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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슈카월드가 되고 싶어

맥북을 사서 유튜버가 되어볼까

by 찬란


“라임씨, 이번 투표에 누구 찍었어?”

“헉, 부장님, 그런 거 말씀 못드립니다.”

“아니 난 요즘 세대 생각이 궁금해서 그래.”

”사실은 제가 어제 너무 바빠서, 투표를 아예 못 했습니다.“

”그래애애? 아니 그러면 안돼지…“




망고 부장은 캐릭터 하나는 확실한 사람이었다. 그는 점심을 먹고 나서 나와 파인애플 대리를 데리고 산책하는 것을 좋아했다. ‘젊은 세대’, 즉 나와 파인애플 대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매우 궁금해했고 항상 많은 질문들을 쏟아냈다. 문제는 그 질문들이 수위를 간당간당하게 넘나들었다는 것이었다.

”파인애플 대리, 뉴스는 어디 신문 거 봐?“

”어유 부장님 요즘 누가 종이 신문 읽나요. 핸드폰으로 포털 들어가 보죠.“

”어디 포털 거 보는데? 그런데, 그거 조심해야 돼.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을 수도 있어.”

본인이 제일 편향되어 있는 것 같은데.

“아 그래요? 그런 생각은 안해봤는데. 그냥 뉴스 모아 놓은 건데요.”

“아냐. 그거 항상 비판적으로 생각하면서 읽어야 돼. 다 그러다가 세뇌당하는거야.”

파인애플 대리는 늘 망고 부장의 충고를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했다.

“예, 전 늘 별 생각이 없어서요. 알겠습니다, 부장님.“

”라임씨, 라임씨는 어떤 신문 봐?“

”저는 신문 안보고요, 유튜브 봅니다.“

파인애플 대리와 망고 부장이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유튜브로 뉴스를 본다고?“

”예, 요즘 많이들 그러는데. 저한테 필요한 것만 간추려서요.“

”그럼 인터넷에서 아무나 다 뉴스를 보도하는거야? 자격증도 없이?“

자격증?

”예, 그냥 저는 제가 필요한 정보만 보는 게 좋더라고요.“

”그래서 안 돼. 요즘 이런 세태가 말이야, 그게 얼마나 편향된 사고를 만드는 건지 알아? 진짜 조심해야 돼…“

파인애플 대리와 눈이 마주쳤다.

”어머, 부장님! 오늘은 저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들고 가는 거 어떠세요? 신메뉴 나왔는데 할인 중일걸요?“

파인애플 대리가 황급히 주제를 바꾸며 우리를 이끌었다. 대화 주제는 바로 최근 회사 근처에 개업한 카페의 수익률 추측으로 넘어갔다. 망고 부장은 “아주 돈을 쓸어담는구먼..“ 이라 중얼거리며 커피값을 법인카드로 결제했다.


퇴근 후 좋아하는 유튜버의 라이브를 켰다. ‘아재토크’였다. BJ 세명은 화면 속에서 나란히 앉아 쉼없이 낄낄대며 최근 유행하는 짤이나 기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영어 공부 중간중간 머리를 환기하기에 더없이 좋았다.

”그래서 전설의 주총꾼이라는 게 있다 이 말입니다. 가면 그냥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이 나도 주주야! 하면서 막 공중 제비 느낌으로 현장을 장악하세요. 그러면 담당자인 나는 땀이 삐질삐질…“

그는 썰을 재미있게 푸는 능력으로 팬들을 끌어모았다. 작게 시작했던 이 채널은 점차 급성장했다. 큰 인기를 얻었던 ‘슈카’는 곧 개인 채널을 파고 나왔다. 그가 쉽게 쉽게 설명해주는 경제, 상식, 뉴스를 들으면 딱히 신문을 읽을 필요가 없었다. 그의 유튜브 채널을 틀어놓고 나는 운동을 하고 게임을 했다. 가끔씩 댓글을 달기도 했다. 한번은 그가 내 댓글을 읽어주기도 했다.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었다.

“나도 슈카월드 같이 유튜브나 해 봐?

회사 월급 말고 다른 부가 수익을 벌어야 하는데.”

유튜브 구독자수가 어마어마한 유튜버들은 돈을 엄청 번다고 했다. 친구 중에 유튜브를 시작해서 쏠쏠하게 재미 보고 있다고 한 놈이 있었는데. 영화 리뷰 채널을 한다고 했던 것 같다. 그건 영화 영상을 따와서 내가 나레이션을 넣으면 되는건가? 예전에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내가 쓴 영화 리뷰 아주 맛깔난다고 칭찬한 적도 있었는데.


”그래, 한 번 해 보자. 그러려면 맥북이 있으면 좋겠는데.”

얼마전부터 눈 앞에 아른거렸던 최신 애플 맥북이 생각났다. 한 달 월급에 거의 육박하는 부담스러운 가격이었지만 그 정도의 가격은 해 볼만 하지 않을까?

“그래. 이건 투자야. 소비가 아니라고.”

황급히 컴퓨터를 키고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던 맥북을 확인했다.

