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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yers Oct 26. 2019

건축가의 성지순례 1.

롱샹 성당 (1) Ronchamp, Notre Dame


재채기와 감기와 사랑은 숨길 수 없는 것이라고들 한다. 그만큼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기는 참 어렵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눈길이 쫓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음악을 듣고 보기 위해서 좋아하는 뮤지션의 공연이나 관련된 장소를 찾아간다.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맛집이나 식재료를 구하러 가기도 한다. 그들에겐 그 공연장과 레스토랑과 시장이 성지와 같을 것이다. 건축가에게도 저마다 마음속에 품은 자신의 성지, 버킷리스트가 있다. 건축가 남편은 부정할지도 모르지만, 어떤 곳에서의 그의 모습은 내겐 마치 순례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무에 쌓여있던 눈가루가 반짝반짝 날리는 아름다운 아침이었다. 하늘은 이쪽 끝부터 저쪽 끝까지 푸르디푸르렀다. 세상과 차단된 듯한 언덕 위, 눈밭 한가운데서 겨울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곳에도 봄이면 새순이 오르고, 여름이면 푸르름이 무성하겠지만, 고요하게 눈 덮인 한겨울은 순례자의 성당과 마주하기에 참으로 적절한 계절이었다. 그 겨울 아침, 우리는 프랑스의 외진 마을 언덕 위에 서있는 순례자의 성당, 롱샹 성당(Colline Notre-Aame Du Haut, Ronchamp)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전적인 의미로만 따지자면, 순례자는 종교의 성지를 순례하는 사람이다. 요즘은 특정 종교와 상관없이 문화체험이나 자아성찰의 시간을 갖기 위해 순례길을 찾는 사람도 많다.
 
롱샹의 언덕은 무려 4세기부터 순례자들이 찾는 곳이었다. 그러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성소가 파괴됐는데, 나무로 만든 마리아상이 용케 무사했다. 이후 이 마리아상을 보관할 새로운 성당의 설계를 현대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맡게 됐다. 롱샹 성당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대표작이다. 그래서 지금은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서, 건축 순례자가 많은 곳이 되었다.


르코르뷔지에는 이번 여행에서 자주 만나게 될 이름. 스위스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했다. 사진은 코르뷔지에 재단 http://www.fondationlecorbusier.fr

 
그런데 롱샹이 워낙 작은 시골마을이라 가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 리옹에서 가깝다고 하기에도 꽤 먼 거리인 데다가 대중교통도 드문드문하다. 하긴 순례의 길이 편안하거나 쉬운 길은 아니었을 것이다. 리옹에서 TGV와 기차와 택시를 갈아타며 찾아갔다는 사람, 하루에 몇 번 서지 않는 간이역에서 기차가 끊긴 사연까지 온갖 고생담과 모험담이 가득했다. 홈페이지에는 롱샹 시내에서 걸어서 15분이라고 안내되어 있었지만, 언덕길이라 그런지 다들 30분은 족히 걸린다고 했다. 한겨울 눈 내린 언덕 꼭대기의 롱샹 성당에 올라갈 일을 생각하니 아득했다. 짐도 골치였다.
 
험난한 여정이었지만 건축가 남편을 가로막을 수는 없었다. 프랑스에 가는데 당연히 롱샹에 가야지! 여기 가면 근처에 뭐도 있고 뭐도 있고. 그래, 좋아하는 마음을 어떻게 이기겠는가.
 
그렇게 오직 르코르뷔지에 때문에 스위스 바젤의 일정을 급히 추가하고 대망의(?) 롱샹 성당 순례길에 오르게 됐다. 롱샹이 스위스 국경과 멀지 않아서 리옹보다는 바젤에서 접근이 더 쉽기 때문이다. 겸사겸사 바젤의 건축들을 보려는 그의 의도는 뒤늦게 깨달았지만.
 
바젤에서 롱샹까지는 차로 한 시간 남짓. 눈 내린 프랑스 전원을 가로지르는 한적한 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꽤 괜찮았다. 롱샹에 가까워질수록 겨울색이 짙어졌다. 점점 고도도 높아지고 있었다. 너무 한적해서 혹시 길을 잘못 접어든 건 아닐까 걱정할 무렵에 드디어 롱샹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언덕 위의 롱샹 성당은 멀리서부터 눈에 확 띄었다. 표지판을 따라 산길로 접어든다. 눈의 무게 때문에 가지를 축 늘어뜨린 침엽수들이 밀림처럼 우거졌다. 길에는 눈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가파른 언덕길을 구불구불 꽤 올라가서야 주차장이 나왔다.
 
