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기준에 동떨어진 나
딱딱 소리에 집중하게 되었다.
겨우 흩트려놓은 정신머리에
방해꾼이 나타난 것이다.
창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여름 내음에 취한 탓일까.
벌레가 연신 몸을 주체 못 하고
창문에 몸을 드리 박기 일쑤였다.
나는 다시 적막함 곁에 다가가
고개를 기대었다.
밤 버스는 산을 오르고
나의 잠은 깊어간다.
아무도 몰래.
야반도주처럼.
조용히 그 작당에 동참한다.
첩첩산중, 깊어가는 밤 속으로.
딱.
딱.
규칙적인 주파수로
메이데이를 외쳐도
묵묵부답.
벌레는 영문을 모른 채
창문 앞을 서성인다.
아일랜드 여행 중 Bray이라는 곳을 방문했다. 작은 항구 도시였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비바람이 몰아쳤다. 제주도에서 수많은 강풍을 겪어온 나였지만 아일랜드의 강풍도 만만치 않았다. 이 날의 목적은 주변을 돌아보고 갈 예정이었다. 그때 무슨 바람이 분 것일까? 눈 앞에 작은 산이 보였고 본능적으로 한국에서도 안 가던 산을 올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오직 내 본능에만 맡기고 무언가에 쫓기듯 허겁지겁 발걸음을 옮겼다. 오르는 과정에서 진흙으로 내 새하얀 신발은 엉망이 되었고 바람막이는 이 날씨를 견지는 것이 힘겨워 보였다. 머릿속에서는 내가 왜 이 산을 오르지라는 질문이 쇄도했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저 위에 내가 원하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오직 내 직관에만 집중했다. 수많은 나무를 지나고 지금 생각하면 위험했던 비로 젖은 돌산을 올랐다. 그 곁에는 가파른 절벽. 어쩌면 한 순간 미끄러져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곳이었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돌산을 올랐고 모종의 스릴감을 느꼈다.
그 순간 비로소 나는 여행의 목적을 진정 깨달은 것 같았다. 애초의 이 여행의 목적은 기존에 있던 기준들에서 탈피였었다. 내 목소리에만 집중하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도착하고 며칠 동안 장소만 바뀌었을 뿐 이국에 땅에서도 아직 나는 변한 게 없었었다. 산을 오르는 순간까지 나는 망설였고 그 과정에서도 나는 흔들렸다.
결국에 나는 내 직관에 맡기고 오르지 못할 것만 같았던 산을 올랐다. 그리고 한국 생활이 떠올랐다. 수많은 나를 평가하는 기준들. 사실 나는 그 기준들에 맞추고자 부단히 노력했지만 매번 실패를 거듭했다. 좋은 성적, 좋은 학벌, 좋은 스펙, 좋은 학벌 뭐하나 제대로 된 게 없었다. 나 스스로도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돼버리고 나는 속물적인 사람이 돼버렸다. 내 머릿속에 속물이 짙게 벨 수록 나는 점점 더 작아졌다. 애초에 나부터 그 기준에서 멀리 온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에 대해 궁금해질 때쯤 나는 이미 멀리 와있는 것 같고 다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아마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적어도 시도를 해보려고 했다. 나의 잠을 깨우는 벌레 소리를 묻어버리고 내면의 이야기를 듣고자 깊은 잠을 청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