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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itor 로이린 Oct 29. 2022

난임을 받아들이는 과정

처음엔 난임이라는 단어가 너무 창피했다. 왠지 모르겠지만 숨기고 싶었다. 지금 굳이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아이를 못 가진다는 것이 그리 당당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아왔던 여자가 아이를 못 가지는 상황에서 벌이지는 일들이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스며들어서 일까? 다른 병은 그 사람의 건강을 걱정하는 거라면... 난임은 건강에 대한 걱정보다는 그 외의 다른 걱정이 앞선다. 난임 병원을 다니고 있다고 하면 관련 질문들이 뒤따라오기 때문이다. 시댁 어르신은 괜찮은지, 남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등... 주변의 상황들에 대한 걱정이 함께 온다. 생각해보면 나도 그런 편견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난임에 맞부딪혀보니 그럴 일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건 내 몸과 마음이었다. 난임이라는 상황을 피하기보다는 당당하게 나의 건강에 관심 가져야 한다. 


나의 건강 상태를 주변에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고민도 했었다. 구구절절 나의 사연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또 한편으로는 창피한 마음도 들어서였다. 나의 건강 상태를 알리기 전과 후를 비교하자면 알리는 것이 좋은 점이 더 많다. 가장 큰 점은 내가 몰랐던 도움도 받을 수 있고, 작은 응원과 관심이 힘이 된다는 점이다. 인터넷 검색만으로는 진짜 정보를 얻기 어렵다. 난임을 겪고 있는 주변 사람이 직접 경험한 정보는 좋은 팁이다. 영양제 정보, 병원 정보 등 나 혼자 찾다 보면 시야가 좁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정보와 도움을 받으면 많은 정보를 쉽게 접하며 비교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주변 분이 알려주신 영양제와 병원정보를 기초 삼아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되었다. 


 게다가 자꾸 숨기려고 했던 마음 탓에 답답하고 나도 모르게 쌓이는 스트레스도 해소가 되면서, 오히려 위로와 응원을 받으며 긍정적인 마음이 생긴다. 생각보다 나를 위해주고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많다는 걸. 그 마음의 온기를 나눔 받으며 내 몸도 따뜻하게 건강해지고 있는 기분이다.


옛말에 “돈은 숨기고 병은 소문내라.”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한번 이야기를 하고 나니 이제는 감기를 앓았듯 주변 사람들에게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쑥스럽거나 부끄러울 일이 아니고 주변에 누구 한 명쯤은 겪고 있을 일. 그리고 아이를 가지지 못할까 봐 하는 고민은 결혼한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내가 처음 난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건강검진을 통해 우연히 하게 된 난소 나이 검사 덕분이었다. 어느 산부인과 원장님이 그러셨다. ‘의학기술이 발달해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었지만, 그중 난소의 나이는 예전과 동일하다.’고 한다. 나는 33살에 결혼을 하고 여느 부부처럼 맞벌이를 하며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있었다. 그 사이 진급도 하고 내 집 마련을 하고 나니, 이제 아이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건강 검진을 받으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난소 기능 검사를 했다. 너무나도 생소했던 AMH 난소 기능 수치 검사를 하고, 처음으로 내 난소 나이를 눈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그동안 겉으로 보이는 얼굴 나이에만 신경 썼지 내 난소 나이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검사 결과지 상의 내 AMH 수치는 0.01로, 난소 나이는 40대 후반이었다. AMH 수치는 측정할 때마다 바뀔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안심하기에는 너무 낮은 수치였다. 거의 0에 가까운 수치였기 때문이다. 사실 너무 두렵고 충격적인 수치였지만 쉽게 내색할 수 없었다. 현실을 슬퍼만 하기에는 나는 아직 시도해본 게 없기 때문이다. 전문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을 찾아가면 희망적인 말을 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이때부터가 난임을 극복하는 길의 시작이었다. 건강검진 결과를 상담받는 동안 적막한 공기가 우리의 긴장감을 더했다. 건강검진 상담 의사 선생님은 난임 전문 병원에 가볼 것을 추천해주셨고, 해당 서류를 써주시겠다고 했다. 내 뒤에 서있던 신랑의 표정을 볼 순 없었지만 당황한 기운이 내게 그대로 느껴졌다. 하지만 상담이 끝난 후 신랑은 오히려 나를 다독여주었다. 난임 판정 후 모든 과정은 부부가 함께 겪어야 할 일이다. 물론 난임의 몸 상태인 나를 챙기는 게 우선이긴 하지만 당연히 남편의 미래와도 관련된 일이다. 그럼에도 내색하지 않고 나를 먼저 챙기는 남편의 모습에 더 마음이 아팠다. 


