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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째 퇴사

지난 2년의 시간

by ONicial Kes

'뭔가 내가 잘못 사는 건 아닐까?'


문득 드는 생각에 다시 모니터 앞에 앉았다. 지난 일을 되짚어보는 것은 참 괴로운 일이지만 늘 내가 해왔던 것처럼 글로 쓰며 정리해 보고자 한다. 설사 그 일이 너무 괴로울지라도 여전히 나는 반추하는 삶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목요일 마지막 근무를 마쳤다. 이 일을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지난 6월 갑작스러운 조직 개편이 이루어졌다. 평소 아는 게 없고 간섭만 많던 부장과 팀이 달라지게 되어 그 순간 다행이다 싶었지만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듯 그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자동차 앱 운영을 맡으면서 정말 힘들었다. 일단 이 앱의 구축이 도저히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기획서가 없었다. 문서가 아예 없던 것은 아니지만, 정책 내용이 '~~를 하기 위한 기능' 정도로만 적혀 도대체 어떻게 사용하는 기능인지는 눌러보거나 개발자에게 기능 확인 요청을 해야 했다. 그렇게 정리된 문서 없이 모든 정책은 구전동화로 이어져 내려왔다. 낙하산 차장과 일했고 나는 일을 배우기 위해서는 차장에게 하나하나 다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일이 많은데 바쁜 사람에게 일을 물어보면서 하려니 정말 난감했다.


게다가 모든 사내 프로젝트의 기획서를 2명밖에 없는 우리 팀에서 담당하게 되었다. 6월을 정리하면 5~6개 건은 기획서 작성과 운영 업무 적응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매일 야근이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차장은 이런 일이 익숙한지 주말이며 야근이며 일에 모든 시간을 태웠다. 차장이 대단하다고 아니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차장은 나에게 한 달안에 자신의 업무를 다 가져가길 바랐다.


나는 그 말을 거절했다.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분명하게 불가능함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는 대표에게 이 친구는 업무 능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로 이어졌다. 전체를 못 본다는 평가였다. 1~2달이 지난 시점 그런 평가를 내린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 뒤로 대표는 나를 싫어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를 하였다. 어느 날 느닷없이 방으로 부르더니 왜 이리 열심히 안 하냐는 이야기를 하였다. 바빠서 야근하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 그런 소리를 들으니 뭔 소리인가 싶었다. 처음에는 어떤 기능에 대해 왜 그렇게 했냐고 묻길래 이사가 결정한 내용이라 그렇게 했다고 대답하니 왜 남 탓을 하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때부터 대화의 의지를 잃었다.


이후에 야근하고 집에 가는 중에 갑자기 느닷없이 잘한다는 착각을 하지 말라는 등, 선임에 대한 존중이 없다는 등, 다 이유가 있어서 하는 이야기인데 왜 안 듣냐, 너 같은 부하 직원이 있으면 힘들 거라는 등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순간 차장이 어떤 이야길을 했는지 깨달았다. 면담을 해서 잘 풀어보려고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이직을 빨리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그렇게 아직도 기억나는 10월 1일이 왔다. 차장은 갑자기 옥상으로 부르더니 빨리 회사를 나가라고 했다. 이유는 여기서 내가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이 골자였고 개발자들이 참언을 했다는 것이었다. 차장이 내 눈앞에서 뻔하게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 억울했다. 그렇게 추석 연휴를 우울감과 좌절감으로 보냈다.


그리고 추석이 끝나고 나는 QA팀으로 부서이동되었다. 금요일 통보 다음 주 월요일 이동이었다. 그것도 차장이 아닌 본부장이 불러내 면담을 하였는데 본부장의 이유는 반년도 더 지난 조회 조건을 잘못 기획한 것 같다는 것이었고 회사 기대보다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1년 만에 SI 프로젝트 3번에다가 1번은 PM/기획자 나머지 1번은 기획자로 참여한 내가 뭘 성장을 못했다는 것이고 일에 대해 증명을 못한 것인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현재 운영 프로젝트의 절반은 내가 구축한 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가 순탄치 않았고 부족함이 있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런 존중 없는 대우를 한다는 것이 정말 화가 났다. 그렇게 직무 이동된 후 2주간 마음 정리, 생각 정리를 하고 나는 회사를 떠났다.


정말 중간중간 기억나는 지난 일들을 적으면서 그 순간순간 장면들이 떠올라 마음이 매우 괴로웠다. 그냥 일만 신경 쓰고 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아주 순수한 착각을 한 것 같았다. 애초에 평가 시스템이 없는 곳에서 일을 잘할 수 있는 것은 무리였다. 설상 일을 잘했다고 하더라도 그 기준은 평가자마다 다르고 그리고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그 기준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었다.


일련의 과정을 겪고 무작정 이런 일을 줄이기 위해 좋은 기업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크게 들었다. 물론 모두가 아는 좋은 기업이라고 한 들 억울한 일이 안 일어나는 것은 아니겠다만 그래도 적어도 이런 일련의 일들을 시스템 상에서 막아주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분한 마음을 넘어 너희가 틀렸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라도 정말 내 인생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준비하고자 한다. 나는 반드시 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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