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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itor 로이린 Oct 28. 2022

난임이라 쓰고 인내라고 읽는다

“아이고...... 난포가 아니었네요.” 병원을 옮긴 지 6개월이 되어 가는데 그동안 의사 선생님을 헷갈리게 했던 동그라미 세쌍둥이는 난포가 아니었다. 병원 검진 때마다 초음파 화면 속에 보였던 동그라미 세 개가 있었다. 난소 근처에 옹기종기 붙어 있어서 그동안 정이 들었나...... 이제는 세쌍둥이라는 별칭도 지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난임인 경우에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마음가짐이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시험관 시도를 시작한 지 두, 세 달이 넘었는데도 난포가 보이지 않아 새로운 한 달을 다시 준비해야 하는 순간을 몇 번 거쳤다. 그 시간이 오면 의사 선생님도 간호사 선생님도 안타까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미안한 기색을 내비치신다. 내 마음도 괜찮을 리 없다. 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이면 어떤 기분으로 병원을 향해야 할지도 고민이다. 어떤 날은 ‘그래! 긍정적인 마음이 중요하니까 좋은 생각만 하자! 난포가 보일 거야, 이번 달엔 내게도 예쁜 아가 천사가 올 거야!’라고 힘찬 다짐을 하며 마음을 똘똘 뭉쳐 본다. 또 다른 날은 ‘지난번엔 너무 들떴었지...... 괜히 실망만 커질 거야...... 안될 수 있으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하고 조금은 차분하면서도 울적한 기분으로 병원 길에 나선다. 


어느 날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계속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지만 단 한 번도 이러한 생각은 입 밖으로 꺼내어본 적이 없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기에, 말이 씨가 될까 싶어서였다. 시댁 가족분 중에 한 분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이가 오면 선물이라 생각하고, 아이가 오지 않아도 그것 또한 행복이라 생각하렴.” 아마도 나에게 부담 갖지 않고 어떠한 상황이 오든 밝은 면을 보라는 의미에서 말씀하신 것 같았다. 또 한편으로는 아이가 온다는 것은 내가 원한다고 되는 일도, 나의 의지만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엄마가 되기 위해 내 몸을 소중히 관리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열심히만 한다고 생물학적인 나의 몸 상태를 바꾸기는 어렵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개그우먼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아이가 잘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주변에서 하도 체중 감량을 하라고 하길래 힘들게 다이어트도 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아이가 잘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는 마음을 비웠다. 여러 시도를 해보았지만 이제는 아이 없는 삶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영양제를 잘 챙겨 먹는 것이, 내가 건강한 음식만 먹는 것이, 매일 운동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에 잠기다가도 나는 아직 이 의심들을 이겨낼 만큼 엄마가 되고 싶고 또 기다려진다. 


어느새 해가 바뀌었다. 새해가 되니 새로운 다짐을 하듯, 올해는 꼭 우리 가족에게 새로운 생명이 와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커졌다. 몸과 마음을 새롭게 준비해보고자 난임 관련 책도 볼 겸 서점에 들렀다. 내가 처음 난임 관련 서적을 찾을 때는 몇 권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사이에 더 다양한 책이 출간되었다. 그만큼 원인을 알 수 없는 난임으로 마음고생하는 부부들이 많구나 싶었다. 그중 나도 익히 들었던 경주의 OOO 한의원 원장님의 책 출간 소식을 접했다. 시댁 친척분 중에 우리가 아이 소식이 계속 없으니, 걱정이 되었는지 경주에 유명한 한의원이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관심 있게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책 표지에 쓰여 있는 ‘경주 한의원’이라는 문구만 보아도 ‘아~ 그때 이야기하셨던 한의원이 OOO 한의원이구나.’ 단번에 알 것 같았다. 


시험관 시술 시도조차 어려운 내 상황에서, 내 몸의 건강 회복이 우선인가 싶어 한의원에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때였다.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눈에 띈 어느 대형 한방 병원 한의사 분의 책도 훑어보게 되었다. 사람은 내가 보고 싶은 부분만 본다고 나 역시 그랬을까.  


한의원에 가기 전 마음에 걸렸던 부분이 있었다.  

‘양약과 주사 처방을 받고 있는데, 한약을 먹어도 될까?’

‘그렇다고 지금 다니고 있는 의사 선생님에게 물어보기에는 뭔가...... 배신하는 기분인데?’

‘여쭤보면 분명 먹지 말라고 하실 것 같은데...... 그렇다고 양약만 먹기엔 역부족인 것 같아......’


나 혼자 도돌이표 고민을 한창 하고 있던 때, 우연히 펼친 책의 페이지는 마치 내 마음을 꿰뚫어 보듯 내가 듣고 싶은 문장이 들어있었다. 


‘양약과 한약을 적절하게 활용하면 좋다.’


이 한 문장은 내가 느끼는 죄책감에 한 줄기 위로가 되었다. 난임 관련 글을 찾다 보면 한약을 먹고 효과를 봤다는 사람도 있고, 몸 상태에 따라 주의해야 하는 사람의 후기도 본 적이 있다. 그만큼 나 역시 고민이 되었던 일이다. 하지만 몇 달을 보내고 난 뒤의 내 생각은 달라졌다. 내 현재의 몸 상태만 놓고 동일한 약을 계속 먹기보다는 내 몸 자체의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더 효과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겼다. 그렇게 나는 나에게 맞는 한의원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또 다른 준비를 해본다. 난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지 열 달이 되었다. 난임은 인내다. 내가 멈추지만 않는다면 나도 언젠가는 엄마가 될 수 있다는 설렘으로 다시 새로운 한 달을 준비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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