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by 요아킴 트리에 감독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라는 노르웨이어, 영어의 제목과 달리 한국어 제목이 흥미롭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니 가장 협소한 의미에 자극적인 단어, '최악'을 얹는다. 더한 자극을 찾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미끼,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은 가차 없이 단호한 정의다. 사랑과 최악의 조합에 제한하려는 가치와 상상력의 부족을 읽는다.
원 제목으로부터 대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이 질문에서 시작하게 하는 이 영화는 주인공은 여성이지만 그녀만의 사랑 방식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어 제목과 포스터는 일차원적이다.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깊이를 더해가며 가치를 깨닫게 해 주려는 직선적인 의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프랑스어 제목은 'Julie (en 12 chapitres), 율리에 (12개 장으로 이루어진)'로 차분하고 중립적이다. 한국 포스터는 세로줄이 없고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이다. 영화는 12개의 소제목으로 각 장을 구성한다.
단어 하나 의미에 흔들리며 괜히 부루퉁해져서 트집으로 시작하는 리뷰다.
밝음 뒤의 두려움을 안다. 웃음 속의 허무를 겪는다. 열정 후의 고독과 버젓이 바로 앞에 사람이 있는데 외로움으로 방황한다.
충동 속에 감춰진 진실과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 그리고 그 막다른 길에 기다릴 진정한 모습들, 그것들에 대한 갈증을, 분주했다가 간혹 멈춰지는 시간으로 말한다.
사랑과 일, 관계에 대한 삶의 장이 차분히 지나간다. 여전히 어떤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은지 누구에겐가 손을 내밀어도 되는지 순진한 충동의 장난이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직면하고 선택하고 떠나보내고 급기야 깨닫는 것, 그것이 삶이다.
사람과의 관계라는 주제를 생각한다면 영화의 12개 장에서 나는 어느 부분을 지나가고 있는 걸까. 이 12개의 장은 율리에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정체성을 찾으려는 힘겨운 안간힘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신의 인생에 구경꾼인 것 같은 느낌이라고, 주연이 아니라 조연으로 사는 것 같다고 그녀가 외친다.
I feel like a spectator in my own life. Like I'm playing a supporting role in my own life. - Julie
그녀 앞에서 하던 일을 멈추고 그는 그 나름대로 평가하고 판단한다. 나는 영화를 보다가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라는 걸 알면서도 한탄한다. 이내 율리에가 쏟은 말에 눈물이 났다.
'You're defining my feelings.'
'넌 내 감정들을 정의하고 있잖아!'
그건 내가 어떤 방향을 향해 끊임없이 보냈던 소리였다. 다독여지지 못하고 결국 터져버리고 말 폭발음이었다. 심장의 깊이만큼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 주변만 맴도는 그 느낌을 고스란히 받으며 율리에는 공허하다.
그런 고독과 두려움의 순간들은 시간 위에서 진지한 고뇌로 이어진다. 그렇게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삶이 살아지는 것이다.
▣ 사진, The Worst Person in the World (2021) & 대화, Quotes from IM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