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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itor 로이린 Oct 30. 2022

난임 부부가 겪게 되는 에피소드

에피소드 1. 주변의 임신 소식을 접한다는 것 

 

작년 가을 신랑의 남동생 내외가 먼저 아이를 출산하게 되었다. 동생 내외보다 우리가 연애를 6년이나 늦게 시작했음에도 시부모님은 장남인 우리를 먼저 결혼시키셨다. 형제의 순서를 워낙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댁 부모님이다 보니, 자연스레 아이도 우리가 먼저 낳기를 원하셨던 것 같다.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기에 부담이 되었던 나는 어느 식사 자리에서 넌지시...... ‘동생네 가족이 먼저 아이를 가져도 되지 않을까요?’라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혹시나 우리의 소식을 기다리고 계실까 싶어 한 이야기였다. 


결혼 한 지 3년이 지나고 난임 병원을 다니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가족 모임이 끝나갈 때쯤 도련님은 쭈뼛쭈뼛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며 입을 열었다. 


“형수님...... 저희 임신했어요.”


그날의 분위기는 마땅히 축하받을 자리임에도 모두들 조심스러움이 가득했다. 언젠가 이런 상황이 당연히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동서의 임신 소식을 들으니 처음 겪어보는 당혹감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당연히 축하해주고 그 전에도 상상해본 일인데 막상 현실로 그 소식을 들으니 뭐랄까....... 괜찮은 척 온 마음을 다해 축하하려 했지만 누가 봐도 삐그덕거리는 모습에 어색함을 떨치기 힘들었다.  


“아...... 아! 너무 축하해요!!! 이제 도련님 아빠 되는 거예요? 너무 잘되었어요...”


그 기쁜 소식을 전하는 도련님은 미안해하는 눈치였고, 집에 가려고 외투를 걸치는 나에게 시어머니는 눈시울을 붉히며 “너도 곧 좋은 소식이 생길 거야.”라며 내 등을 어루만지셨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러나 왠지 모를 자존심 때문인지 나는 극도로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싶었다. 집에 오는 차 안에서 나는 돌덩이에 맞은 것처럼 온몸이, 그리고 사고가 정지해버렸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여운...... 지금도 내 기분을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그 상태는 2주 이상 나를 그대로 흘려보내게 했다. 서운한 기분을 남편에게 여실히 드러내기도 어려웠다.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냐며 혹시 돌아올 핀잔이 겁이 났기 때문이다. 친정에 가서도 말은 못 했지만 울적한 기분을 숨길 수는 없었다. 소파에만 누워 멍하니 있었다. 부모님도 항상 밝고 춤추는 나를 보다가 이런 모습을 마주한 게 처음이라 그런지 걱정하는 여색이 다분했다. 진짜 영문은 모른 채 몸이 안 좋은 줄로만 아셨다. 이런 내 모습에 마음 아파할 친정 부모님 생각에 도련님 내외가 출산을 하기 한 달 전까지 비밀에 부쳤다......


“누군가의 임신 소식을 들어도 나는 기꺼이 축복해 줄 거야.”라고 호언장담했던 사람도 막상 마주하면 힘들 수 있고,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나쁜 시기심에서 비롯된 감정이 아니라 당혹감 같은 그 무언가라고...... 특히나 주변 사람을 질투하는 것은 좋지 않은 행동이라고 유독 생각을 해서 그랬던지, 지금 내 기분을 더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내 마음이 어떤 기분이 들든지 간에 자연스러운 일이고 충분히 슬퍼할 시간도 아파할 시간도 겪어내면 훌훌 털어낼 수 있다.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보자.  



에피소드 2. 남편도 말 못 할 속상함이 있겠지......


연휴에 시댁 부모님 댁에 가자며 시간을 정하려고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남편은 어머님께 전화를 드려보라고 하더니,


문득 “아니다. 우린 이제 주인공도 아닌데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이제 주인공 아니니까 동생네 가족이 정한 시간에 맞춰서 가면 된다고......”


나는 그 이야기가 내 탓을 하는 걸로 느껴져 자세한 이야기를 물었다. 남편은 말 못 할 서운함에 잘못 없는 부모님께 속상함이 가득한 상태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부모님께서 딱히 아들을 서운하게 할 만한 행동을 하신 것도 아니었다. 나에게 말을 못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상황 자체는 없었던 것 같았다. 


