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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완 Jul 18. 2023

드라마작가

글을 쓰는 것이 좋아졌다 

고향에 내려와서 부모님과의 적응기를 겪으며 서로 맘고생을 하게 되었다. 감정이 격해지거나 우울한 기분이 들 때도 있었는데 어디 화풀이할 통로도 없고 그렇다고 감정을 풀지 않고 쌓아둘 수가 없어서 그때마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은 트위터에 비공개 계정으로 올리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글을 쓰면서 감정이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온전히 솔직한 감정을 토해내서였을까. 말로 누군가한테 이야기를 해야 풀리는 줄 알았는데 그럴 경우 전부 다 이야기할 수도 없거니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후회를 남기게 된다. 글로 써도 충분히 위로가 되는 이 기묘한 경험을 한 뒤에 글쓰기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매주 주말이면 서울에 올라갔다. 고향에 남아 있는 친구들도 거의 없고 지역사회라 건너 건너 물어보면 부모님 하고 다 아는 곳이라 눈에 띄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너무 심심했다. 성당도 여전히 서울로 다녔는데 코로나 여파로 활동하는 단체에도 인원이 줄어들어 쉽게 그만둘 수가 없었다. 부모님 집에서 다녀야 했기에 매입한 아파트에서 서울에 가는 것보다 30분은 더 걸렸지만 서울 가는 발걸음은 늘 가벼웠다. 처음에는 아빠나 엄마가 집에서 터미널까지 데려다주면 고속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다녔는데 나중에는 아빠 차를 빌려서 타고 다녔다. 서로 편하고 좋았다. 서울에 올라갈 때는 어차피 교통량이 많아 고속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이동하는 시간하고 비교했을 때 별반 차이가 없는데 밤에 서울에서 내려올 때는 고속도로가 뚫려 있어 시간이 훨씬 단축된다. 


우연히 MBC아카데미에서 드라마작가 수업을 개설한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순정만화나 추리소설을 좋아했고 드라마를 보면 예상되는 다음 전개를 잘 맞추는 편이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들을 차용한 다른 스토리를 구상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했었다. 어릴 때 공상 한번 안 해본 사람이 있겠느냐마는, 특히 생각이 많고 관찰력이 좋고 인간의 본성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왠지 드라마작가로 대성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꿈에 부풀어오기 시작했다. 마침 글쓰기에 흥미도 느끼고 있을 때였으니 말이다. 일단 가족과 주변에는 비밀로 하고 MBC아카데미 드라마작가 1단계 반을 신청했다. 드라마작가 수업은 글쓰기 시험을 보고 합격해야 수강할 수가 있다. 3개월 과정이고 매주 주말마다 오프라인으로 3시간씩 수업을 진행하며 수강료는 100만 원 정도이다. 처음부터 이 글을 읽은 독자라면 한번 꽂히면 무언가를 시작하는데 망설임이 없는 성격이라는 것을 파악했을 것이다. 아주 큰 장점이자 단점인데 나중에 조목조목 언급하겠다. 


MBC아카데미 드라마 작가 1단계 첫 수업 날이 되었다. 약 7~8명 정도의 수강생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강사는 드라마 공모전으로 데뷔하신 뒤 현업 작가로 활동하고 계신 분이셨다. 드라마 작가나 대본 쓰는 법에 대해서는 아는 게 하나도 없었기에 수업이 유익하고 재미있었다. 무슨 일이든 기본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기본에 충실한 수업이어서 좋았고 설명해 주시는 내용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 노트에 열심히 필기해 두었다. 각자 쓰고 싶은 드라마 소재를 가져와서 발표하고 피드백받는 시간도 있었다. 본격적으로 단막극 대본을 쓰고 첨삭을 받는 것은 2단계 수업에서 진행되지만 1단계에서도 드라마를 쓰는 데 필요한 요소에 맞게 글을 작성할 수 있는지 정도는 봐준다. 다행히도 원래 생각해 둔 소재가 있어서 그걸로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토대로 써보는 연습을 했다. 3개월 내내 정말 재미있었다. 원래 배우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머릿속으로 상상만 했던 것들이 글로 표현이 되고 언젠가는 드라마로 방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했다. 물론, 강사 작가님께서 현실적인 조언도 많이 해주셨는데 드라마 작가로 데뷔하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고 데뷔하고 나서도 방송사에 프로프램 배정되기까지도 우여곡절이 많다고 솔직히 말씀해 주셨다. 평균적으로 3년 정도는 걸리는 듯했다. 누구나 하기 나름이고 어디든 예외는 있기 마련이지만 평균 수치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3개월은 주말에 꽤 바빴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서울에 가서 오전에 드라마 작가 수업을 듣고 오후에 지인도 만나고 저녁에 성당에서 미사까지 드리고 고향 집에 오면 밤이었다. 그래도 그 주말이 삶의 유일한 낙으로 여겨졌으니 그리 열심히 다닐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드라마 작가 1단계 수업이 끝나고 2단계 수업도 고민 끝에 신청을 했는데 수강인원 저조로 폐강되었고, 결국 혼자 드라마 공모전에 도전해 보는 것을 목표로 집에서 틈틈이 글을 써보기로 했다. 그러나 매일 글을 쓴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한참 손을 놓고 있다가 다음 해인 2022년 3월 무빙픽쳐스컴퍼니 단편드라마 공모전과 5월 MBC드라마 극본공모전을 목표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둘 다 응모했는데 무빙픽쳐스컴퍼니는 원테이크 20분 단편드라마였고, MBC는 단편과 장편시리즈가 있었는데 4부작 단편시리즈에 응모했다. 전자는 글을 쓰는 데 3~4일 정도, 후자는 3주 정도 소요됐다. 개인적으로 내가 읽기에는 너무 재밌는데 심사위원의 흥미를 끌지는 못했나 보다. 그래도 드라마 4부작 대본을 완성했고 공모전에 제출까지 한 행보에 자축하며 다음 공모전을 노려보기로 했지만 지금까지 진척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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