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저녁 TV 채널을 돌리는 데 화면 왼쪽의 작은 프로그램 제목에서 ‘난임’이라는 단어가 들어왔다.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 출연한 어느 연예인 부부의 부모가 되려고 하는 이야기. 눈길이 가서 채널을 고정하게 되었다. 옆에서 컴퓨터를 하던 신랑도 잠자코 TV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함께 들어준다. 두 부부가 갖고 있는 현재의 고민은 이러했다. 남편은 아내가 자가 배 주사를 맞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기가 안쓰러워 아이 갖기를 그만하자는 입장이었고, 아내는 입양을 해서라도 아이를 키우고 싶은 만큼 아이는 꼭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만 놓고 보면 남편은 아이를 갖지 않기를 원하고, 아내는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다른 입장처럼 보였다.
하지만 오은영 박사님은 “자, 두 사람이 근본적으로 원하는 속마음은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거예요. 그렇죠? 부모가 되고 싶다는 마음에 대해서만 서로 공감하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 역시 이런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내가 너무 힘들어할 때, 남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럴 거면 준비 안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우리가 서로 행복하자고 결혼한 거지, 아이를 갖기 위해 결혼한 건 아니잖아.”
그런데 참 사람 마음이라는 게 이상하다. 내 몸을 혹사시키며 임신을 준비하는 게 고달파서 한편으로는 남편이 ‘아이가 없어도 괜찮아. 네가 그리고 우리가 중요해.’라는 말이 듣고 싶다가도, 막상 그런 말을 들으면 ‘나름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그렇게 쉽게 포기할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서운한 마음이 든다.
겉으로 속마음을 표현하진 않았지만 나도 갈피를 못 잡을 만큼 내 마음은 불안한 상태이다. 그렇지만 오은영 박사님의 말처럼 우리는 여전히 부모가 되고 싶고, 우리를 닮은 사랑스러운 아이와 새로운 삶을 꾸려보고 싶은 소망이 있다.
난임 전문 병원을 다니기 시작한 지, 10개월이 다되어 갈 때쯤 여전히 좋은 소식이 없자 이대로 양약에만 의지해서는 안 되겠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결심이 든 것은 난포인 줄 착각하기를 대, 여섯 번이 지난 후였다. 결국 다른 처방이 필요하겠구나 싶어 한방 병원을 예약했다. 몸의 기초대사를 좋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기대하는 마음으로 병원 진료를 시작했다. 그러나 한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참 모질게도 이야기를 했다.
“지금 상황이 너무 안 좋네요. 원래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났는지 아니면 후천적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방 치료는 비용도 많이 들고요, 결정을 하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탕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을 확률이 높아요......”
한의사 선생님은 정해져 있는 결론을 빙빙 돌려 내 입에서 뱉어내길 바라는 눈치였다. 내 마음을 칼로 마구마구 헤쳐 놓는 기분이었다. 나는 선생님의 그 말에 절대 지지 않겠다는 의지로 이를 꽉 물고 울음을 참아냈다. 나중에 신랑은 나에게 이런 이야기까지 했다. “아니, 우리가 뭐 잘 안되면 와서 따질 것처럼 생겼나? 왜 저렇게 책임 회피를 하려고 안달이야.” 나도 사실 그런 기분이 들긴 했다. 그동안 그런 환자들이 많았나? 굳이 저렇게 까지 이야기를 할까 싶었다. 그래도 ‘우리 한번 해봅시다!’라는 응원의 한마디가 그리 어려운 걸까? 한의사 선생님의 속내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희망이 희박한 환자임에는 분명했다.
내가 이렇게 쉽게 포기할 거면 여기 오지 않았을 거다. 진작 포기할 상황은 그 전에도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도 한번... 해볼게요...!” 라며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선생님은 그제야 알겠다는 듯 뒤늦게나마 나의 편이 되어주려 노력했다. 침상에 누워 침을 맞는데 “아까는 그렇게 이야기해서 미안했어요. 내가 원래 그렇게 모진 사람이 아닌데... 그래도 한번 해보죠...!”라고 이야기하시는 거다. ‘아까 그 모질던 선생님 어디 가셨나요...? 이제는 막상 환자로 대면해야 하니 다시 친절한 의사가 되려고 하시는 걸까...’ 나쁘게 생각하면 끝도 없이 기분 나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그러지 않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럴 생각을 할 만큼의 여유가 없어... 좋게 생각하자. 좋게 생각하자...
그동안 잘 들여다보지 않았던 난임 카페를 찾았다. 제목 <저도 엄마가 될 수 있을까요?> 글쓰기를 시작했다. 나의 몸과 마음 상태, 그리고 경험했던 일들을 차곡차곡 눌러 담았다. 그 어딘가에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 나와 같은 고민을 갖고 있을 사람들 또는 나보다 먼저 앞서 경험한 사람들의 위로, 응원이라도 받아보겠다는 심정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엄마 아빠가 되는 긴 여정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함께 해나가고 있다. 때로는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한 템포 쉬었다가도 서로를 다독이며 불끈 의지를 다잡았고, 때로는 함께 울고 축 처져있다가도 우리의 새로운 다음 달을 위해 함께 준비해 나간다. 나는 지난 일 년간 난임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나에게 맞는 적당한 루틴을 찾았다. 내 옆엔 든든한 남편과 가족, 그리고 함께 잘 해내 보자는 의사 선생님이 계신다. 그 언젠가는 이 모든 것들이 좋은 결실을 위한 과정들이었다고, ‘나도 엄마가 되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