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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플러스 인생 Jul 31. 2021

두 번째 이야기, 미축 자중 (3)

유비의 신하, 동료, 사돈이 되기까지

-미축과 유비의 첫 만남


현대의 독자들은 '간손미'를 그리 높게 평가하진 않지만, 유비의 일대기를 다룬 <삼국지연의>는 미축을 나름 신경 써서 다뤄주고 있습니다. 미축과 유비의 첫 만남이 정사보다 일찍 이뤄지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조조가 서주대학살을 저지르며 진격해오자, 도겸은 구원병을 보내줄 세력을 찾아 미축을 사신으로 파견합니다. 서쪽에선 조조가 쳐들어오고 있고, 남쪽에는 별다른 세력이 없는 데다 동쪽은 바다. 남는 방향은 북쪽뿐이겠죠. 서주의 북쪽에는 청주가 있었습니다. 이곳을 다스리던 사람이 바로 공자의 자손으로 유명한 공융입니다. 


하지만 황건적 잔당에게 시달리고 있던 공융에겐 서주를 도와줄 여력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공융 자신도 다른 세력의 도움을 얻어 겨우 영지를 지키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공융을 도와 청주를 지킨 세력은 다름 아닌 유비군이었습니다. 미축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유비를 만납니다...


다행히 유비는 흔쾌히 도겸을 도와주러 가겠다고 합니다. 가장 많은 한국 독자들이 선택한 <이문열 평역 삼국지>에서는 이 대목에서 유비가 미축을 만날 때, 마치 조운을 만났을 때처럼 왠지 모를 친근함이 느껴졌다고 강조합니다. 의형제로써 자신을 따르는 관우, 장비와는 달리 처음으로 얻은 '신하'가 미축이었다는 것이죠. 물론 미축이 유비의 정식 신하가 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하지만 분명 서로를 알아보았다는 것이죠. 


미축이 발견한 유비의 면모는 뭐였을까요. 중국에서 만든 최신 삼국지 드라마 <신삼국>에서는 생면부지의 도겸군을 왜 도와주러 가느냐는 조운의 질문에 유비가 이렇게 답합니다. 


"설령 이 싸움에 진다 해도, 한 가지 진리는 남을 것이야." 


"그게 뭡니까?" 


"정도는 불멸하며, 대의는 영원하다는 것!"


불멸의 정도, 영원한 대의. 아마도 미축은 유비에게서 난세에 자기가 살아갈 길을 비출 등대를 보았을 겁니다. 




-마침내 유비의 신하가 된 미축


그렇게 미축은 유비군을 데리고 서주로 돌아옵니다. 


정사에선 딱히 미축이 유비군을 데려왔다고 돼 있진 않지만, 유비군이 어떤 방식으로든 도겸을 도와 조조군에 맞섰다는 기록이 여기저기 남아 있습니다. 당시 조조는 원소와 연계하고 있었고, 원소는 공손찬과 일전을 벌이고 있었으니, 공손찬 세력에 속했던 유비 입장에서는 도겸을 지원할 충분한 근거가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유비군이 조조군을 상대로 특별히 유의미한 전과를 올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몇 차례 전투에서 패퇴했다는 기록만 나옵니다. 유비를 좋게 써준 <연의>에서조차 조조군이 서주에서 물러난 건 갑자기 여포군이 조조의 근거지인 연주를 급습했기 때문으로 나옵니다. 아무튼 유비는 목숨을 걸고 도겸을 구원했고, 조조는 물러났습니다. 


<연의>에서 이미 늙고 지친 도겸은 유비의 인덕에 감탄하며 곧바로 서주의 주인이 돼 줄 것을 부탁합니다. <정사>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병든 도겸이 미축을 불러 "유비가 아니면 서주를 안정시킬 수 없다"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분명히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도겸이 죽은 뒤 미축이 유비를 서주 자사로 맞이하려 한 것이지요. 저기 위에 서주의 관인을 유비에게 전달하고 있는 모습이 미축의 대표적인 한 장면으로 그려진 배경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로써 미축은 유비의 신하가 됩니다. 전임 주자사의 비서실장이자 서주의 대표적인 유지인 미축에게 유비는 많은 도움을 얻었을 겁니다. 미축도 자신이 호감을 느낀 유비를 곁에서 모시며 깊은 대화를 나눴겠죠. 이 사람도 혹시 서주를 발판으로 삼아 자기 야망을 채우려는 사람에 불과한 건 아닌가. 자기 능력보다 과한 목표를 세운 사람은 아닐까. 정도와 대의만으로 정말 난세를 헤쳐갈 수 있을까...


그렇게 몇 년간 유비를 관찰한 미축이, 결론에 도달하는 시점이 옵니다. 




