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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완 Jul 18. 2023

아파트를 매입하다

세상 잘한 일이었다  

고향에 내려와서 제일 먼저 한 것은 아파트 매입이었다. 서울살이를 정리하면서 챙겨 온 전세금이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살 집 한 채 정도는 사두어야 고향에 내려온 일이 스스로에게 덜 부끄럽고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직장생활을 한 세월 대비 모아둔 자금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전세를 끼고 사는 건 가능했다. 당시에 이미 부동산이 많이 오른 상황이었는데 지방이라 서울 대비 아파트 한 채 가격은 10분의 1 정도였다. 


이 때도 투자를 목적으로 매입하느냐 아니면 거주용으로 매입하느냐를 두고 고민을 하다가 거주용 한 채와 투자용 한 채 구입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평대의 소형 아파트 한 채를 사서 거주하고 주공 아파트는 투자 개념으로 한 채 사자 싶어서 매입할 아파트를 결정했다. 아빠가 지인한테 딸이 이런 아파트를 사고 싶다고 하더라 말했더니 지역사회에서는 외지인들이 사는 빈민가로 알려져 있는데 왜 그 아파트를 사느냐고 한 소리 들으시고 반대하셨고 엄마는 세금 문제로 두 채 사는 것을 우려하셨다. 사실 우리 집 식구들은 부동산에 전부 까막눈이다. 투자를 해 본 적이 없으니 어떤 아파트를 매입해야 할지도 잘 몰랐다. 아빠는 주변 지인들로부터 정보를 얻어오셨고 나는 부동산 오픈 채팅방이나 카페에 들락거리며 알아봤는데 실거주용으로 한 채 매입해두고 나서 여유자금이 있으면 투자를 하라고 하는 의견이 많았다. 그리고 이왕이면 실거주용은 신축 아파트로 매입하라고 했다. 그렇게 또 알아보게 된 신축 아파트 중에 한 군데 괜찮은 곳이 있어서 가봤는데 부모님도 나도 이상하게 정이 가지 않았다. 나중에 길 뚫리면 번화가가 될 거라고는 하지만 마음이 안 가는 건 어찌할 수가 없었다. 다른 아파트 들도 여러 군데 다녀봤지만 매물도 드물었고 나오면 바로 거래되었다. 그렇게 2주일이 지나자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집 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뉴스가 계속 나왔기 때문이다. 그 당시 아빠는 9층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에 꽂혀 있었고 엄마는 성당 근처면 좋겠다고 하셨고 나는 서울에 왔다 갔다 하기 편한 위치를 원했다. 그런데 알아보는 집마다 매입하려고 하면 부모님께서 주변에 물어보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바람에 서로 아파트 문제로 예민해지고 있을 무렵이었다. 


바람도 쐴 겸 엄마하고 새로 생긴 아웃렛을 갔는데 차가 많아서 지하주차장에 못 대고 지상 주차장에 차를 대야 했다. 그것도 외부가 보이는 벽을 바라보고 주차를 했는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밖으로 약 100m 거리에 성당이 하나 보였고 그 옆에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우리 집은 전부 가톨릭 신자이고 성당을 열심히 다닌다. 엄마한테 여기에 성당이 있었냐고 물어보니 엄마도 한번 와본 적 있는데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고 하셨다. 바로 옆 아파트 이름을 확인하고 네이버 부동산에 검색해 봤더니 매물이 있었다. 부동산과 통화하고 방문했는데 28평이었고 1004호였다. 바로 옆에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성당이 있는 데다가 1004호라니 엄마는 이미 거기서 마음이 넘어가셨다.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차를 운전하지 않고 도보로 다닐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서울은 지하철과 버스가 잘 되어 있어서 차가 없어도 사는데 크게 불편함이 없지만 지방은 차가 주된 교통수단이기 때문에 없으면 앉은뱅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10층이어서 아빠도 만족하셨다. 더 높았으면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던 나로서는 힘들었을 텐데 10층까지는 딱 괜찮은 높이였고 아파트 앞에 서울에 가는 버스정류장이 있었다. IC도 바로 아웃렛 옆이었다. 부모님과 내가 원하던 모든 조건에 맞는 아파트를 찾으니 꿈만 같았다. 물론, 신축은 아니고 약 15년 된 아파트였지만 깨끗했고 조용했다. 실제로 거주할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지는 집이었다. 사실 당시에 28평은 혼자 살기에 너무 크다고 생각했다. 서울에 살 때는 계속 7~8평대 원룸에서 살다 보니 15평 아파트만 봐도 넓게 느껴졌고 혼자 살기 적당해 보여서 소형 아파트를 알아봤던 건데 지금 생각해 보면 28평 아파트를 매입하기를 정말 잘했다 싶다. 서울을 한번 떠나면 다시 인서울 하기 쉽지 않다는 이야기가 비일비재한데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지방에 살면 집 평수가 훨씬 커지는데 나이가 들수록 거주공간이 주는 안락함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집은 넓혀서는 가도 줄여서는 안 간다는 우스갯소리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서울에 똑같은 평수의 아파트에서 살려면 동네마다 다르겠지만 최소 5배는 넘는 자금이 필요하다.  


