 차 교수님(강사지만, 그렇게 불러줌)이면 이 정도는 알아야(본업이 아닌데 어떻게 알아?)되지 않냐고도 했습니다. 제가 사무실에서 그렇게 화를 세게 낸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저는 소리를 질러가며, 행정실 직원들을 질타했습니다.


어쨌든, 수강 정정 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오리엔테이션을 해 달라고 하는 게 요지였습니다. 그럴거면, 처음부터 공손하게 했어야죠. “행정실의 착오로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 사정이 이러하니 부탁드린다.”라고 했으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았고,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수강생들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제 억울함으로 토로하면서 다소 거친 표현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 강의 계획도 설명했습니다.


“종전의 강의는 시험 준비형이었다면, 제가 하는 강의는 철저하게 실무 중심의 강의입니다.”


수강생 몇 명이 중간에 나가기도 했습니다. 수강생들은 다소 당황스러워 보였습니다. 그들이 기대한 강의가 아닌 게 확실했습니다.


“교수님, 기출 문제나 모의 고사 같은 것 안 풀어 주십니까”

“네, 이 강의는 실무 중심의 강의입니다.”

“교수님, 원래 이 강의가 70명 정도 듣는데, 교수님 강의 계획서 보고 35명 정도가 듣습니다.”

“네, 그래서요?”


아무래도, 이 학생은 내 강의료가 학생 수에 비례에서 들어오는 것으로 착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매우 무례한 말입니다. 돈이 목적이었으면, 강의 제안을 수락하지도 않았습니다.


“교수님, 예전에 교수님들은 다 해 주셨는데…….”


결국,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여러분 생각해서 말하는 건데, 이건 철저히 실무 중심의 강의이고, 예전 강의를 생각하고 온 사람은 드롭하세요.”


오리엔테이션 끝내고, 귀가하는 길에 여러 교수님들과 통화했습니다. 그야말로, 그날 밤 학교가 난리가 났습니다. 심지어, 어떤 교수님은 저더러 학생 대표에게 메일을 보낼 것을 강요했습니다. 그래도 어른의 말씀이라 들었습니다마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처사였습니다. 저는 잘못이 없으니까요.


정정 기간이 지나자, 제 강의의 수강생은 두 명으로 줄었고, 3인이 채워지지 않아 폐강 대상이 됐습니다. 저는 학교에 전화해서 원칙대로 하라, 3인 미만이므로 해당 강의를 폐강하여 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제 강의는 폐강됐습니다.


② 2차 파동


위와 같은 연유로 제 강의가 폐강됐으면, 학교 입장에서는 포기(?)할 만도 한데, 제게 또 강의를 제안했습니다. 아니, 대체 왜?


알겠다고는 했는데, 이번에도 행정실이 말썽입니다.


강사 4년차이므로 재계약을 해야 하는데, 재계약 이야기가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과거의 폐강 이력 때문에 제가 재계약 대상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강의를 일주일 앞둔 어느 날,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새 학기 강의 잘 부탁한다는 취지였습니다.


저는 해당 메일을 주말에 받았는데, 바로 항의성 회신을 했습니다. 지금 4년차라 재계약 해야 하는데, 재계약 이야기도 없고, 강의 계획서 입력도 안 한 상태인데 갑자기 강의를 하라고 하면 어떡하냐는 취지였습니다.

월요일에 학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역시 자기 책임이 아니랍니다. 누가 전달을 해주지 않았답니다. 그려려니 합니다.


특채 형식으로 강사로 채용됐고, 강의계획서도 입력했습니다. 그리고 한 통의 전체 문자를 보냈습니다.


응~ 이 강의~ 실무 중심 강의야~


학교가 또 뒤집어 졌습니다. 모 교수님과 통화했습니다.


“안변, 이번에는 문제 좀 풀어주세요.”

“4회 정도 할게요.”

“6회는 안 되나”

“그냥 전반기는 실무, 후반기는 문제풀이, 다만 첨삭은 없습니다.”

“그래, 그렇게라도 해주세요.”


학생 대표하고도 통화했습니다. 전반기는 실무 중심, 후반기는 문제 풀이 중심 강의이고, 첨삭은 없다고 ‘확실히’ 전했습니다.


‘첨삭’에 대해서 실망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제가 첨삭을 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첨삭을 해 준다면, 수강자는 더 늘어날텐데 최소한 35명에서 60명 사이의 답안지를 매주 첨삭할 수는 없습니다. 한 달에 40만원도 안 되는 돈을 받고, 일주일에 매번 학교에 가서 강의하고, 시험지를 걷어와서 첨삭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결국, 오리엔테이션 첫날! 다섯 명이 들어왔습니다. 저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소수 정예로 잘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정정 기간이 지난 이후 수강생은 한 명으로 줄었습니다.


폐강이었습니다. 저는 남은 수강생 한명이 그렇게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문자를 보냈습니다. 폐강되어 유감이지만, 학생이 그래도 유지해줘서 고맙다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요청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문자에 대한 회신은 오지 않았습니다.


③ 교재 출간


저의 강의는 폐강됐지만, 제 강의가 폐강된 사실보다 제가 준비한 강의안이 쓰일 수 없게 된 것은 속이 상했습니다. 강의안을 준비할 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바로 활용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학교에서 강의하지 않을지언정, 강의안을 그대로 썩힐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강의안을 정식 교재로 출간하기로 마음먹고, 더욱 보완하여 《한 권으로 끝내는 형사변호실무》라는 교재를 출간했습니다. 해당 교재는 2쇄 발간을 하는 등 나름, 선전하고 있습니다.


억울한 일을 겪었지만, 결국 교재까지 출간하고 2쇄 발간까지 경험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저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손해는 궁극적으로 학교와 학생들이 봤다는 것을.

토요일 연재
이전 25화그래도 따뜻한 마음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