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에 가면 진료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볼 수 있는 임신 관련 서적들이 있다. 임신의 과정, 생리 주기 등 내 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데도 마치 중학교 시절 어렴풋이 배웠던 걸 더듬더듬 다시 공부하는 기분이 든다. 엄마가 되기 위해서 ‘이론 공부까지 다시 해야 하는 건가.’ 푸념해버렸다.
한편으론 ‘내가 내 몸에 대해서 너무 관심이 없었나.’
깊은 한숨도 나왔다. ‘휴......’
그러다 번뜩 정신을 차린다.
‘아니지, 이참에 제대로 알아보자, 나의 소중한 몸!’
먼저 책을 통해 알게 된 기초 체온 체크 법. 특히 생리주기가 불규칙해서 배란 일자를 정확히 알기 어려운 사람에게 좋은 방법이다. 난생처음 구강 체온계를 구매해 침대 탁자에 두고 매일 아침 측정을 시작했다. 구강 체온계가 기초체온을 재는데 정확하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일정한 시간에 재는 것이 중요하고, 침대에서 일어나기 전 누워 있는 상태로 측정해야 한다. 측정한 체온은 앱에 기록하면 나중에 그래프로 볼 수 있다. 요즘은 생리 주기를 기록할 수 있는 앱이 많으니 쓰기 편리한 것으로 사용하면 좋다. (참고로 나의 경우, ‘핑크 다이어리’라는 앱을 사용하고 있다. 대한 산부인과의사회 공식 앱이다.) 앱 상의 내 상태를 ‘임신 준비 중’으로 변경하면 기초체온 입력이 가능하다.
기록은 두 달 정도 했다. 일정 시기가 되면 체온이 상승하고 떨어지는 양상이 신기했다. 병원 검진을 자주 못 가는 경우, 기초 체온 측정으로 배란 주기를 가늠할 수 있으니 좋은 방법이다. 눈도 제대로 못 뜬 아침에 비비적 거리며 체온을 재는 게 쉽지 않지만 몇 번 하니 제법 습관이 되었다. 기초체온 외에도 생리 주기를 꾸준히 기록하는 것을 권해본다. 내 몸을 위해서도, 임신 준비를 위해서도 생리 주기는 가장 중요한 신호이자 데이터이기 때문이다.
[참고 1. 기초체온 그래프 보는 법]
1. 36.7도를 기준으로 배란과 동시에 체온이 상승해서 기준선을 넘어간다. 배란 이후 상승한 체온은 약 2주일 동안 지속되다 생리가 시작되면 다시 저온기로 내려가고 이후 그보다 더 낮은 저온기가 된다.
2. 기초체온 곡선의 상승점은 배란 시기이고, 하강점은 생리 시작일과 일치한다.
3. 배란이 되고 2주간 고온기가 지속되다가 수정이 되면 고온이 유지되고, 생리가 시작되면 체온이 내려가서 저온기가 된다.
4. 고온기는 대개 14일 정도이지만, 저온기는 생리주기에 따라 약간 차이가 난다.
5. 저온기가 되어도 생리를 시작하지 않으면 호르몬 균형이 무너졌다고 본다. 자궁 이상일 수 있으므로 병원 진료를 받는다.
6. 고온기와 저온기의 구분이 분명하지 않으면 무배란일 수 있으니 검진을 받아본다.
임신은 여성의 몸에서 분비되는 다양한 호르몬들과 관련이 있다. 난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대표적인 수치로는 *AMH와 *FSH가 있다. 혈액검사로 이 두 가지 호르몬을 측정해서 AMH가 1 이하로 감소하거나, FSH가 10~12 이상으로 증가해 있다면 난소 기능 저하를 의심해야 한다고 한다. AMH는 값이 감소할수록, FSH는 값이 증가할수록 난소 기능이 떨어져 있음을 의미한다. 폐경이 된다면, AMH 값은 0에 근접하게 되고, FSH 값은 30~40 이상으로 증가하게 된다.
나의 경우, 처음 측정한 AMH 수치는 0.01 미만, FSH 수치는 82.16이었다. 거의 폐경에 가까운 수치라고 할 수 있다. AMH 수치는 여전히 동일한 수치이지만 FSH는 많이 개선되었다. 병원에서 꾸준히 호르몬제를 복용한 이후로다. 주로 2가지를 복용하는데 하나는 여성호르몬을 위한 약, 나머지 하나는 주기적인 생리를 유도하는 약이다.
AMH 수치는 난임 카페에서도 많이들 이야기할 정도로 난임을 판단하는 가장 첫 번째 척도가 되는 데이터이다. 너무 낮은 AMH 수치로 걱정되는 마음에 다음 건강검진 때 한 번 더 검사했으나 수치는 동일했다. 사람에 따라 수치가 개선되는 경우도 있다고는 하지만 나처럼 0에 가까운 경우에는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는 이미 AMH 수치가 낮고 임신이 어렵다는 걸 인지한 상태에서 임신을 준비하는 겁니다. 그 와중에도 건강한 난소 한 개만 나오면 되는 거니 AMH 수치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게 좋아요.”라고 하셨다.
