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했던 단짝 친구가 있었다. 세심함이 별로 없던 아이였으나, 왠지 가까워졌다. 어색하게 다가가는 내 모습도 그래서 받아줬겠지.
어느날 그 아이랑 함께 집에 돌아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걔는 교실 청소를 하느라 집에 갈 수 없었다. 왜 청소를 하냐고 물어보니, 교실 바닥에 껌 껍질을 버려서 담임이 시킨다고 하였다. 자기는 쓰레기를 버린 범인이 아니라고 말했다. 근데도 묵묵히 청소를 하였다.
뭔가 화가 난 나는 그 다른 반 담임이 교실로 오자, 왜 이 아이가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는데 청소를 시키냐 물었다. 그랬더니 교사가 걔는 가만히 있는데 왜 너가 그러냐고 소리를 질렀다. 걔도 내가 이상한 짓을 하는 것처럼 쳐다봤다.뭔가 나만 이상한 놈이 된 기분..그냥 넘어 갔어야 했을까? 그때는 정의와 현실주의에서 타협할 만한 능력이 없었다.
내 중학교 담임은 나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꿈에 내가 나왔다 그랬다. 난 대체로 모범생이긴 했지만 부당하면 종례에 안들어가고 그랬다.
그 담임은 모범생으로 명문대를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울증이 있었나보다. 나는 한 분단에서 개인이 잘못했다고 그 분단이 청소하면 안된다 그랬다. 연좌제니까.
담임이 한자를 못외우면 청소시킨다고 그랬다. 그래서 민주주의 방식으로 결정 하자고 말했다.떠든 학생이 혼날 때 숙제를 한다고 혼났다. 저랑 관련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담임은 지진 피해를 입은 사람도 관련이 없으니까 도와줄 필요가 없냐고 물었다. 그 상황과 뜬금없는비유를 하길래, 그럴 의무는 없다는 뜻으로 그렇다 했다. 담임은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교실에서 쫓겨났고 난 울었다.
이제와서 되돌아보면 참 말을 안들었나 싶다가도 그 담임 카톡에 있는 세월호 리본을 보면 뭔가 씁쓸하다. 오랜 세월이 흘러 이제는 관심도 없지만 가끔씩 나는 생각에 입안에 맺히는 쓴맛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사람은 누구나 누구나 그렇게 사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