-미축, 자신의 모든 것을 유비에게 걸다


건안 원년, 즉 서기 196년. 


서주는 다시 전란에 휩싸입니다. 서주를 침공해온 원술에 맞서 유비가 성을 나가 싸우는 사이, 유비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던 여포가 유비를 배신하고 서주를 가로챕니다. 여포가 조조를 급습한 덕분에 서주를 얻었던 유비가, 여포에게 급습당해 서주를 잃게 된 것이죠. 여포, 그야말로 난세의 아이콘입니다. 


유비는 처자식마저 여포군에 빼앗긴 채 거지꼴이 돼 방랑하는 처지가 됩니다. 정사에는 유비군 관원과 군사들이 서로를 잡아먹었다는 참혹한 기록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유비 인생 최초 최대의 좌절입니다. 정도와 대의를 영원히 지켜가기는커녕 길바닥에서 아사할 지경에 이른 겁니다. 삼국지에서 유비 역할은 여기까지! 이만 이승 하직하는 걸로 끝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미축은 유비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가산을 털기로 결정합니다. 


이 순간이 미축이 유비에게 인생을 거는 순간입니다. 지금까지 미축은 유비의 신하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제도와 절차에 따라 부임한 지자체장과 지방공무원이라는 행정적인 관계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부임지에서 쫓겨난 유비를 미축이 사재를 털어 지원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두 사람은 난세를 함께 헤쳐 나가는 동지가 됩니다. 미축은 후원자, 유비는 정치인이라고 해도 좋겠죠. 


미축은 노비 2천 명과 금은보화를 유비에게 지원합니다. 정사 유비전에는 여포와 화해한 유비가 금세 병사 1만 명을 모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대충 계산해도 유비군 전력의 20%가 미축의 사병이었다는 이야깁니다. 죽기 직전의 거지 집단 유비군을 먹이고, 입히고, 살린 사람도 미축이었습니다. 유비의 대의, 유비의 정도는 미축의 지원으로 인해 현실이 됩니다. 


미축은 여포에게 처자식을 사로잡혀 홀몸이 된 유비에게 여동생도 시집보냅니다. <연의>에서는 미부인으로 소개되는 여인입니다. 서주가 비교적 안정됐을 때 혼인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있지만, 유비가 혈혈단신이 돼서 아무런 비전이 없었을 때 사돈을 맺었다는 정사의 기록이 훨씬 더 비장합니다. 때로는 실제 역사가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한 대목 가운데 하나가 되겠죠. 


정말로 미축은 유비와 운명공동체가 된 겁니다. 


미축은 이때부터 서주인의 정체성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을 겁니다. '서주의 신하' 미축에서 '유비의 동료' 미축이 된 겁니다. 그렇잖아요, 정작 이때 서주를 지배하고 있는 건 여포였단 말이죠. 그러나 도겸에 이어 유비를 섬겼던 것과 달리 미축은 유비를 떠나 여포를 섬기지 않습니다. 미축의 길은 서주가 아니라 유비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도겸이 유비에게 서주를 물려줬을 때 미축과 함께 유비를 거들었던 서주인 중에는 하비 사람 진등 원룡도 있습니다. 유비도 진등을 좋아했고, 진등도 유비를 좋아해서 유비가 서주에 정착하는데 많은 도움을 줬지만, 그는 여포가 서주를 지배할 때는 여포를 섬겼고, 나중에 조조가 서주로 들어오자 자연스럽게 조조를 섬겼습니다. 진등은 죽을 때까지 '서주의 진등'이었던 겁니다. 


미축은 진등과 달랐습니다. 유비가 조조와 협력해 여포를 무찌른 뒤에 미축은 조조에 의해 서주 지역의 한 군을 맡는 태수 자리에 오릅니다. 지방공무원에서 한 단계 올라선 사람이 된 거죠. 미축의 동생 미방도 조조에게 벼슬을 받습니다. 하지만 유비가 조조를 주살하라는 황제의 옥대를 받고 서주로 돌아오자, 미축과 미방은 조조가 준 벼슬을 버리고 그대로 유비를 따릅니다. 


'서주의 미축'에서, '유비의 미축'으로. 그 말은 이제, 미축과 그의 가솔들이 난세의 향방에 따라 이리저리 떠도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잔혹한 뜻이기도 했습니다. 유비가 조조를 피해 서주를 떠나자, 그들도 함께 떠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미축의 최후에서 엿봤듯이, 그는 두 번 다시 고향땅을 밟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제, 방랑하던 순간에도 미축은 길을 잃지는 않게 됐습니다. 그에게는 이제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정도와 대의가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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