맥북 프로? 기왕 하는 거 성능이 좀 더 많은 게 나을까.

아냐 아냐. 안 돼. 내 분수에는 맥북 에어가 맞아. 일단 가볍게 가자.

오 분 정도 망설이다가 구매 버튼을 눌렀다. 신용카드 번호를 입력했다. 회사에 입사하고 얼마 지 않아 발급받은 신용카드였다. 항공 마일리지를 적립해 준다는 말에 고민 없이 발급 받았는데, 바로 오늘을 위해서였구나 이놈.

“결제가 완료되었습니다.”

기분이 좋아졌다. 카드값은 다음 달에 나가니 그 때 생각해야겠다. 그것 보다 유튜브를 어떻게 찍고 업로드 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버는 지 알아봐야겠다.

핸드폰 카톡 연락처를 켰다. 유튜브로 돈을 벌었다는 친구 이름을 검색했다. 일대일로 만나긴 부담스러워 하겠지? 같이 가까웠던 동창 몇 명이랑 해서 만나자고 해봐야겠다.

벌써 마음은 백만 구독자였다. 싹 도는 도파민에 벌떡 일어났다. 이 기세로 상체 운동 가야겠다. 요즘 코어도 많이 약해졌어.


”유튜브를 해보고 싶다고?“

”어 너 그걸로 쏠쏠하게 재미 좀 봤다며, 알려줘 봐봐. 어떻게 했는지.“

”아, 놔…“

친구가 소주 한 잔을 원샷하더니 잔을 내려놓았다.

”술맛 떨어지게, 그 얘기 하지도 마.“

”어? 왜? 잘 안되냐?“

”나도 부업 삼아 한 건데…나 원래 영화 좋아하잖냐. 그래서 뭐 내 생각 같은거랑 줄거리 요약해서 나레이션 올리면 일하면서 짬짬히 할 만 하다고 생각했지.”

“그렇지, 너 원래 글도 잘 쓰고 영화도 좋아하고 지성적인 놈이었잖아.”

띄워주자. 궁금하다.

“처음엔 진짜 잘 됐거든? 구독자수 쭉 쭉 오르고. 유튜브가 성장하고 있으니까 나도 거기에 올라타려고 했단 말이야?“

”어, 근데?“

”일단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 진짜 영상 하나 만드는 데 품이 장난이 아니야. 누구 외주 줄 만큼은 안나오니까 내가 혼자 다 해야 하는데, 하나 만드는데 뻥안치고 10시간에서 20시간은 걸려.“

”아…그렇겠네.“

”게다가, 영상을 주기적으로 안 올리면 구독자수가 떨어져서, 일주일에 세 번은 올려야 하는데, 그게 진짜 쉽지 않아. 진짜 영혼이 탈탈 털린다니까?“

”그렇겠지. 그래도 좀 익숙해지면 시간이 덜 걸리지 않냐?“

”휴…맞어. 그건 그런데…결국 결정적으로…“

친구놈이 또 소주를 원샷하고 잔을 내려놓았다.

쾅!

”저작권 법에 걸려서, 채널이 삭제됐어…“

“ A ㅏ ………“

앉아 있던 모두가 숙연해졌다. 다른 친구가 황급히 잔을 들었다.

”돈 꽁으로 벌리는 거 하나 없더라. 야 한 잔 해, 한 잔 해.”

“어휴 야 오늘은 너가 사. 이 얘기 다시 할라니 짜증나니까.”

”야 나는 너가 유튜브로 돈 버니까 오늘은 니가 사는 줄 알았지.“

”야 이…“

그래도 위로 한마디를 건넸다.

”뭐 그래도 얼마라도 좀 벌었고, 그것도 나름 좋은 경험 아니겠냐.“

”아 몰라. 그냥 그 시간에 잠이나 자고 운동이나 할 걸 그랬어. 장비값 빼면 그냥 똔똔이야.“

대화 주제는 얼마 전 친구가 했었던 소개팅 이야기로 흘러갔다. 다들 들을 얘기를 다 듣자 거나하게 마시기 시작했다. 나 외에 다른 친구들은 내심 유튜브가 잘 안 됬다는 말에 고소해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정말 정보가 필요했는데. 쩝.


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벌렁 누우니 책상 위 맥북이 보였다. 난 맥북을 왜 산거야. 사과 로고가 영롱하게 빛나며 나를 보고 히죽히죽거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역시 맥북은 실버가 진리지. 실버로 사길 잘했어. 딴 생각을 하다가 다시 쓴 입맛을 다셨다.

맥북 전원을 켰다.

이걸로 뭐라도 벌 줄 알았는데.

나도 모르게 유튜브 페이지로 들어갔다.

멍하니 캔맥주 하나를 들이키며 슈카월드를 보기 시작했다. 슈카는 코뿔소는 왜 소가 아니냐는 얘기를 하더니 남미의 마약전쟁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돈 어마어마하게 벌겠지? 저 방송도 맥북으로 하려나?


나는 정말 이 맥북으로 언젠가 돈을 벌 수 있을까.

나는 정말,

이 맥북으로 무언가를 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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