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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플러스 인생 Jul 19. 2021

두 번째 이야기, 미축 자중 (2)

도겸, 화덕성군, 그리고 서주대학살

-서주목 도겸 밑에서 벼슬살이를 시작한 미축


192년, 서주...


반동탁연합군이 성과 없이 흩어지고, 강자가 약자를 집어삼키는 군웅할거의 시대. 미축은 서주의 관리자인 도겸 밑에서 벼슬을 하고 있었습니다. '별가종사'라는 직책인데, 대충 비서실장쯤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지방공무원이긴 하지만 나름 고위직이었던 셈이지요. 


원래 서주 동해군 구현에서 태어난 미축이 서주에서 벼슬을 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중국 대륙의 동쪽 끝에 있는 서주이고 태어난 지역 이름도 동해군이니, 바다를 보고 자란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미축네 집안이 아마도 값비싼 소금 장사를 해서 돈을 모으지 않았겠냐는 추측도 바닷가 사람이다 보니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미축은 서주에서도 이름난 부자였습니다. 아무튼 정사 삼국지에 가객이 1만 명이었다고 나올 정도니까요. 1만 명이란 숫자 속에는 일꾼도 있고 손님도 있었겠지만 아무튼 그 정도 숫자를 경영할 수 있을 만큼 대대로 부를 축적한 집안이었습니다. 이만큼 부자였으면 당연히 지역 내 발언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지방 호족이 되는 거죠. 중앙에서 임명하는 주자사들은 왔다가 가지만 호족들은 영원히 지역에 뿌리내리고 삽니다. 


일본의 작가 기타카타 겐조는 <영웅 삼국지>에서 서주를 여러 호족 집안들에 의해 분할 통치되고 있는 땅으로 묘사합니다. 강력한 지역 이기주의로 똘똘 뭉쳐 있는 데다 사병까지 거느리고 있는 지방 호족들 앞에 중앙 정치계 출신 관리들은 맥을 못 춥니다. 황제가 지방에 대한 영향력을 잃어버린 난세에는 더 말할 것도 없었겠지요.


미축은 그런 호족들의 대표로서 지방관 도겸을 맞상대하는 역할을 맡았을까요? 아니면 여러 호족들 가운데 비교적 도겸에게 호의적인 사람이라 중용된 것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혹시... 지방에서 부를 쌓는 일보다 더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다, 는 꿈을 가졌던 것은 아닐까요?




-미축이 화덕성군을 만난 이야기


그런 미축의 심리를 추측해 볼 수 있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미축이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에 아름다운 여인을 수레에 태웠는데, 길을 가는 내내 한 번도 사사로운 눈길을 주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사로운 눈길... 그러니까 개수작을 부리지 않았다는 뜻일 텐데요. 인품이 반듯한 사람이었다는 뜻이겠지요. 돈만 열심히 번 게 아니라 당대에 높게 치는 윤리, 도덕도 갈고닦았다는 뜻일 겁니다. 


바른 사람에게는 하늘이 복을 내리죠. 여인은 미축의 인품을 칭찬하며 자신의 정체를 드러냅니다. 그녀는 사실 인간이 아니라 불을 관장하는 화덕성군이었습니다. 다름 아닌 미축의 집에 불을 지르러 가는 중이었다고 하는데요. 미축이 훌륭한 행동을 보여줬기에 조금 천천히 가 줄 테니 얼른 가서 집을 비워 재산을 보전하라고 일러줍니다. 


미축이 집에 돌아와 얼른 모든 짐을 빼놓고 어떤 불씨도 남기지 않았지만 정해진 시간이 되자 정말로 불길이 일어 집이 모두 타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마터면 알거지가 되고 목숨까지 잃을 뻔했던 미축. 정말 비과학적인 이야기지만, 이런 내용이 정사 삼국지에 주석으로 달려 소개돼 있는가 하면, 저잣거리 떠도는 이야기를 모아놓은 습유기라는 책에도 적혀 있는 걸 보면 미축의 집에 불이 나긴 났던 모양입니다. 그런데도 큰 피해를 보지 않은 것이 신기해서 이런 이야기가 생겨난 것이겠죠. 


이런 신화적인 이야기를 보면 자꾸만 이야기의 빈 공간을 메꾸고 싶어 집니다. 이 이야기의 앞부분으로 돌아가 보면, 미축은 자기 집을 불태울 화신을 수레에 태우고 가고 있던 셈입니다. 많은 재산을 축적한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화를 당하게 될 원인을 스스로 제공하게 된다는 뜻인 걸까요. 혹은 미축에게 원한이 있는 사람이 방화를 계획했는데, 미축에게 도움을 받았던 사람이 그 사실을 미리 귀띔해줬던 걸까요. 


아무튼 미축은 신비로운 일을 겪으며 재산을 잃어버릴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이 사건이 그의 인생철학을 바꿔놓지 않았을까요? 집은 불타면 사라진다. 재산도 마찬가지다. 목숨조차 언젠가는 끝나고 만다. 그렇다면 불타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고민이 그를 단순히 지방호족의 삶에 머무르지 않고, 관직의 길로, 나아가 더 큰 대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밀고 나가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요. 




-193년, '서주대학살' 미축의 삶이 흔들리다


그런 미축의 개인적 고민이 시대의 흐름과 만나 폭발하는 순간이 옵니다. 바로 조조군이 서주로 진격해온 것입니다. 