우리 부부는 자연스레 난임 부부가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주변에 어떻게, 언제 말씀드려야 할지를 고민하게 됐다. 비록 걱정은 하시겠지만 우리의 상황을 제일 먼저 알린 곳은 양가 부모님이었다. “내가 직접 말씀을 드리는 게 좋겠지...?”라며 걱정하는 나를 대신해 신랑은 우리의 상황을 시부모님께 말씀드렸다. 내가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시댁 부모님은 되려 나를 걱정해주셨다. 


나는 친한 친구에게도 내 소식을 전했다. 말하고 나니 조금은 속이 후련했다. 평소 나와 개인적인 고민을 많이 나누는 친한 회사 언니에게도 나의 상황을 전했다. 회사에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은 회사 업무나 회사 분위기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다만 나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이야기를 하는 게 도움이 될 때가 온다면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 아무래도 병원 검진이 잦다 보니 한 달에 기본 두 번은 연차 또는 반차를 사용하게 된다. 


위에서 안 좋게 보실까 봐 걱정이 되던 찰나, 하루는 상무님께서 “혹시 백신 후유증 때문에 요즘 몸이 안 좋니?”라고 물으셨다. ‘아, 걱정하고 계셨구나.’ 나는 지금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 싶어서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아 제가 사실은...... 시험관 아기를 준비 중이었어요. 그래서 그랬습니다..... 백신 후유증은 아니고요......” 상무님은 살짝 당황하신 것 같았지만 회사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은 돕겠다며 마음을 편하게 해 주셨다. 말씀이라도 그렇게 이야기해주셔서 힘이 되었다. 회사에서의 역할을 단단히 해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되었고, 아이 준비도 커리어도 둘 다 잘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나를 응원해주는 주변의 지인이 했던 말처럼 “둘 중에 하나만 이라는 생각은 아직 하지 말고요~ 일도 아이도 둘 다 성공할 수 도 있잖아요.” 아직은 나 스스로 둘 다 해볼 수 있겠다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 그런지 이로 인한 걱정과 고민은 모두 내려놓은 상태이다. 


가끔 나도 모르게 스멀스멀 여러 걱정이 떠오르더라도 ‘이 시간이 그리 힘들지만은 않아.’라고 내 상태 그대로를 인정해주고 부드럽게 도닥여주자. 생각해보면 결혼 적령기를 앞두고, 조금은 지나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을 때, 이런 비슷한 고민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결혼을 못할 수도 있겠다. 그러면 나는 결혼을 하지 않고도 혼자서 잘 살 수 있을까?”하는 고민들...... 나는 결혼에 대한 로망도, 결혼 적령기에 꼭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나의 커리어를 멋지게 만들어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우선이었다. 그랬던 나여도 막상 사회가 만들어 놓은 적령기에 접어드니 나도 모르게 그런 걱정들이 들 수밖에 없더라... 나는 나의 기준보다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때로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고민들이 내 안에서 소용돌이치며 그 안에 나를 가두기도 한다. 

 

솔로일 때 즐겨~ 너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결혼하면 못하는 게 많이 생긴다?” 

결혼 전에도 남들의 기준으로 고민에 빠져있을 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은 아이가 너무 예쁘지만, 너는 아이 갖지 마~ 너무 힘들다. 내 삶이 없어.”

라며 먼저 부모가 된 친구들이 나에게 말한다. 


이런 시기를 어떻게 극복했었더라? 문득 고개를 들어 떠올려본다. 여자라면 한 번쯤 고민해보았을 사회가 만들어놓은 적령기 안에서 고민했던 때가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듯이 지금의 나도 잘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왕 기다리는 거, 인내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 처방받은 약을 먹는 시기에는 약을 먹으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주사를 맞고 중요한 타이밍을 기다리는 시기에는 나에게 휴식시간을 준다고 생각하고 충분하게 쉬어주자. 마치 호캉스를 왔다 생각하고.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나의 마음에 달렸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의 나도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을 최대한 즐기는 것이 나를 위한 최선의 방법인 것에는 의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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