초음파 검진 시에는 2가지를 반드시 확인하는데, 바로 *난포의 개수와 자궁 내막의 두께이다. 처음에 초음파를 통해 *난소와 난포를 관찰하는데, 문득 ‘난소와 난포의 역할이 뭐였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소는 난자가 생성되는 곳이었던 것 같긴 한데...... 난포...?’ 보통 임신 수정을 위해서는 난자와 정자가 만나는 거니, 단순히 난자만 건강하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난임 카페에서도 미리 본 적이 있듯이 ‘난포가 몇 개 보인다거나 난포가 안 보인다 혹은 공난포다.’라는 이야기가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임신을 하려면 난포의 개수가 중요하다. 쉽게 설명하자면 난포는 난자를 싸고 있는 주머니 같은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난포가 보여야 난자가 있음을 의미한다. 난자는 초음파로는 관찰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난포로 예측한다. 때로는 호르몬 수치로도 확인한다. 임신 관련 호르몬들의 기준 수치가 있기 때문에 초음파와 피검사로 예측을 해보는 것이다. 난포 개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난자가 될 개수가 많다는 걸 의미하므로 중요하게 보는 것이다.
항상 초음파를 볼 때 아쉬운 점은 ‘난포 안에 난자가 있는지 여부까지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확실하고 좋을까......’하는 점이었다. 그렇지만 초음파로는 난포밖에 관찰이 안 되고 이게 난포인지도 확연하게 분간이 어렵다고 한다. (한 번은 난포인 줄 알고 난자 채취 시술을 시도했으나, *점액성 낭종이었다.) 그래서 호르몬 주사를 써서 난포가 커지는지 성숙 여부를 관찰해 유추한다. 임신할 준비가 되면 난포가 완벽한 원형으로 커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음파 검진 시 꼭 확인하는 두 번째 수치는 자궁 내막의 두께다. 임신이 되기까지 맞아떨어져야 하는 조건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될수록 생명의 탄생은 내가 상상한 것 이상의 신비로운 일임을 깨닫는다. 이 조건들을 모두 따져보면 얼마나 대단한 확률일까? 한 달에 한 번, 그리고 난자와 정자가 머무는 시간, 여기에 이 시기 적당한 자궁 내막의 두께까지. 심지어 자궁 내막의 두께는 너무 얇거나 두꺼워도 안 된단다.
“너란 녀석... 참! 어렵구나!”
[참고 2. 배란기 자궁내막 두께와 임신 성공률]
[참고 3. 시기별 자궁내막 두께의 변화]
자궁내막은 생리주기에 따라 두께가 두꺼워졌다 얇아지기를 매달 반복한다.
난임 병원에 다니기 시작한 지 6개월이 넘어갈 무렵, 의사 선생님의 검진을 듣는 것 외에 스스로 내 몸 상태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졌다. 내가 나를 정확히 파악하면 건강관리를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치 다이어트를 할 때 매일 체중계로 나의 몸무게 변화를 관찰하듯이 말이다. 나는 접수처에 결과 기록표를 서류로 요청했다.(단, 출력 비용이 있다.) 그리고 결과 수치를 내가 보기 쉽게 표로 정리해 보았다. 내 몸의 수치가 좋아지도록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나빠지지 않는지도 확인하고 싶었다.
호르몬 수치 별 정상 범위를 참고해서 나의 건강 데이터를 관리해보자. 서류만 보면 대부분 영문으로 쓰여 있고 모르는 암호에 머리가 복잡해진다. 하지만 아래의 기본적인 호르몬 수치만 정리해놓고 보면 나도 쉽게 내 몸을 분석할 수 있다. 지피지기 백전백승! 식상한 말일 수 있지만 지금 내 위치를 알아야 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도 쉽게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오늘도 숙제를 하는 학생처럼 병원 검진 수업을 다녀와 엄마 되기 공부를 시작해 본다.
[참고 4. 나의 실제 검진 기록표]
*AMH(항뮬러호르몬) : 정상수치 3.0~5.0ng/mL / 폐경에 가까운 수치 0.5~1ng/mL
*E2(에스트라디올):정상수치 30~50pg/mL / 폐경에 가까운 수치 5pg/mL 이하
*FSH(난포자극 호르몬) : 정상수치 10mlU/mL 이하 / 폐경에 가까운 수치 40mlU/mL 이상
*LH(황체형성 호르몬) : 정상수치 10mlU/mL 이하
*자궁 내막 두께 : 임신 가능 수치 8-10mm
[참고 5. 나의 실제 검진 기록표(양식)]
*AMH : 항뮬러관호르몬. 임신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니고, 기능을 파악하는 목적으로 측정한다. AMH 수치가 높다는 것은 난소에서 배란이 되는 난포가 아주 많다는 것을 뜻한다. 20대 여성의 AMH 수치는 대략 4.0~5.0ng/mL, 30대 전후 여성이라면 3.0ng/mL, 0.5~1ng/mL의 경우는 폐경 이행기로 판단되고, 0.5ng/mL 이하라면 폐경기를 의미한다. AMH 수치는 폐경기에 다다를수록 0에 가까워진다.
*FSH : 난포자극 호르몬. 여성의 뇌하수체에서 분비된 호르몬은 난소에 영향을 끼쳐 여포(난포)를 성숙시킨다. 또한 여포가 자극되면 에스트로겐이 분비되어 여포 자극 호르몬의 분비량을 줄이게 된다. 이러한 피드백 과정을 통해 황체형성 호르몬, 에스트로겐과 함께 생식 주기를 조절한다.
*난소: 여성 골반 안 양쪽 옆 벽에 위치한 납작한 타원형 기관. 난자로 성숙할 많은 난모세포를 포함하고 있고, 여성의 특징을 나타내는 호르몬을 분비하는 곳
*난포: 난소의 *여포. 난소에는 난자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세포성의 막으로 된 여포가 많은데 이것을 난포라고 한다. *여포 : 주머니 모양의 세포 집합체
*점액성 낭종: 난소에 발생하는 낭성 종양으로, 내부가 수액 성분으로 차 있는 물혹을 의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