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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4주 차

무탈하게

by ONicial Kes

퇴사한 지 3주가 지났다. 준비하던 기업의 포트폴리오를 딱 어제 마감일자로 냈는데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첫 주는 그저 내 생활이 무너지지 않도록 애썼다. 첫 번째 퇴사 때는 그냥 늦게 자고 사람들 만나고 했어 시간이 녹아 조금 후회했던 생각이 들어 이번에는 제 때자고먹고 등 기본 생활 패턴이 무너지지 않는데 집중했다. 그리고 뭔가 급하게 뭘 할 생각은 없었는데 그렇다고 무작정 쉴 생각도 없었다. 시장이 원하는 PM이 되기 위해서 데이터 기반 업무 프로세스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었고 이 내용을 기반을 바탕으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그래도 하두 주변에서 조금 쉬어야한다고 이야기들해서 억지로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게임도 하고 영화 보러 갈 생각도 했지만 게임은 몇일만에 흥미가 시들었고 직장을 다니며 매주 보러 가던 영화도 예매 후 취소를 몇 번 거듭하고 나니 아직 영화 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쉬는 일도 뭘 하기보다 그냥 마음 여유롭게 잠을 자고 나가서 잠시 뛰면서 시간을 보냈다. 잘 먹어보려고 이것저것 사고자 사려고 이마트도 자주 왔다 갔다 했다. 그렇게 3일 정도 지났을까 할 일이나 빨리하자라는 생각에 인프런에서 강의를 끊고 블로그에 내용을 정리하며 매일을 보냈다.


- 월터 화이트


그리고 퇴사 일주일 뒤 베트남 여행이 있었다. 통 요즘 뭐 하나에 집중하기 힘들어서 영화는커녕 호흡이 긴 드라마는 쳐다도 안 봤는데 베트남 여행에서 비행시간의 동안 할 것을 찾던 중 브레이킹 배드는 알게되었다. 그리고 주인공 월터 화이트에 빠져 한국에 돌아와서도 뭔가 막히거나 쉴 때 틀어놓고 월터 화이트를 보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시리즈를 쭉 보면서 뭔가 월터 화이트와 나 사이의 동질감을 느꼈다. 월터 화이트는 자존심이 아주 쌘 인물이라 누군가에게 손 벌리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고 마치 본인의 능력을 증명하는 일이 삶의 목적인 것처럼 행동한다. 에피소드 중에 마약 만드는 일을 그만두고 여생을 즐기면 될 정도로 돈을 벌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마약 만드는 일을 계속하는 것을 선택한다. 그 이유로 그는 이전 자신의 연구로 천문학적인 돈을 번 기업을 이야기하며 자신은 그 이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하고 이상 벌기 위해 마약 만드는 일을 계속한다. 더불어, 자신이 만든 순도 높은 마약의 퀄리티에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여기서 내가 동질감을 느꼈던 부분은 증명하는 삶이었다. 말이 좀 거창한 것 같아 부담스러운데 나 역시도 내 능력을 발휘하고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월터 화이트에게서 비슷한 모습을 보았다. 물론 내가 월터 화이트처럼 능력자는 아니지만 스스로를 믿으며 나의 능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글을 쓰고 ppt 만들다가 지칠 때마다 몇 자 더 쓸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준비를 하면서 특히 PPT 만들면서 정말 머리가 꽉 막힌 느낌이 자주 들었다. 게다가 데이터는 간단하게 dau, mau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험을 하고 성과 수치를 따지는 일은 머리를 지끈지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절대 pm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문화가 잡혀있지 않다면 기업 내에서 보편화되기 어렵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 AI


ppt를 만들면서 AI를 정말 많이 사용했다. 클로드와 chat gpt 둘 다 유료 결제하며 도움을 받았다. 이게 도움이라고 할지 잘 모르겠는데 어차피 내가 다 해야 하는 거는구나라고 느꼈다. 그 이유 중 첫째로, 프롬프트를 잘 써야 잘 준다. 유료 모델을 쓰더라도 잘 이야기해 줘야 그나마 잘 알려준다. 이상하게도 조건이 복잡해지면 더 결과값을 이상하게 준다는 생각도 들었다. 조건을 정말 잘 설명해야 하는데 그 설명을 하는 시간에 혼자 생각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조금이라도 오해의 소지가 생기면 조금씩 엇나간 답변들을 하고 그 부분을 수정하려고 몇몇 조건이 들어가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차라리 러프하게 주고 초안에서 내가 필요한 부분을 얻고 디테일을 챙길 때는 초안에서 특정 부분에 한해서 하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클로드는 사뭇 딱딱하고 논리적인 느낌이 있다. 하지만, 너무 길게 답변을 줘 필요 이상의 이야기를 할 때가 있고 가독성이 떨어지는 면이 있었다. 조건 처리에 있어서 GPT보다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있어 지표 설정이나 데이터 로그를 짜는 데 있어서 좀 더 유용했던 것 같다. GPT는 사용성에 있어서는 확실하게 클로드보다 좋다고 느끼지만 종종 너무 입발린 말이라고 해야 하나 좋게 이야기하면 긍정적 나쁘게 이야기하면 너무 낙관적으로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많지는 않지만 뭔가 틀려서 의문을 제시하면 미안하다고 해서 좀 신뢰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이런 경우는 클로드도 있는데 둘 다 그 수치는 적었지만 GPT이 더 빈번했던 것 같다. 그러나 AI 둘 다 잘 판단에서는 아닌 내용은 또 냉철하게 아니라고 이야기해 줘서 놀랄 때도 있었다. 냉철하게 이야기하는 건 역시 클로드고 GPT는 쿠션 멘트를 많이 써줘서 덜 상처받긴 한다. 신기하게도 그냥 기계이지만 말표현에 따라서 내 감정이 변한다.


나는 구직 시장분석과 이직 전략을 집요하게 묻기도 했다. 작업하다 자주 막혀서 좌절스러울 때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많이 던졌었는데 둘 다 참 위로를 잘해준다. 위로의 방식은 조금 다르긴 한데 클로드가 좀 더 보수적으로 이야기해 주고 GPT도 근거를 비슷하게 보여주되 긍정적으로 이야기해 준다. 둘 다 사람을 돕기 위한 도구로서 나와서 그런지 안된다는 이야기를 잘 안 한다. 클로드는 냉정하게 네카라쿠배당토 직행은 어렵다고 직절적으로 이야기해서 조금 뜨끔 했다. 여하튼 이들의 도움을 받아 첫 버전의 포폴을 완성시켰다. 케이스 스터디 2개를 더 붙여서 완성도를 더 높여가고자 한다. 둘 다 구독료가 3만 원 정도 하는데 구독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AI 다 똑같은 거 아닌가 싶었는데 확실히 답변다르다.


문득 직업을 잘못 정했나 라는 생각이 든다. 배울 것도 많고 고생스러운 것도 참 많다. 일단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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