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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icial Kes Jun 03. 2020

전시회를 다녀오는 길에

설렌다는 것, 무엇인가 기다려진다는 것, 살아갈 이유가 생기는 것.

여러 색깔로 뒤 덮인 세상 속에서 놀람과 공포의 연속이었었어

그 많은 색깔 중에서 길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가까이서 들어보다가 몇 걸음 떨어져, 나도 모르게 색깔을 덧 데기 시작했었어

근데 툭 툭 나를 두드리는 너의 방문에 나는 붓을 놓고 작가가 되기로 변심하였지

갑작스러웠지 이상하리만큼

그렇게 뜨거운 볕 아래 갈증 속에서 시원한 물을 부어 목을 축이고 나니까  

순간 난 이미 몇 권의 책을 완성했던 거야 

주인공의 동선 어조 대사 너의 시선에서 네가 아마 봤다면 당황했을 수도 있겠네

아니 낯선 곳에서 연극을 보듯 어색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내 익숙해져 너는 조잘조잘 말을 쏟아내겠지

그에 반해 난 저 세상 반대편에서 허공에 얼음 같은 단어와 문장을 너에게 줄지도 몰라

따뜻하게 만들려고 입김을 불겠지 이게 뭔가 싶을 거야

대신 네가 두고 간 바보 같은 웃음만 주워 담아 품 안 주머니에 고이 접어두었어

그게 시가 될지 모르잖아 


 여자 친구와 사귀기 전 썸 관계였을 때 우리 함께 사진전을 가기로 약속을 잡았다. 그 친구는 전시회를 좋아해서 전시회를 많이 다녀본 듯했지만 나는 사실 전시회를 가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페이스북에서 관심 전시회를 찾아보고 마치 이전부터 관심이 있던 것처럼 함께 가자고 불러냈다. 같이 가자고 메시지를 보냈을 때의 떨림은 지금 생각해도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만약 거절하면 어쩌지? 페북 보고 같이 가자고 하는 건 너무 노골적인가? 답장이 오기 전의 시간 동안 애가 타들어갔다. 마침내 그녀의 답장이 왔을 때 혼자서 쾌재를 불렀고 전시회를 갈 날 만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기간 동안 괜히 기분이 좋고 안 좋은 일에도 그냥 넘어가고 그냥 기다리는 일 자체가 즐거웠던 것 같다. 운명의 그 날이 오고 떨리는 마음으로 사진전을 구경했다. 사실 사진은 눈에 안 들어오고 이후에 뭘 해야 할지 생각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런 나와 달리 그녀는 덤덤하게 사진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렇게 보는 둥 마는 둥하고 전시회를 나와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밥이나 같이 먹자는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말하더련 찰나! 그녀가 먼저 밥을 먹자고 제안했다. 나는 내 마음을 읽었나 싶었고 그녀가 카레를 좋아한다는 사실에 얼른 카레집으로 향했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나는 카레를 정말 정말 싫어하지만 그 날은 카페를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이 설렘은 내가 그녀를 좋아한다는 확신으로 바뀌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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