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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itor 로이린 Oct 30. 2022

엄마가 되는 길의 조금은 쉬운 방법

임신이 어려운 몇 가지 이유를 내 나름 생각해보자면...... 물론 병원에서는 원인 불명이라고 했지만 말이다. 호르몬 이상이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는 갑상선 저하증. 그리고 두 번째는 생리 주기가 매우 불규칙한 것이다. 


갑상선 저하증은 평소보다 급격히 피곤하다고 느껴질 때 피검사를 해보면 정상 범위에 벗어나 있을 때가 많았다. 갑상선 저하증이 때때로 오기 때문에 이제는 갑상선 수치로 인한 피로감인지 내가 바쁘게 보내서 오는 힘듦인지 분간이 잘 안 된다. 그 정도로 갑상선 저하증 약을 꾸준히 먹고 있다. 


중학생 때는 생리를 거의 한 달 내내 한 적이 있다. 한의원에서 한약을 지어먹고 그다음부터는 다시 정상적인 생리를 했다. 이십 대 후반 정도에는 생리를 두, 세 달 거른 적이 있었다. 그런 적은 처음이었다. 그때도 한방 병원을 찾았다. 현재는 갑상선 호르몬제를 계속 먹고 있는 중이고, 정상적인 생리 주기를 위해 지금 다니는 산부인과 병원에서 처방해주는 약을 먹고 있다. 


병원에서 원인불명이라고 하는 이유는 자궁에 혹이 없고, 나팔관이 막혀있지 않고 다른 특별한 지병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의학은 이리 발달했는데 원인을 모른다니...... 그래서 단순히 호르몬제를 먹는 방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조금은 답답했다. 생리주기가 왜 불규칙한지, 왜 난포가 보이지 않는지 그 원인을 명확하게 알고 싶었다. 원인을 알면 딱 그것만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무언가 뾰족한 방법이 있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의 내적 투정도 자주 했다.


여성의 주기는 보통 한 달을 사이클로 반복이 된다. 하지만 나는 생리를 한 달에 두 번 하는 경우도 있고 한 달을 거르는 경우도 있고 몸의 컨디션에 따라 불규칙하게 달라진다. 이렇게도 들쑥날쑥한 주기 때문에 이제는 생리가 시작하지 않을 때는 불안하다. 조기 폐경의 신호가 올까 봐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마음속 기도를 간절하게 한 적도 있다. 그러다 생리가 시작한 것을 확인한 날은 무교인 나도 모르게 ‘하느님, 감사합니다.’를 외친 적도 여러 번이다. 이런 마음이다 보니 나의 신호를 남편에게 알리는 메시지를 보내면 우리는 이모티콘 춤파티를 연다. 함께 안도와 감사한 마음을 나누며 우리의 한 달은 이렇게 시작된다. 



나는 힘든 상황이 오면 애써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려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힘들어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는 상황이 많았다. 몸의 신호를 무시하기도 했다. 날씨 탓인지 건강 탓인지 밤 10시가 되기도 전에 잠이 쏟아져, 나도 모르게 잠들어버리는 날이 늘어나면서 휴식시간이 필요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난임 전문 병원을 다니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한방병원에서 스트레스 지수를 측정하는 검진을 하게 되었다. 아침인 시간을 감안했을 때 보통 사람은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비율이 60:40인 반면 나의 경우는 반대로 나왔다고 하셨다. 지금의 내 상태를 여실히 보여주는 수치였다. 


‘스트레스가 먼저인지 이런 상황으로 인해 생긴 스트레스 인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울한 마음이 들었다. 신랑은 나의 마음을 읽었는지...... “이런 상황에서 수치가 좋게 나올 수는 없겠네요.”라는 말을 덧붙였다. 


의사 선생님은 의외로 소소한 취미생활을 해볼 것을 추천해주셨다. 

“몸의 건강을 위해 스트레스를 줄이려면 혼자 꼼지락꼼지락 거릴 수 있는 취미 시간을 가져보세요.”

그동안은 효율적인 일처리에만 시간을 내주었다면 이제는 내가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는 일을 하나둘씩 해보기 시작했다.


평소 꾸미는 걸 좋아하는 나는 신년을 맞아 일명 다꾸, 다이어리 꾸미기를 시작했다. 혼자 끄적거리고 그림을 그리고 스티커를 붙이면서 무언가 하나하나 만들어나가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기분이 좋았다.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꼼지락 거림의 가장 쉬운 취미였다. 


