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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완 Jul 18. 2023

치유의 시작

치유의 시작

고향으로 내려온 뒤에

1년 간은 서로 적응하느라 힘들었어

오랫동안 나가 살던 자식이 다시 들어왔으니 안 맞는 게 당연한 거겠지

내 창고에 곡식만 충분했다면 진작에 뛰쳐나왔을 텐데

그럴 수가 없어서 억지로 '같이 삶'을 받아들이게 되었어


그래도 먹고 자는 걱정은 안 해도 돼서 좋았어

더 이상 곡식 걱정을 하지 않아도 돼서 좋았어

어느새 가족끼리 소소한 재미가 생기기 시작했어

지금까지와는 너무나도 달라진 가족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어


육지를 떠나고 나서 심연의 바닥을 친 뒤에

어쩔 수 없이 깊은 내면을 파헤쳤잖아

그때부터 가족들을 미워하게 됐거든

나는 더 이상 가족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로 했거든


그로부터 몇 달 뒤에 둥지 주인에게 이사 가달라고 연락이 왔고

무언가에 떠밀리 듯 어쩔 수 없이 고향에 내려오게 된 건데

이 모든 일들이 보이지 않는 힘으로 이루어진 걸까 싶었어


하루하루가 즐겁기 시작했어

곡식 걱정을 하지 않아도 돼서 좋았어

늘 비어있던 부모님 곡식 창고가 풍족해 보였어


자식이 걱정됐는지 새 곡식이 들어오면 종종 봉투에 담아서 주셨어

모든 게 다 부질없고 의미 없고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에

기적은 일어나고 있었던 거야


그렇게 나는 치유되고 있었어

나뿐만 아니라 부모님도 치유받고 있었어

우리는 서로를 치유해주고 있었어


정말 감사한 일이야

단 하루도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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