맑고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입구가 있는 관리동(게이트하우스. Gatehouse)으로 향했다. 성당보다 조금 아래쪽에 위치한 게이트하우스를 거쳐야 롱샹 성당 경내로 들어갈 수 있다.


게이트하우스에서 나와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면 롱샹 성당이다.


뒤로 돌아서 북쪽에 있는 문으로 성당 내부에 들어가도록 하고 있었다.



남쪽은 언덕배기지만 성당이 들어선 곳은 넓은 평지다. 한쪽에는 건축가이자 조각가인 장 푸르베(Jean Prouvé)가 르코르뷔지에 사후에 의뢰받아 만든 세 개의 종(le Campanile. 종탑)이 있다. 반대편 마당 한 켠의 피라미드(Le Pyramid de Paix)는 원래 롱샹 성당을 건축하고 남은 부자재를 쌓아 둔 것이었는데 프랑스 독립전쟁 때 죽은 이들을 위한 기념비를 세워달라는 요청을 받은 르코르뷔지에가 그 앞에 청동 비둘기 조각상을 세워 기념비가 되었다.
 
이번에도 역시 건축가 남편은 일찌감치 시야에서 사라지고, 내 앞에는 오롯이 성당과 눈 덮인 나무들만 서 있었다. 따라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기도할 마음이 없었어도, 이런 풍경 앞에 서면 저절로 명상이 될 것 같다.
 
설경에 취해 나도 성당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천천히 바라본다. 그동안 유럽에서 보던 성당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다. 우선 외관부터가 성당이라기보다는 오두막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순례자에게 가장 어울리는 모습은 화려한 조각과 장식보다는 검소한 오두막이었을 것이다. 굴뚝처럼 높이 서있는 탑 모양은 마치 예수님 얼굴처럼 보인다. 지붕은 노아의 방주를 언덕에 올려놓은 것 같기도 하다. 보는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이다.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남쪽.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사각형 창을 낸 벽은 아래로 내려올수록 점점 두꺼워진다. 성당의 정문에는 에나멜로 그림을 그린 철판 조각들을 붙였다.



서쪽에는 성당 지붕의 빗물이 떨어지는 낙수구와 그 빗물을 모으는 저수조가 있다. 아래의 저수조는 우물이나 조각 작품처럼 보인다. 롱샹 성당에는 위가 둥글게 생긴 세 개의 탑이 있는데 탑에 만든 창 때문에 마치 예수님의 얼굴처럼 보였다.



북쪽에서 본 롱샹 성당. 이쪽의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었다.



동쪽과 남쪽에는 넓은 잔디마당이 있고, 성당 동쪽에 야외 미사를 위한 제대를 만들었다. 벽 가운데에 있는 작은 창 안쪽으로는 폭격에서 남겨진 목각 마리아상이 놓여 있다. 이 벽을 사이에 두고 성당 안에도 제대가 있는데, 벽에 작은 구멍을 내어 예배당 안에서 보면 마치 별이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붕의 둥근 모양은 노아의 방주를 떠올리게 한다.
 
유명세를 타는 만큼 일 년 내내 문화행사도 많이 한다던데, 겨울은 비수기인지 방문객도 거의 없었다. 덕분에 충분히 여유롭게 언덕 위를 즐길 수 있었다. 아무도 들어가지 않은 눈밭에 난 발자국은 다 우리 것이었다. 하지만 눈이 꽤 깊이 쌓여있어 두꺼운 털신이 젖어가고 있었다. 언덕 위라 그런지 바람도 꽤 쌀쌀해서 그늘은 제법 추웠다.
 
바람을 피해 롱샹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본다. 하얀 눈밭의 눈부심에 익숙해진 눈이 어둠 속에서 잠시 길을 잃었다가 눈을 떠보면, 알록달록 쏟아지는 빛들이 맞아준다. 밖에서 보기엔 그리 크지 않은 창이었는데, 안에서 보면 큰 빛으로 비춰진다. 그 다양한 빛의 크기와 결만으로도 예배당의 성스러움, 종교적인 분위기가 가득했다.


롱샹 성당 내부 사진들은 대부분 환하게 찍힌 사진들이지만, 내 눈에 보인 느낌 그대로



롱샹 성당은 전기를 이용한 조명은 전혀 쓰지 않고 자연광만으로 실내의 채광을 하고 있다고 한다. 지붕도 벽에 붙이지 않고 살짝 들어 올려 그 틈으로 빛이 들어온다. 성당 내부 전체가 간접조명을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내부구조도 가운데 긴 복도를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는 대부분의 성당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제대, 고해소, 성수대 등 있을 건 다 있지만, 최대한 단순화했다. 성당 외관도 성당 내부도 마치 장인이 공들여 만든 공예품 같다.


예배당 뒤에서 제대를 바라본 모습과 제대 쪽에서 예배당을 바라본 모습.