두 번째로 좋아하는 나를 위한 시간은 따뜻한 물에 내가 좋아하는 향의 배쓰밤을 풀고 하는 목욕이다. 물속에 있는 걸 좋아하고 따뜻한 기운이 몸의 긴장감을 풀어주기 때문이다. 여기에 화장실의 환한 형광등은 끄고, 대신 은은한 향초를 켜고 분위기 좋은 음악도 함께 하면 금상첨화다. 몸의 열기를 식힐 수 있는 함께 마실 수 있는 탄산수도 미리 준비해 놓는다. 이렇게 하면 내 마음속의 파도가 잠잠해지고 다시 편안한 나로 돌아온다. 뻣뻣했던 어깨 주변의 긴장감도 풀어지기 때문에 온 몸이 가벼워진 기분도 든다.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세 번째 방법은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책으로 접하며 마음의 위로를 받는 것이다. 연애를 할 때는 남자 친구와 다툰 이야기, 그리고 어떻게 화해했다는 이야기 등 친구와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기에 서로 공감하는 대화가 가능하다. 하지만 임신을 준비하는 것은 친구나 가까운 지인에게 고민을 상담하고 함께 해결 방법을 찾기가 어려운 주제이다. 특히 나처럼 호르몬 수치가 좋지 못한 상황에서는 수다만으로는 쉽게 해소될 수 있는 가벼운 이야깃거리가 아니었다. 


그럴 때 나는 책을 찾았다. 책을 쓴 저자 역시도 물론 나와 동일한 상황은 아니지만 난임을 겪어나가는 과정, 병원을 찾아다니는 과정, 약을 먹고 주사를 맞는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경험, 마음고생을 어떻게 하면 쉽게 극복해나갈 수 있는지, 직장생활은 병행할 수 있는 건지 등 공감이 되는 주제가 많다. 때로는 이런 책을 읽는 것 자체가 힘겨울 때도 있지만 필요한 때가 있다. 책 내용을 읽지 않더라도 목차를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목차만 봐도 ‘아 나랑 비슷한 고민을 이분도 하셨나 보다......’ 하면서 말이다. 그러다 마음의 여유가 좀 더 생길 때는 책의 내용도 읽어 보는 것이다. 난임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게 어떤 때는 스트레스라서 다른 주제로 관심을 돌리고 싶은데, 책마저 난임 관련 책을 본다는 게 사실 썩 내키지는 않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원할 때, 위로받고 싶다면 책을 통해 고민 상담을 해보면 어떨까 한다. 


마지막으로 운동을 일상에서 쉽게 하는 것이다. 결혼을 한 후로 운동량이 적어지니 살이 찌기 시작했는데 특히 복부, 허벅지 쪽에 살이 많아졌다. 그 이후로 전엔 없던 부종도 생겼다. 어떤 날은 다리가 몹시 피곤해서 잠을 잘 못 잘 때도 있었다. 


한방병원에서 침을 맞다가 의사 선생님에게 물었다. 

“저 순환이 잘 안 돼서 그럴까요? 부종이 심해서 잠도 못 잘 때가 있어서요......” 

나는 의외의 답변을 들었다. 

“복부 쪽 코어 근육이 부족해서 그래요. 그래서 다리를 주무른다고 해결되지 않아요. 양치하는 시간만이라도 다리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운동을 한번 해보세요.” 


한방병원을 통해 복부 쪽 코어 근육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내가 요즘 들어 더 무기력하고 피곤하고 다리도 아프고 했던 모든 것들이 코어 근육을 잃어버린 탓이었구나. ’ 모든 게 명확해진 기분이었다. 


이렇게 내 몸에 대해서 또 배웠다. 그 뒤로 일상 속 운동이 시작되었다. 양치를 할 때, TV를 볼 때 다리를 허리 높이까지 올리는 제자리걸음을 시작했다. 퇴근 후 운동 시간을 따로 내기가 쉽지 않은데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면서 제자리걸음을 하는 건 안성맞춤이었다. 5분 동안 제자리걸음만 해도 땀이 살짝 나면서 몸의 순환이 되는 게 느껴졌다.


엄마가 되기 위한 과정을 겪으면서 느낀 건 내 삶의 패턴을 크게 바꾸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조금의 변화가 나를 나아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잠자기 전 30분의 끄적거림이, 한 달에 한번 나를 위한 따뜻한 욕조에서의 힐링 시간이,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는 저자와의 대화가,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는 동안의 잠깐의 움직임이 나를 변화시킬 수 있다. 크게 바꿀 필요가 없다. 일상에서의 작은 변화가 나를 행복하게 한다. 소소한 행복이 차곡차곡 쌓여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이것은 내가 그동안 경험해본 엄마가 되는 길의 조금은 쉬운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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