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돌 전, 조리원 동기 언니가(언니의 둘째가 우리 아이와 동갑내기였다) 둘째 아이와 나이터울이 깨나 있는 큰 아이 이야기를 하면서 말을 하니 너무 시끄럽다며 지금이 편한 거야!라는 표현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이야기를 듣고 남편에게 이야기를 전하며 나는 “아우 나는 얘가 얼른 말해서 어디가 불편한지 알고 싶은데 그 언니 나쁘다”라고 말을 했더랬다.
아이가 점점 커가며 말을 하기 시작하니,
그제사 조리원동기 언니의 말이 생각이 났다.
아, 말을 못 하던 그 시절이 내 귀가 편하던 시절이란 말이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네다섯 살의 아이의 말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아이의 부정확한 발음과 자꾸만 바람이 새는 것 같은 목소리,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단어와 표현들은 듣고 있기 깨나 재미있는 것이었다. 그때만 듣고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아이가 학령기에 접어들 즈음부터 아이의 발음은 좀 더 또렷해졌고, 책을 많이 읽기 시작하니 표현이 풍부해졌다. 아기 같은 맛은 사라져 아쉬웠지만 아이와 온전한 대화가 되는 것이 사뭇 신기하고 기특했다.
12월의 어느 날.
취학통지서가 날아왔다.
기관 입학, 졸업과 초등학교 입학에 대한 마음의 경중이 당연 같을 수는 없었다. 아직 키울 날이 천리, 만리길임에도 아이의 취학통지서는 뭐랄까 아이가 내게서 독립하는 첫 발걸음을 떼는 기분이었다.
아이가 책가방을 메고 입학하는 날 책가방을 메고 신이 나 먼저 뛰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에 괜스레 눈물이 울컥했다. 나의 하나밖에 없는 아기가, 벌써 저만치 컸다.
입학 후 한 달은 매일같이 교문 앞에 매달려 있는 날들이었다. 아침에는 교실에 못 찾아갈까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교문 앞에 서있고, 하교 시에는 혹여나를 찾지 못해 집에 못 가고 당황할까 봐 하교 시간보다 이르게 나와 아이를 기다렸다.
3학년이 된 아이에게 일주일에 하루는 혼자 집에 오고 집 앞쪽에서 혼자 학교를 가게 했다.
아이의 첫 홀로 등교 날에는 아이 몰래 아이의 등굣길을 따라가봤다. 아이는 길가에 핀 꽃도 구경하고 한가로이 누워있는 길고양이도 바라보다 학교에 들어갔다. 다음날부턴 10분 더 일찍 집을 나서게 해 주었다. 등굣길이 더 여유롭게 가라고,
아이에게 주어진 변화의 시간들은 아이에게는 성장과 독립이고 내게는 아이를 놓아주고 믿어주는 시간들이다. 지금도 아이는 내게서 독립할 준비를 하고 있고 나는 그 독립을 더 안정적이게 하게끔 지원해 주는 몫을 맡고 있다. 아이의 변화. 얼마나 단단하고 예쁘게 성장할지, 늘 궁금하고 걱정되는 엄마의 마음. 너는 알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