마음에 드는 아파트를 찾았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어서 바로 계약금을 지불하고 며칠 뒤 잔금을 치렀다. 아파트는 세입자가 이미 있어서 매입가에서 세입자 전세금의 차액만 지불하고 내 생애 첫 아파트를 갖게 되었다. 아파트 등의 부동산을 매입하면 법무사를 통해 등기 및 취등록을 하게 되는데 아빠가 아는 법무사께서 저렴한 비용으로 처리해 주셨다. 셀프 등기를 한다는 분들도 계시고 타지에서 부동산 취득하시는 분들은 '법무통' 앱에서 견적을 받아보고 법무사를 결정한다고 하는 케이스도 많았다. 아쉬운 점은, 실거주를 하면 생애최초 주택구입자의 경우 취득세가 감면되는데 나의 경우는 이미 세입자가 있어서 혜택을 받지는 못했다. 청약통장도 아직까지 갖고 있기는 하지만 써먹을 날이 올까 싶다. 


실거주용 아파트도 매입했겠다 기존에 알아보았던 소형 아파트도 투자용으로 살까 싶었는데 가족의 우려로 아파트 한 채로 만족하기로 했다. 사실 내가 부동산을 더 잘 알았더라면 당시에 밀어붙여서 투자용 아파트도 매입했을 것이다. 그로부터 1년 뒤에 거주용으로 산 아파트는 몇 천만 원 정도 올랐고 투자용으로 사고 싶었던 소형 아파트는 2배가 올랐다. 이래서 투자도 공부를 많이 해야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거구나 하고 다시 한번 느꼈다. 


아파트에 들어갈 때까지는 부모님 집에 있기로 했다. 계약 종료까지 1년 반 정도 남았는데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내줘야 들어갈 수 있는 지라 일해서 버는 족족 자금을 모아야 한다. 그래도 내 명의로 아파트가 있다고 생각하니 빈털터리로 고향에 내려온 듯한 자괴감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한 달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고향에 내려와 부동산 막차에 아파트를 사게 된 이 모든 과정이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들의 연속이다. 아파트 한 채 있다는 것이 이렇게 든든할 줄은 몰랐다. 평생 반자의 적 이사나 집 값 걱정 없이 몸 하나 뉘일 곳은 생겼구나 싶어서 마음이 편해졌다. 계속 서울에 살았다면 이미 오를 데로 올라 버린 부동산 때문에 내 명의의 아파트는 꿈도 못 꿨을 것이고 고물가 행진으로 허덕이며 살았을 텐데 고향에 내려왔기 때문에 집 한 채라도 얻을 수 있었구나 생각하니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더 신기했던 건, 서울에 살던 오피스텔 계약종료까지 몇 달 더 기다렸다가 고향에 내려와서 아파트를 매입했다면 지금 집 값은 매입 당시 금액보다 떨어져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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