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산의 『이별없는 아침』, 중앙일보사, 1984
일곱 날을 미루어야만 하는 이유가 스타킹과 속옷의 개수라는 건 어쩌면 더할 수 없는 진한 삶의 요동이다. 그 칠일 간, 서로 왜 거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궁금해야만 하는 건 의무라기보다 그저 최선일뿐이다.
삶의 마감일을 정해두고 둘이 만나 어떤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들이 미진한 얼룩으로 남기를 원하지 않는 건 당연하다. 비겁하리만큼 조금씩 시간을 뒤로 떼어다 놓으며 자신이 움켜쥔 매듭을 풀어야 제대로 완결하는 삶이 될 테니까.
다시 원래의 그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떠나온 이유를 붙들고 조금은 어정쩡하게 서서 한 번은 뒤돌아 봐도 좋을 거라 막연한 슬픔을 안는다. 그래 딱 한번, 그래서 충분히 살아온 시간을 되짚고 나서 여기까지 온 자신들이 옳다는 것을 꼭 쥔 주먹에 담아야 하는 거다.
죽는 순간까지 가는 악수의 개수를 세며 별 의미도 없는 말을 정성껏 주고받는다. 그런 허무가 묵직하게 눈물로 떨어지면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흘린 눈물을 곱씹으며 다음 날은 혹여 다른 날일까 꿈을 꾸며 좌절하는 밤을 맞는다.
잘 있어, 마지막이야,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마지막을 끝내 미루고야 말 것이다. 외로웠다는 말, 정말 많은 순간들을 절절히 사랑했노라 그러면서 뒷짐 진 손에는 갈망을 매달고 미련하게 연명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죽으러 가는 두 사람, 스타킹과 속옷의 남은 개수만큼, 여자, '수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시시콜콜 젖가슴의 크기나 가진 금니의 개수 같은 시작으로부터, 무엇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끝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수니의 이야기로 '나'는 산다. 다만 어떻게 시작하고 끝낼 것인가의 문제가 삶을 질식시키지 않아야 할 거다. 같은 목적으로 만난 둘 중 하나만 그걸 이룬다면 나머지 하나는 새롭게 태어나거나 혹은 심장을 조이는 트라우마를 안고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살아 내는 것, ' 그건 세상에 없던 다른 차원의 용기가 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