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산의 『이별없는 아침』, 중앙일보사, 1984
모든 이야기는 아무리 그게 상상일지라도 사실로부터 순간을 얻어 밝혀지고 넓혀지고 글이 된다. 그분, 그 뱃길, 그 기록에 소설을 바친다는 작가를 따라 스물여섯 해의 가을이 사라지는 길에 막 들어섰다.
진한 갈색 세월이 책 어귀에 군내 나는 흔적으로 끈적하게 남아 있다. 사춘기 때의 그 감성이 여전한 건가. 그간 지난 관계들로부터의 먼지를 툴툴 털어내고 새롭게 시작하는 설렘일 줄 알았는데 첫인상은 얇은 두려움이다. 나의 삶과 함께 교차하는 시간들을 바라보며 뒤집어도 보고 털어도 보고 미세한 솔기를 감촉해 가며 읽고 쓸 것이다.
나를 자극한 건 최근 어느 후기의 '요즘 젊은 사람들에겐 씨알도 안 먹힐 사랑 이야기'라는 도발이었다. 씨알이 먹히려면 어떤 감성이어야 할까. 처음 책이 나온 40여 년 전, 그리고 지금, 그 차이가 어떻게 이어질지 벌어질지 궁금하다.
사랑이, 관계에 따라 시대의 욕망에 따라 윤색되고 타락하거나 슬플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차분히 내려앉은, 느리고 편안한 심장, 그 소리가 닿는 곳이 궁금하다. 사랑과 죽음 사이의 살아가기에 대해, 그 가치와 이유에 대해 귀 기울일 것이다.
1984/3,500 2025/15,000 그리고 3,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