예배당 뒤로 갈수록 천장이 낮아지는 것이 확연히 보인다. 바닥도 평지가 아니라 제대 쪽으로 내려가는 경사가 있어 전체적으로 뒤에서 앞으로 갈수록 천장이 높아지는 구조이다.


뒤쪽에는 고해소와 작은 예배실(기도실)들이 위치하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창의 색깔과 무늬도 개성이 넘친다. 알록달록 유리 위에 그려진 그림과 글씨는 분명 종교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데도 유머가 넘친다. 성당 건축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이렇게 현대적으로 표현하다니.
 
그 자유로운 선과 구성은 말년의 피카소가 그린 그림을 떠올리게 했다. 롱샹 성당도 르코르뷔지에의 말년 작품이다. 실제로 피카소와 르코르뷔지에는 동시대를 살며 교류하던 사이이기도 했다고 한다.



르코르뷔지에가 직접 그린 창문의 그림과 글씨들. 새벽별(etoile du matin), 성모 마리아(marie) 등 종교적인 상징과 은유와 함께 창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에 어울리는 구름과 꽃, 나뭇잎들을 그려 넣었다.
 
르코르뷔지에는 ‘현대건축의 5원칙’이나 인간 신체를 기준으로 한 황금분할을 건축학적으로 수치화한 ‘모듈러(Modulor)’ 같은 현대건축의 핵심적인 이론을 발전시키며 실제로 그것을 건축을 통해 실현해 왔다. 롱샹 성당은 르코르뷔지에가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자유로움을 얻은 경지에서 탄생한 것이라고 한다. 오직 순례자의 성당이라는 본질만 남긴 르코르뷔지에의 답인 셈이다.
 
그러고 보니 르코르뷔지에는 말년에 지중해 바닷가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비우고 버리는 삶을 살았다고 하던데, 어쩌면 그 자신의 인생이 롱샹 성당을 통해 순례자의 모습으로 드러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연스러운 빛으로 채워진 이 기도실처럼.



밖에서 봤을 때 예수님 얼굴처럼 보이던 탑 아래는 작은 예배실(기도실)이었다. 얼굴 모양의 작은 창으로 빛이 벽면을 타고 내려와 성스러운 느낌을 준다. 세 개의 탑이 모두 각각의 예배실이다. 촛불이나 전기조명이 아닌 하늘의 빛 아래에서는 착한 기도만 하게 될 것 같았다.
 
르코르뷔지에는 롱샹 성당에 있는 세 개의 탑 중 하나에만 붉은색을 칠해 놓았다. 그는 빛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전기조명이 없이도 반짝이는 별을 새기고, 다채로운 색감과 빛을 공간에 입혀 놓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예배당을 지음으로써 저는 침묵과, 기도와, 평화와, 내적 기쁨의 장소를 만들고 싶었습니다.”(En bâtissant cette chapelle, j’ai voulu créer un lieu de silence, de prière, de paix, de joie intérieure)고 했던 르 코르뷔지에의 바람은 롱샹 성당의 건축에 오롯이 담겨 침묵과 기도, 평화와 기쁨을 전해주고 있었다.
 
이곳의 평화를 방해하는 것은 단 한 가지, 너무 춥다는 것이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은, 난방시설도 없다는 뜻이다. 그 옛날 순례자들은 좀 춥고 어두워도 감사했겠지만, 한 시간 가까이 눈밭에 있다가 햇빛도 없는 어두운 성당에 들어온 나는 슬슬 발도 시리고 온몸이 떨리기 시작한다. 게다가 저 지붕! 빛이 들어오는 지붕 아래 틈으로 바깥공기가 숭숭 들어오고 있는 것 같다. 건축가 남편은 이 조그만 예배당 안에서 뭐 그리 찍을 사진이 많단 말인가!!
 
오돌오돌 떨며 한참이 지난 후에야 게이트하우스로 가서 몸도 녹이고 따뜻한 차도 한 잔 마시기로 했다. 그런데 아까 올라갈 때는 눈 덮인 나무를 카메라에 담느라 미처 몰랐던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눈에 파묻혀서 아래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저 건물들도 범상치가 않다.


 
“르코르뷔지에가 성당이랑 부속 건물도 같이 했지.”
그의 한 마디에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스친다.
 
‘앗. 성당이 끝이 아니란 말인가. 춥고 배고픈데!’
‘오,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건물이 더 있어? 신난다!’
 
나도 어쩔 수 없이 건축 순례자의 줄에 서 있는 모양이다. 발도 손도 시리지만, 롱샹 성당과는 또 다르게 독특한 저 건물들을 좀 더 봐야겠다.

 

<롱샹 성당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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