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연애부터 현재의 결혼생활까지 17년을 함께 해왔는데 그 시간들 동안 서로 나눠온 이야기와 삶을 돌아보면 서로 아주 많이 다른 성장기를 가지고 있었다.
우선 나는 세 자매의 맏이였으며 엄하시고 보수적이신 부모님 아래에서 자랐다. 우리 부모님은 세 자매에게 연대책임 따위 부여하지 않으셨고 그러기에 우리는 각자 살아남기(?)가 늘 바빴다. 다른 자매가 혼나고 있으면 나에게까지 불똥이 튀지 않게 얼른 내 행동거지와 모든 매무새를 정돈했다. 부모님은 늘 두 분이 한편이었다. 아빠가 우리를 엄하게 혼내고 체벌을 하고 나면 안 그래도 몸도 아프고 마음도 힘든데 엄마가 그 상처에 소금을 뿌리듯 우리를 또 나무랐다. 둘이 한편이기에 두 분은 사이가 좋았다. 세 딸들이 마음에 생채기가 나든 말든 늘 두 분은 한마음 한뜻이라 늘 좋았다. 늘 그랬다. 그때 당시엔 부모님에게 체벌을 받는 일은 큰 일도 아니었기에 우리 자매들은 정말 많이 맞고 자랐다. 맞고 자라는 게 이상하지 않을 시절이었으니 자식은 매로 다스리고 엄하게 꾸짖는 것이 맞다고 그렇게 보고 자랐다.
하지만 남편의 성장배경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 남편은 남편과 동생 두 형제 집이었는데 아들을 키우는 집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께 매 한번 맞지 않고 자랐다고 했다. 늘 말로 타일렀고 말로만 혼났다고 했다. 늘 매와 함께했던 우리 집과는 정말 많이 다른 집이었다.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니 서로의 다른 성장배경이 아이를 육아하는데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외동인 아이를 더 엄하게 단속하며 키워야 한다는 엄마인 나와 사랑으로 품어가며 키우면 다 된다는 아빠인 남편은 계속 아이의 훈육 문제로 투닥거렸지만 결국 주양육자인 나를 중심으로 아이의 육아는 진행이 되었다. 하지만 나도 너무 어릴 적부터 부모님이 어렵기만 했던 것이 너무 싫었던지라 아이에게 편안 엄마가 되어주고 싶어 많이 노력을 기울였고 지금도 노력 중이다.
문제는 늘 친정집에 다녀오고 난 후였다. 친정부모님은 우리 자매들이 성인이 된 이후로 성품이 많이 유해지셔서 내가 어릴 적과는 정말 다른 모습을 보여주시는데 그럼에도 우리 부부가 아이와 함께 친정집에 가면 우리 남편이 아이를 대하는 물렁한 태도에 늘 불만이 많으셨다. 물론, 자신들처럼 아이들에게 강하게만 해야 하는 게 맞지 않다는 건 아시지만 아이에게 늘 쉬운 아빠가 너무 권위가 없어 보인다며 나를 다그치셨다. 그러다 보니 친정을 다녀오고 나면 뭐랄까, 남편에게 이유 없는 불만이 생겨났다. 괜스레 아이에게 다 수용해 주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는 남편에게 화가 나고 나만 나쁜 역할을 하는 사람인 것만 같아 미웠다.
그러던 어느 날, 시간이 애매하게 떠 유튜브를 틀어 보다가 한 남자 연예인의 말을 듣고 내 생각이 바뀌었다. 워낙 인상이 무서운 그 연예인은 아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며 아내가 가정 내의 무서운 역할을 맡고 자신은 아들과 친구처럼 한 팀이 되기로 했다고, 그래서 아이와 함께 엄마 모르는 비밀도 만들고 같이 아내에게 꾸중도 듣는다고 했다. 그래서 사춘기 아들과의 관계가 매우 좋다고-
내가 생각하는 방향을 찾았다.
체벌 없이 자라온 남편이 아이에게 갑자기 큰 소리로 훈육을 하며 아이에게 권위를 세운다는 것은 아이와 멀어지는 지름길일 뿐이었다. 사춘기 아들이 무조건 부모의 권위를 넘어간다는 건 억측일 뿐이기도 하며, 남편은 이미 아이에게 친구 같고 의지가 되는 어른이었기에 나는 아이의 모든 성장 과정 속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터놓기 좋은 우리 남편과 같은 아빠가 아이에게 더 좋을 거라 생각했다. 무섭게 훈육하는 가이드라인을 갖고 있는 것은 나 하나로 충분하며 남편과 아이가 한편이 되게끔하면서 남편도 아이에게 적정 수준의 권위는 가지고 가는 게 맞다고 판단되었다. 이렇게 마음먹고 나니 나만 마치 ‘악역’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사라졌다. 남편이 아이에게 하는 행동들이 물텀벙이 아니라 친근감이라 보였고 아이도 아빠가 아무리 다 수용해 주어도 선을 넘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
내가 친정 부모님께서 다시금 다른 집의 형제를 키운 케이스들을 예로 들며 남편이 아이에게 하는 태도를 지적하실 때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내 남편의 육아방식을 대변해 주고 지지하는 것을 보여주며 기다려달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가정이 똑같은 모양새가 아니니 우리의 방식대로 아이를 잘 키울 거니 지켜봐 달라고 이제 그만해달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나와 남편이 하는 육아가 맞는지 틀렸는지 모른다. 하지만 부모에게 존댓말을 쓰고 어른들을 어려워할 줄 알고, 인사를 잘하며 지내는 아이가 못난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앞으로도 열심히 노력하고 고심하는 부모가 되어 건강한 어른으로, 마음이 단단한 한 명의 독립체로 아이를 만들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