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너는 나를 불태워 by 마티아스 피녜이로, 2025
세상 곳곳의 환멸과 부조리, 사랑으로부터 버려진 절망, 자신을 찾기 위해 피해야만 하는 집착이 죽음으로 이어지는 과정과 절망의 색깔에 관한 시각적 주입이 흥미롭다. 텍스트나 소리가 없어도 스스로 되뇌는 경이를 느낄 수 있다.
'너는 나를 불태워.'
이미 재가 되어 버린 것들을 다시 끄적인 속편처럼, 특별하게 다가온 시간이었다. 지독한 고독과 부조리에 서로 다른 경계를 인정하지 못하고 결국 곯은 가슴을 열어 버린 기억이 아프다. 지독한 아픔이었으니 그 아픔이 날아 꽂힌 곳은 더한 상처가 되었으리라.
실연이라는 타이틀을 쥐고 끝이라고 소리치고 있지만 끝이 아니길 바라는 아이러니에 가슴이 더 허하게 비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
이탈리아 시인이자 소설가인 체사레 파베세는 자신을 죽음으로 몰면서도 글을 남겼지만 남긴다는 것 자체가 세상에 대한 미련이고 원망인 거다. 그의 죽음은 남은 사람들의 해석과 이해에 놀아난다. 불안과 어둠에 침잠한 그의 글들이 세상에 환멸을 남기고, 마치 사랑 때문에 자신을 포기한 것처럼 죽어서도 오해를 품게 한다.
하얗게 끌어 오르는 포말이 가득한 파도가 넘실거린다. 남은 찌꺼기를 쓸어갈 것 같다가도 그냥 그대로 다 가져가지 못하는 바다, 그것은 죽음의 이미지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한탄의 소리와 슬픔의 부서짐이다. 부서졌다가 다시 하나가 되는 슬픔이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 사포는 영혼마저 슬픔의 메아리가 되었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 자신을 찾는 방법은 죽음뿐인가. 내가 그를 향해 몰아치며 쏟아놓은 감정들이 나를 변호하지 못하고 그를 절망에 빠뜨린다면 어설픈 나는 그의 선택 앞에 평생 오열할 것이다. 후회하지 않는다 말하면서도 돌아선 등을 보고 싶지 않다. 결국 내가 안개로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기심과 회한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 또한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사라지든 간에. 고대 그리스의 님프는 왕의 구애를 피해 자신을 지우기로 한다. 거품이 된다.
그렇게 죽음이 된 영혼들의 이미지로 가득하다. 움직이며 반복되는 순간들이 눈물을 쏟으며 계속 혼잣말을 한다. 죽음이 넘실대는 춤이 남은 자들의 노래로 남는다.
영어와 희랍어 스페인어, 결국 불길로 정리하는 듯한 엔딩의 붉은 이탈리아가 생생하다. 각각 다른 언어가 각 장과 인물을 나누는 역할을 한다. 그들의 죽음이 출발하는 바로 그 언어는 묘비명이 된다.
'너는 나를 불태워'
▣ 포스터, YOU BURN ME (2025), IM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