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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일까

[책] 알랭드 보통 저 / 공경희 역 / 2005, 은행나무

by 서희복

알 수 없다. 계산적이다. 공식이 있는 것처럼, 하지만 모두 허탕이다.


로맨틱하다는 건 실체가 없는 것이다. 어떤 울렁거리는 색깔들의 집합일 뿐. 어떤 사람은 사랑이 가장 궁극적으로 닿아야 할 들끓음 같은 것이라 말한다. 거기에서 단 몇 만 분의 이초쯤을 허비하고 그 순간을 품고 평생을 이를 악 무는 눈물로 버텨내는 것이라고도 하고.


시간적인 때와 공간적인 적절함을 잘 견디며 언어적으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서로 심리적인 위안과 안정을 취할 수 있는 평화로운 여백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매 순간 자를 대보고 배려라는 핑계로 자신을 가엾게 만들고 확신하지 못하는 찌꺼기 감정에 매달려 상대에 갈증내기만 하는 그런 걸 사랑이라 할 수 없다.


단 한마디로도 감성의 거리를 느낄 수 있는 사람과 자신을 더 멋지고 쓸만한 것처럼 포장하기 위해 두려움을 꽤 그럴싸한 냉정한 거리로 위장하는 사람과의 사랑은 비극이다.


'어쨌거나...'

'그렇네요.'

'괜찮아요, 그냥 물어봤어요.'

'모르겠는데...'

'아무것도 아니에요.'

'자기 하고 싶은 대로만 하지 말고...'

'꼭 그래야 해요?'

'미안할 것 없어요.'

'... 를 참을 수 없다고요.'

'... 할 생각이었어요?'

'그럼 당신이 선택해야겠네요.'

'... 면 안 되겠어요?'

'아,... 그렇긴 하지만, '

'좀 느긋해져 봐요.'

'좀 그만해요.'

'제발 그 짓 좀 그만해요!'

'우리가 서로 모르는 사람들 같네요.

'내가 짜증 난 건 당신 탓이 아니에요.'

'... 할 만큼 내가 부담스러워요?'

'당신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나쁜 자식'

'그러기로 했죠. 하지만 알잖아요.'

'어쨌든 미안해요.'

'다 괜찮으냐고요?'

'그냥 피곤해서 그래요.'

'괜찮아질 거예요.'

'왜 항상 그런 식으로...'


드문드문 감정과 괴리와 표현의 공허함으로 드러나는 관계, 어디에선가 교차로를 지나 서로 이미 멀어졌다는 것을 깨닫는 건 역시 예민한 감성이다. 허세를 뒤집어쓰고 쿨한 척하다가 냅다 닿을 수 없는 거리가 되자 그때서야 돌이킬 수 없다는 데 절망한다. 누가 누구에게 그가 또는 그녀가 서로에게 그렇다.


400여 페이지의 딱딱한 지팡이 같은 구조의 소설에서 200페이지를 맞기까지의 표현들은 처음부터 이미 꼬이고 있다는 것을 잘 보이고 있다. 사실 나머지 200여 페이지는 더더욱 깊고 커다랗고 아득한 골이 패이는 과정이다.


이젠 끝이라고요! 아니 그럴 리가요,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요! 그 '사랑'이라는 단어가 '끝'이라는 의미예요. 여전히 모르는군요.


사랑을 해보지 않은 사람에겐 이 책이 키득거리며 읽으며 몇 가지 원리를 파악할 힌트쯤 되겠다.


사랑을 해 본 사람이라면 (위 표현들을 거의 써보지 않은 무한한 기꺼움과 따뜻함으로 그 또는 그녀를 바라보는...) 첫 몇 페이지만 넘겨봐도 시시하고 충분히 속된 비릿한 인간 심리를 헤치자는 거군 이라 말할 것이다.


나는 지금 사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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