삼국지연의에서 황건적 잔당을 진압하며 연주에서 나름의 세력을 구축한 조조가 멀리 피신시켰던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을 불러오는 장면입니다. 마침 조조의 가족들이 서주를 지나가게 되자, 조조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었던 서주목 도겸은 이들에게 호위병을 붙여줍니다. 문제는 그 호위병이 황건적 출신인 장개였다는 것. 어느 날 밤, 재물에 욕심이 생긴 장개는 부하들과 조조의 가족들을 살육하고 도망칩니다. 가벼운 호의가 비극의 씨앗이 된 겁니다. 


이 소식을 들은 조조는 아버지의 복수를 명분으로 서주로 쳐들어갑니다. '보수설한' 원수를 갚아 한을 씻겠다는 깃발을 내걸고 서주를 마구잡이로 때려 부숩니다. 문제는 조조가 죄 없는 민간인까지 학살했다는 겁니다. 조조 인생 최대의 악행으로 기록된 서주대학살입니다. 


이 대목은 오히려 조조를 악인으로 묘사한 삼국지연의에서 잔인함이 덜하게 묘사돼 있습니다. 전 국민이 가장 많이 읽은 삼국지인 <이문열 평역 삼국지>에서도 이 대목이 자세히 서술되지 않고 넘어간 탓에 이 사건을 제대로 인식하기가 어렵습니다. 만화 <창천항로> 같은 작품은 조조를 주인공으로 하는데도 조조군이 학살한 시체들로 강물이 막혀 흐르지 않는 장면을 여과 없이 묘사합니다. 이런 내용이 작가의 창작이 아니라 역사서에 기록된 사실이라는 점이 무서울 정도입니다. 학살당한 사람의 숫자가 최소 수만에서 수십만, 백만 단위까지 거론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서주에 살던 제갈량이 조조를 뼛속 깊이 증오하게 된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하고, 서주 지식인들의 대거 남하를 불러와 오나라의 인재풀이 늘어나는 나비효과가 발생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조조가 후대까지 비난받는 주요 원인으로 이 사건을 꼽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 미축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서주 호족인 미축에게 있어 서주 사람들이 학살당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학살당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직접 고용한 사람만 1만 명이었던 미축이 인연을 맺고 함께 살아가던 서주 사람은 얼마나 많았을까요. 죽은 사람들 중에 얼굴을 아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됐을까요. 대체 몇 개의 장례식장을 돌아야 했을지... 전란을 피해 착실히 쌓아 올린 서주의 부와 인구가 순식간에 깎여나가는 걸 보며 난세의 진짜 무서움을 실감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겪은 사건인 화재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의 재난이 난세에는 존재했던 것입니다. 이토록 많은 재산도, 거대한 인구도, 천하를 지배하겠다는 야심가의 칼날 앞에서는 무참하게 사라지고 마는 것이니...


짧은 생,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미축의 고민이 증폭됐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미축의 첫 주군, 도겸


여기서 정사 삼국지를 한번 짚어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삼국지연의는 도겸을 순진한 피해자로 그리고 있습니다만, 역사서에 기록된 도겸은 나름대로 난세를 자기 식대로 풀어보기 위해 이리저리 병력을 굴리던 군웅 가운데 한 명이었습니다. 조조가 원소와 동맹을 맺고 있을 때, 도겸은 북으로는 공손찬, 남으로는 원술과 동맹을 맺고 명백하게 조조군과 맞섰습니다. 도겸군이 조조의 영역을 침공한 기록도 명확하게 남아있습니다. 도겸과 조조는 엄연히 전쟁 중이었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전쟁 중이라고 해서 민간인을 학살하는 게 무조건 정당화되는 건 아닙니다. 다만 미축이 몸담은 서주는 분명하게 난세의 파도를 때려 맞고 있는 주요 분쟁지역 가운데 하나였다는 뜻입니다. 도겸은 반동탁연합군을 지원하는가 하면 나중에는 동탁에게 공물을 바쳐 서주의 지배권을 승인받기도 하고, 또다시 동탁에게 반기를 든 주준 장군을 지원해 동탁에 맞섰다가 심지어 천자를 빼돌려 서주로 데려오려는 계획도 세웁니다. 


서주를 발판으로 삼아 천하를 노리던 도겸에 대해 서주 호족들이 얼마나 호의적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미축도 과연 도겸에게 무제한적인 충성을 바쳤을지, 아니면 서주를 보호하는 제한적인 범위의 군사행동까지만 동의했을지는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건, 미축이 천하를 분명하게 의식하며 움직이는 군주를 바로 옆에서 관찰하며 서주를 넘어선 중국 대륙 전체에 대한 시야를 키웠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도겸이 천하쟁탈전에서 승리할 수 없었던 가장 큰 문제는 나이였습니다. 조조군에 대패한 충격 때문일까요. 아니면 이미 60을 넘긴 탓일까요. 도겸은 조조의 서주 침공 이후인 194년 곧 생을 마감합니다. 미축 입장에서는 첫 주군이 세상을 떠난 셈입니다. 


난세의 파도를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발상으로 헤쳐 나갔던 도겸의 죽음. 그 결과로 찾아온 서주대학살이라는 비극. 목숨과 재산을 의미 있는 곳에 쓰고 싶다는 개인적 고민... 이 모든 것이 미축의 삶에 어지럽게 얽혀 있는 가운데, 그 모든 것의 해답이 되는 한 남자가 미축의 인생에 찾아옵니다. 


바로 유비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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