아무리 남편의 투정에서 비롯된 말이라도 이제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니 여간 속상한 게 아니었다. 그런 이야기는 아무도 한 적이 없지만 신랑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마치 누군가에게 직접 들은 것처럼 생생했다. 


철렁하는 기분을 가라앉히고 며칠 생각해보니, ‘신랑도 표현은 못할 뿐 서운함이 있었겠구나.’ 싶었다. 평소 며느리들을 잘 챙겨주셔서 아들들 옷은 잘 안 사주셔도 계절이 바뀔 때면 함께 쇼핑해주시는 다정한 시부모님이셨다. 그런데 최근에는 첫 손주 맞이에 육아박람회며 백화점 쇼핑까지 태어날 아이에게 집중하는 부모님을 보는 게 남편은 내심 속상했었나 보다. 이런 부분은 나도 괜찮았는데, 남편은 그게 서운했던 건지... 아마도 여러 가지 말 못 할 속상함이 쌓여서 그런 말이 나왔겠다 싶었다. 


내가 몸이 아프면 가족들도 함께 마음 아파하느라 힘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힘든 사람은 환자 본인이라고 생각했다. 몸이 아픈 것도, 주사를 맞는 것도, 몸 관리를 해야 하는 것도 나이기 때문에 남편은 내 기분과 몸 상태에 무조건 맞춰줘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남편은 나를 위로해주고 내가 혹여나 속상할까 봐 아쉬운 마음을 쉬이 드러낼 수 없었던 거다. 그렇게 말한 남편이 야속하기도 했지만 그동안 남편의 마음을 챙기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임의 부부가 아이를 준비한다는 건 부부가 함께 극복해 나가야 하는 과정인데 말이다.


사실 처음 난임 소식을 접했을 때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남편이 속상할 거라 생각은 했지만 그 마음을 들여다볼 만큼 내 마음속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내가 너무 미안한 존재가 되는 것 같아서 입 밖으로 차마 꺼내기가 어려웠다. 아이를 준비해 나가는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내가 상황을 인지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만큼 마음이 편안해지는 순간도 온다. 내가 조금의 여유가 생기는 때, 때로는 남편도 나처럼 속상하고 힘들 거라는 걸... 남편도 아이를 준비하는 예비아빠라는 사실을 생각하며 마음을 알아봐 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로 보듬어 주는 시간을 가져보자. 



에피소드 3. 분위기도 우리 마음대로 잡을 수 없다니

 

우리의 첫 데이트는 이태리 레스토랑에서였다. 일을 하면서 만난 사이라 서로의 정확한 나이도 서로의 키(?)도 모른 채 첫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막상 만나고 나니 신랑은 나보다 연하였고, 키도 조금 작았다. 그동안 업무 미팅을 주로 앉아서 하다 보니 서로의 예상치 못한 스펙에 당황했지만 이내 금방 친해져 갔다. 


첫 데이트 때 함께 먹었던 음식이여서 그런지 우리는 특별한 날이면 결혼 후에도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다. 그날만큼은 우리만의 시간을 보내는 날이기도 하다. 


벌써 연말이다. 오랜만에 데이트 기분도 낼 겸 집에서 레스토랑 분위기를 만들어 본다. 트러플 오일 파스타에 레드와인까지 ‘쭈룩’ 따르면 이만한 분위기도 없다. 조명도 예쁘게 켜고, 기분 좋게 크리스마스 캐럴도 틀어본다.  


모든 세팅을 마치고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무렵......


“띵!” 메시지 알림음이 들렸다. 


눈치 없는 ‘핑크 다이어리’(여성의 생리주기, 가임기를 알려주는 어플)는 오늘부터 가임기가 시작되었다며 알람 메시지를 울린다. 내일은 병원 검진이 있는 날이란다.  


“아! 그러고 보니 내일 병원 검진 가는 날이네?” 

남편은 “내일 병원 가야 하는 데 혹시 모르니 금욕해야 하지 않을까......ㅠㅠ” 

“아...... 맞네, 그렇다” 


우리는 분위기도 마음대로 잡을 수 없다는 사실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시험관 아기 시술은 난자와 정자를 채취해서 배양 접시 안에 넣고 수정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지난번 시험관 시술 전 받은 안내 사항에 ‘남편은 2~3일 전 금욕해주세요.’라고 쓰여있던 주의 사항 문구를 남편이 기억해낸 것이다. 


내일 어떤 소식을 받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항상 조심스럽다. 우리의 사랑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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